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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Nov 09. 2017

꿈은 일상보다 솔직하다

선 길로 접어들었다. 황사처럼 흑갈색의 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잠시 후 그것이 걷히자 변두리의 건물들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곳곳에는 공터가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 한 곳에서 낯익은 이들이 보였다. 한때 같은 팀에서 일했고 나름 친했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의문이 앞서는 동시에 반가움에 손이 올라갔다. 그러나, 내 입은 한 일자로 꾹 잠겨 있었다. 잘 지냈어? 그 한마디가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열심히 하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스쳐 지나가는 사이 누구도 나를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면서도 내 발은 누군가에 조정이라도 당하는 듯 멈추지 못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지나쳤다. 



참을 걸은 후 다른 공간으로 들어섰다. 발을 디디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이 달려와 얼싸안았다. 양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막상 내색을 하지 못한 채 그들을 질질 끌면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하여 마치 무서운 무언가가 앞에 있다는 듯 끊임없이 지껄였다. 그렇다고, 그 모호하고 흥분된 말투에서 어떤 단서도 드러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말이 맞고 뭔가 의심스럽다면 여기서 멈춰야 하는 게 맞았다. 나는 웬일인지 멈추려 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멈춰서 곰곰이 생각하려 들지도 않았다. 왜 그랬는지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마치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전진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의아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말이 거절된 것을 눈치챈 아이들은 입을 닫았다.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힘을 주어 꼭 붙들었다. 잠시 후 그곳을 벗어나 황량한 허허벌판을 거닐었다. 풀 한 포기조차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암갈색의 울퉁불퉁한 땅을 내딛을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아이들의 걱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일단 빠져나가야 했다. 자꾸 모래와 자갈이 발길에 차였다. 내 발끝에서 걷어차 일 때마다 양 옆의 낭떠러지로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릿하고 선선한 공기가 불어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시야는 흙먼지를 뚫고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강렬한 빛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뗐다. 저 멀리 푸른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발이 멈춘 끝자락을 넘어 휑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 밑은 망망대해처럼 드넓게 펼쳐진 깊고 푸른 바다였다. 나는 절벽 위에 서있었다. 몇 발자국만 내딛으면 그 속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아이들은 무서움에 비명을 질렀다. 다시 되돌아가자고 애원했다. 잠시 머리 속이 멍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것도 잠시, 뭔가 다짐한 나는 단호하게 꼭 잡으라고 명령했다. 지금까지 내가 냈던 것 이상의 최고속도로 돌진했다. 그리고, 날아갈 거라고 소리쳤다. 정말 두 팔을 날개 삼아 붕 떠서 거대한 독수리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다녔다. 그 순간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꿈이니까.  



는 꿈을 꾸고 나서도 세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가끔은 너무 재미있고신나서 심취한 나머지 일어나지 못해 지각한 적도 있었다. 대체로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나 간절히 바라는 바를 꿨다. 하늘을 나는 꿈은 내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웃긴 것은 무언가에 쫓기는 순간 비상(飛上)을 선택하곤 그 상황이 꿈이라고 중얼대는 것이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을까? 자는 동안에도 나의 무의식이 각성과 자각의 역할을 해내는 것일까? 그런 해프닝 때문에 일어난 후에도 꿈을 기억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꿈은 단순히 황 당무계하고 역동적인 게 다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운 이들이 등장하고 그러면서 마음속에 담아 둔 일이 반영됐다. 최근에 강원도에 다녀온 일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면서 전 직장동료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곳은 그녀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그녀를 남편의 직장동료와 소개시켜 줬더라면 어땠을까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라면 부부 모임도 같이 하고 자주 어울렸을지 모른다. 야무지고 똑 부러진 그녀에게 진실되고 푸근한 그를 엮어주려 했으나 무슨 조화인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후자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전자는 여전히 싱글이다. 그게 걸려 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었다. 왠지 나의 불찰이란 생각이 내재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얼굴 한 번 보고 싶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번 못 나눈 게 미안했었고, 그게 마음 한편에서 맴돌다가 꿈을 빌미로 튕겨져 나온 것이다.



 번째 꿈같은 경우는 며칠 전에 제사로 시댁에 내려가면서 큰 애를 두고 갔던 것과 연관됐다. 얼마 전 여행을 다녀와 또 학교 수업을 빼기가 그랬고 학원 보강 수업이 만만치 않은 탓에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겼다. 아이는 혼자 학원을 가고 스스로 숙제까지 척척 해내서 엄마로부터 애 다 키웠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시계를 볼 때마다 이때는 학교 갔겠지 혹은 학원 잘 갔나, 횡단보도는 손 들고 건넜을까 하는 등 온갖 신경을 쓰고 있었다. 돌아와서 딸애가 다니는 학원으로 데리러 갔을 때 평소처럼 명랑한 모습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단정치 못한 머리며 작아서 잘 입지 않는 옷을 입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꼭 안으며 많이 보고 싶었냐고 묻는 통에 가슴이 더욱 찡했다. 순간적으로 애꿎은 친정 엄마나 시댁 탓을 하며 투덜거렸다. 다시는 혼자 두고 가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고 말았다. 아마 그리움과 걱정, 서운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동료애나 며느리로서의 의무가 상충되어 꿈속에 나타난 모양이다. 대체로 꿈은 그리움이나 애틋함을 드러낸다. 한편으론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보고 싶은 그녀에게 아는 척하지 못했고, 아이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보고 싶고 안쓰러워도 어차피 날아서 피한다면 왜 소중한 것을 마주하거나 보듬지 않고 회피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느 날, 나의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가정생활에 반쯤 걸쳐있는 것 같아. 나머지 반은 여전히 자신이고 싶어 하고 그것에 골몰해 있어.” 그건 아마도 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듯싶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의심하고 의식하며 추구하고 있다. 안주하지 않는 게 장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누군가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소소한 행복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완전히 몰두하고 있진 않다. 반대로 내 꿈(희망)을 향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저울질을 하면서 늘 효율성을 따진다. 어떻게 하면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게 최대의 고민이자 목표다. 그래서, 가끔은 벗과의 만남이, 아이들과의 보내는 시간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꿈속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꼼수를 부리는 속내이기도 하다. 그 이기심의 은유를 마주하자, 생각이 짧고 어리석은 내가 드러났다. 그걸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다.



렇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내가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만큼 동시에 가족을 위한 헌신과 노력도 필요하다는 걸. 그것들을 염두하고 저울질하며 하나로 치우치지 않고 살아가는 게 내 앞에 펼쳐진 길(道)이다. 가끔은 의식적으로라도 떠올려야 한다. 아마 중심을 잃고 갸우뚱하는 나를 잡아주려고 했던 건, 꿈의 입을 빌려서라도 알리고 싶었던 무의식이 아니었을까?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주변을 지치게 하면서 몰아붙이는 걸 알고 있냐고. 이쯤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면 어떻겠냐고. 참으로 고마운 무의식이다. 삐뚤고 모난 외면보다 더 여물고 단단한 내면이다. 그것이 뚫고 나온 밤의 꿈은 낮의 일상보다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내게 약속해줘 오늘 이 밤 나를 지켜 줄 수 있다고.
함께 가는 거야. 나를 믿어 내가 주는 느낌 그걸 믿는 거야. 내겐 너무 아름다운 너의 밤을 지켜 주겠어.
  - 곡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1996)> 中, 코나(Feat.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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