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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Nov 16. 2017

어디서나…맛좋은 라면

즘처럼 문틈이나 옷깃 사이로 찬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들 때마다 따뜻한 국물 요리가 떠오른다. 머리 속엔 왕년에 유행했던 ‘국물이 끝내줘요’란 CF 이미지가 필름 영사기처럼 돌아간다. 갓 담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 그릇을 마주한 상황이다. 젓가락을 들어 탱탱하고 쫀쫀한 면발을 호로록 목구멍 뒤로 넘긴다. 다 씹기도 전에 뜨끈뜨끈한 뿌연 액체를 들이켠다. 열탕에 들어간 듯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감개무량한 희열로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런 이미지는 툭 쳐도 떠오를 만큼 각인처럼 박혀 있다. 그래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꼭 먹고 말 거야’를 다짐하는지 모르겠다.



대 근처에는 유명한 라멘 집이 많다. 대체로 점심시간 근방에 오픈하는 관계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단다. 며칠 전부터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동생을 꼬셔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나 사람들에 밀려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좀 더 빨리 도착하려고 짧은 코스를 선택하다 보니 두 번이나 전철을 갈아탔다. 역을 빠져나온 나는 경쟁이라도 하듯 헐레벌떡 뛰어갔다. 멀리서 웨이팅용 플라스틱 의자가 일렬로 늘어선 게 보였다. 순간 철렁했지만 다행히 모두 빈자리였다. “앗싸, 내가 일등이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순서지 첫 칸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30여 분 동안 빨간색 의자 위에서 덜덜 떨며 기다렸다. 준비를 마친 종업원이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주문하겠냐는 요청에 숙주와 파가 듬뿍 얹은 라멘이라고 말했다(그 집의 라멘 메뉴는 딱 하나다). 옆에 있던 동생이 그중 하나는 차슈 추가라고 덧붙였다. 



  남짓한 공간에 두 명씩 앉은 테이블이 두세 개 가량 있었고, 나머지는 주방장과 마주 보는 바 형태의 자리였다. 협소한 공간을 비집고 앉아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라멘 두 그릇이 놓였다. 숙주와 파가 산처럼 쌓인 사이로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모양새는 흡사 어젯밤 내가 꿈꿨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우 하는 감탄사와 함께 미소를 띠며 얼굴 두배 만한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들어봤다. 막 끓여낸 열기에 인내를 발휘하지 못하고 도로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숟가락을 들어 채소가 섞이지 않고 오직 국물만 지긋이 담아봤다. 조심스레 들어 올려 입술 뒤로 넘기니 기름지나 담백한 고기 육수가 입안 한가득이었다. 돼지고기의 묵직한 농도 속에서 살짝 올라오는 누린내를 닭고기의 깔끔하고 가벼운 고소함이 슬쩍 눌러주고 있었다. 젓가락을 들어 숙주를 헤치고 얌전히 놓인 차슈 두 점과 노란 빛깔로 다소곳이 놓인 얇은 생면을 휘휘 저었다. 면은 그 국물의 고소한 묵직함을 전분기에 충분히 빨아들여 풍요로운 목 넘김을 선사했다. 몇 젓가락을 정신없이 먹고 이번에는 숙주와 함께 넘겼더니 아삭한 식감과 함께 국물의 잡내를 잡아주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갈 것 같았다. 동생은 차슈를 들어 면에 감싸 먹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차슈를 한입 베어 물었다. 수육처럼 촉촉했지만 특제 간장 소스를 품어 불 향이 더해지자 감칠맛이 배가 되었다.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며 그녀는 ‘그봐, 추가할걸 그랬지?’하며 웃었다. 차슈는 그 물컹거리는 식감 때문에 돈코츠 라멘을 먹더라도 먹지 않거나 옆 사람에게 주곤 했었다. 그런데 이 집의 것은 달랐다. 정성스레 찌고 구우며 특유의 맛을 잡아내니 어떤 고기 못지않은 음식으로 탄생되었다. 게다가, 부드러운 면과 아삭하고 산뜻한 채소가 진한 풍미의 육수 속에서 어우러지니 보양식이 따로 없었다. 일본을 가본적 없는 나는 그녀에게 현지 맛이랑 비교해서 어떠냐고 물었다. 거의 비슷하다고, 요즘 이런 라멘 집이 얼마나 흔한데 하곤 웃었다. 입 속에 한가득 씹으면서 몇 마디 나누는 사이, 그릇 속의 면과 국물이 바닥을 드러냈다. 반찬 그릇에 담긴 김치가 무색할 정도로 손도 대지 않았는데. 조금 남아있는 그릇 사이로 여전히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가득 채운 배 속이 구들장 위에 배를 깔고 지지는 것처럼 뜨끈하고 나른해졌다. 진짜 푸짐하고 거하게 먹은 한 그릇이었다.



루 종일 노곤 노곤하게 만들었던 그 한 그릇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건지 TV 속에서 먹는 장면만 돌려 봤다. 마침한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요즘 도쿄에서 뜨고 있는 라멘 집에 방문했다. 그들이 먹은 라멘은 빨간 국물의 얼큰한 맛이었다. 언뜻 보기엔 한국의 육개장 같은 색깔이었다. 각종 나물류의 채소가 푹 익혀 있고 계란 프라이와 치커리 같은 푸른색 채소가 얹어 있다. 고기 육수의 기름기까지 더해졌으니 돈코츠 라멘에서 고춧가루가 가미된 맛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몇 숟갈 들이키던 그들은 진하면서 자극적인 맛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느끼하게 지지고 볶던 요리를 먹었던 터라 칼칼하고 익숙한 맛에 끌렸던 모양이다. 빨간 국물이야말로 모든 음식을 잊거나 가라앉히는 마성의 묘약 아닌가. 특히 외국에 나갈 때마다 한국 사람이라면 컵라면을 챙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현지 음식을 마음껏 즐기다가 한국 생각이 날 때쯤 한 번씩 먹어줘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여행이 좀 더 편해지니까. 간편하면서도 편리한데 효과는 만점이다. 라면만큼 우리네 향수를 채워주는 게 또 있을까? 근데 그들은 타지에서 라면 맛이 난다는 퓨전 라멘에 빠져 온갖 방언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명이 대미를 장식했다. “와, 앞으론 해외에서 얼큰한 거 생각나면이 맛을 떠올릴 것 같아” 마침 그 집 라면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도 팔린다고 하니, 해외에 나갈 때 그걸 들고 가게 될 날도 올지 모른다.  


마나 맛있기에 저렇게 감탄할까 하는 궁금증에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기존 일본 라멘과 얼마나 다를까? 또, 얼마나 한국식 라면과 유사할까 생각해본다. 그러면서도 해장용으로 끝장판이라는 그 평가는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밀려온다. 얼큰함이란 한국인 입맛을 대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걸 일본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건 국내 여행자에게 희소식이겠지만, 한국의 맛과 겹친다는 건 왠지 고유성을 빼앗긴 느낌이다. 물론 이국적이고 특이한 맛을 차용하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게 문제 될 건 없다. 베트남의 쌀국수나 중국의 짬뽕을 비롯한 면요리, 태국의 팟타이도 우리 식으로 해석되어 사랑받고 있는 마당에, 얼큰한 국물 하나에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건 오버 같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라면도 일본에서 들여와 우리 식으로 정착된 음식인데. 문제는 비슷한 걸 넘어 대체해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라면은 종주국인 일본의 라멘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생면과 튀긴 면, 수작업과 대량 생산, 고기를 우린 뽀얀 국물-혹은 된장이나 간장 국물-과 새빨간 국물, 정통 가게와 분식집 같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원래부터 용도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다르게 포지셔닝된 음식이었다. 그런데 점점 퓨전이니 다양화니 하면서 닮기도 하고 새롭게 변형되었다. 시원하고 얼큰한 빨간 국물의 도쿄 라멘집이 그렇다. 현지식 국물에 얼큰함이란 차별점은 괄목할 만하나,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라멘의 틈새시장에 한국의 맛을 떠올려 어떤 유행을 주입시킨다. 어쩌면, 라멘에 한 장르가 될지도 모른다(벌써 그런지도 모른다). 역으로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홍대에서 먹은 라멘은 일본의 맛을 성실히 재현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가지 않아도 현지 맛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일본식 라멘은 인스턴트식 라면과 달리 푸짐하고 든든한 한 끼로 손색없다. 따끈한 국물마저 생각난다면 이렇게 제격인 음식도 드물다. 게다가, 기력 보충조차 필요한 경우 삼계탕이나 갈비탕 대신 먹어도 나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라멘에 익숙해질수록, 우리의 빨간 라면을 넘어 보양식이나 해장 음식의 대체재로 영역을 확장한다. 다시 말해, 라멘과 라면 사이에 맛의 교집합이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선택하는 용도마저 중첩된다. 각자의 중심점이 무너지지 말아야 하는데, 가끔씩 모호한 경계선 상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슬쩍 건드린다. 특히, 도쿄 라멘 맛을 본 한국인이 우리의 얼큰함 못지않은-혹은 그 이상- 맛이란 평가를 내린 것은 라멘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라면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적으로 라멘과 라면이 막역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길 바란다. 쌀국수도, 팟타이나 나시 고랭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더라도 고유의 맛을 떠올릴 때면 역시 본 고장이 제격인 것처럼. 특유한 향신료와 비법을 흉내내기도 어렵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기후도 한몫한다고 본다. 집에서 해 먹고 숙성된 소스를 사용하는 우리와 달리, 해산물이 풍부하고 즉석에서 한 걸 사 먹는 게 그들의 식문화니까. 다른 조건을 인정한 채 타지에 전파하고 있다. 그에 비해, 라멘과 라면처럼 물리고 엮인 경우라면 어쩔 수 없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서로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무너질수록 결국 소비자가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고만고만한 맛이라 느끼고 지칠 때쯤 전혀 다른 음식을 선택할 테니까. 유일무이했던 개성은 연기처럼 휘발될지 모른다. 눅진눅진하고 꼬릿꼬릿한 육향의 라멘 국물이나 죽여주게 맵고 칼칼한 라면은 그랬다더라 하고 전해지는 옛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뭐, 당장은 괜찮다. 아직까진 어디서든 둘 다 먹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 노파심은 씨알도 안 먹힐 시답지 않은 헛소리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고.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 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 하루에 열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가루가루 고춧가루)
    - 아기공룡 둘리 中, <라면과 구공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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