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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Jun 21. 2018

당신의 현재가 나의 미래

                                                표지 : <FAMILY AFFAIR>, 바자 코리아 19주년 기념 별책부록 中



페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책 한 권을 뽑았다. 몇 년 전 어느 잡지에 특별부록으로 펴낸 유명인사들의 가족사진집이었다. 이름 석자만으로 알만한 배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패션 업계에 종사자의 것이었다. 타인의 사진을,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의 사진을 본다는 건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놓지 못했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 언저리를 맴돌다가 모종의 연관성을 이끌어냈다. 그 당시 유행했을 나팔바지에 머플러를 들러 맨 의기양양한 여인의 포즈 속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딱 달라붙는 바지를 폼 나게 입고 북한산의 이름 모를 바위에 걸터앉은 앳된 모습이었다. 그땐 왜 다들 정면이 아닌 옆을 보고 찍었는지 모르겠다. 일렬로 착착 줄 맞춰 앉아 서로의 팔에 손을 얹은 게 작위적인 냄새가 폴폴 났다. 오래된 장롱에 처박힌 사진 뭉텅이 속에서 그것을 발견한 그녀는 어린 나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아마도 당신의 빛나는 청춘을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건 아니까. 철부지 어린아이에서 꿈 많은 소녀로,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 아가씨를 거쳤다.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아 엄마란 이름으로 엉겁결에 슈퍼맨의 망토를 두른 셈이었다. 



녀의 젊은 시절을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탯줄을 끊고 처음 눈 맞췄을 때 그녀가 내가 네 엄마야 했듯이 말문이 터진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엄마인 것처럼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단지 내 곁에 망부석처럼 있는 것이 존재의 이유였고 쭉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제든지 쪼르르 달려와줄 것 같은 한결같음 때문에 나는 그것만 기억했고 신봉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내가 모르는 한 때가 그녀에게 존재했었다. 이를테면 전교에서 손꼽히는 수재였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사환 학생으로 다녔던 사실 말이다. 사진 속 과거가 찬란할수록 기억 저편으로 넘겨버린 안타까움도 피어났다. 묵은 체증 같은 한숨을 내쉬자 그 빈 공간 속으로 심란함이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사진 하나에 시선이 꽂혔다. 어느 나이 든 여인이었다. 두 눈을 꼭 감고 한쪽 무릎을 두 팔로 감싸고 벽에 기댄 모습, 거울 속의 자신을 보지 않고 내리깐 눈빛, 소파에 기댄 채 허공을 바라보는 옆모습이었다. 사진작가라는 그녀의 딸이 찍은 사진이었다.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 모든 감각이 제 기능을 잃고 서서히 속도를 멈춰가다 종내는 완전히 중지되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늙는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이라고. 엄마의 현재는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죽음에 가까워진 엄마를 지켜보는 건 슬픔만이 아니었을까? 아낌없이 내주던 모습을 뒤집어엎어야 했다. 엄마는 더 이상 내 손을 잡아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남은 생명 줄을 놓지 못한 채 지난날과 현재를 오가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덧없이 흘러갔다. 흐려지고 미련 조차 남지 않아 시공간에 초연해질수록 지켜보는 딸은 불안했다. 그래서 엄마 사라지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이 두 마디가 심란한 마음을 파고들어 먹먹하게 했다. 만약 나의 엄마가 그랬다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곤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다. 과연 그 슬픔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를 위해 아니면 내 편을 잃은 나를 위해? 근데 어쩐지 통곡은 그것을 야기한 대상을 비껴간 것 같다. 혼자 남겨질 나를 동정하고 그녀 없이 앞으로 어떡하냐고 종주먹을 대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죽음은 이기적으로 흐른다. 현실이 아니고 신파와 자기 연민을 오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게 진짜 실제가 되면 스스로를 향하던 비통은 소리치고 발광하다가 순식간에 득도한 듯 눈물을 뚝 그친다. 비로소 엄마의 얼굴을 유심히 살필 것이다. 깊게 파인 주름진 입매가 어디선가 본듯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나팔바지를 입은 여인이었던가?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랬지. 근데 어디선가 낯익다. 그 입매는 마중 나간 아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내 얼굴에도 있다.  



이란 처음부터 엄마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어린 시절 학교로 찾아온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줄 알았다. 책 값을 감춘 걸 들킨 후로 귀신은 몰라도 그녀를 절대 속일 수 없다고 믿었다. 내 돈을 벌게 되자 잠시 친구처럼 가까워졌지만 결혼하자 돌변해 내 아이를 돌봐달라고 투정 부렸다. 어느 날 아이의 입에서 잔소리꾼이라 불렸을 때 에구 언제 철들래? 하고 맞받아치다가 불현듯 그녀가 떠올랐다. 지난날 나와 엄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알았다. 어린 소녀였던 내가 엄마가 되어 그녀에게 배운 대로 고스란히 자신의 아이에게 행하고 있었다. 딸은 자신의 엄마를 닮아가는구나. 유식하게 말하면 애착에서 방관으로 그러다가 공감하고 동화되는 것이다. 그러자 지금의 내가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란 걸 깨달았다. 그만큼 그녀는 노년의 시간대로 밀려갔다. 그녀는 어느덧 다섯 명의 손주를 둔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상상의 나래가 잠재된 의구심을 일깨웠다. 타인에 대한 먹먹한 연민에서 만약이란 가정법이 튀어나왔고 얼마 전부터 우리 모녀 사이에 벌어진 조짐을 떠올렸다. 이미 나는 우리의 역할이 뒤바뀔지 모른다고 적지 않은 충격을 느껴왔다. 몇 년 전부터 부모님은 당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 노후자금이랍시고 무리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중도금을 치르지 못해 포기할 때까지의 비용은 자식들 몫이 돼버렸다. 그때 얻은 불안과 회피를 술 담배로 풀었던 아버지는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엄마는 생각보다 잘 버텼으나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책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만 잘 먹고 잘살려고 그런 거 아니다. 남은 우리 둘 앞가림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평생 지지리 복도 없구나.” 며칠 전엔 이런 말도 했다. “아무리 건강하고 폐 끼치지 않으려 해도 언젠간 너희 도움받지 않겠니. 우리가.” 그 말투는 어영부영 읊조리는 게 아니라 입후보자처럼 제법 당당했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 같았다. 당신 스스로 엄마 노선의 이탈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아마 그녀는 내가 당신 같을 것이라 확신할 것이다. 자식도 무조건 부모 편일 테니까. 만약 이 추론이 맞다면 나는 엄마의 버팀목이고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지금껏 받았던 것처럼 감내해야 한다. 의무감이 엄습하자 두려웠다. 그녀가 내세우는 당위가, 변명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갑자기 우리 사이를 파고드는 틈에 질식할 것 같았다. 문뜩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점점 어린애처럼 변해가는 할머니와 그것에 지쳐가는 엄마와 고모들이 있었다. 한걸음 물러나 지켜봤던 나와 여동생은 효와 도리에 입각해 그들을 품평했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는 가정법을 입에 담지 않았다. 왜? 그때의 그들이 우리의 미래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철부지였으니까.  



러나, 시간이 흘렀다. 우리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엄마는 예전 같지 않았다. 친정에 갈 때마다 설거지해놓은 그릇에 덕지덕지 묻은 고춧가루와 아무리 닦아도 끈적거리는 식탁 유리가 신경 쓰였다. 예전의 그 야물었던 손맛도 늙어가는구나. 그녀가 돋보기를 어디 뒀는지 까먹을수록 혹은 오촌까지 모이는 가족 행사에 집착할 때마다 언뜻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엄마도 늙은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보다 더 모질고 힘겹게 늙어갈지 모른다. 그게 우리에게 전해질 때마다 슬픔은 우려가 된다. 그동안 얼마나 우쭐했었는가? 엄마가 설마 할머니처럼 그러려고. 내가 그녀 때문에 곤란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여동생과 가끔씩 엄마처럼 살지 말고 노후 관리 잘해 놓자고 다짐했다. 늙어도 앞가림할 수 있다면 자식 신세 지지 않고 떳떳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다. 따지고 보면 늙으면 지금과 정반대가 된다. 예상과 달리 기력이 딸리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으며 초라 해지고 의지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신세 지지 않을 수 없다. 자존심이 상해도 어쩔 수 없다. 세월 앞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신혼여행지에서 아버지 품 속에 사뿐히 뛰어들던 꽃다운 엄마는 영원할 수 없다. 그렇듯 나도 언젠가 지금의 엄마처럼 변할지 모른다. 엄마의 현재는 나의 미래일지 모른다. 


  

리의 삶이 이어졌다는 생각은 또 한 번 무거운 한숨을 몰고온다. 어쨌거나 엄마와 나는 하나의 줄기처럼 이어졌고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살아왔다. 엄마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늙음으로 가기 위해 바통을 넘기고 있다. 나는 내 앞의 그것을 선뜻 받지 못했다. 두 개의 끈을 이어야 하는 순간 주저하고 있다. 과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게 단지 나와 아이의 끈이라면 괜찮았다. 나는 혼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나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언젠가 자신의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진 끈에 자발성이 발휘되지 않았다. 그 의무가 얼마나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지. 여기엔 도의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왔던 사랑이 무조건적이기에 윤회라고 믿어야 한다. 받았다면 어떻게든 베풀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 힘을 우리의 이어달리기에 보태야 한다. 그게 확신 없는 나와 아이들, 우리의 미래에 어떤 희망이 될 것이다. 이 믿음은 단정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으로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일이 벌어질까? 얼마나 원망하고 울다가 추스르고 헤쳐나갈야 할까? 다행히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아직까지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엄마나, 조금씩 생의 연결성을 깨달아가는 나, 그리고 사랑의 자양분을 듬뿍 받는 아이들까지. 그나마 위로가 된다.   




엄마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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