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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필복감독 Jul 12. 2022

마우어파크에서 만끽한 자유

6일 차 베를린 : 마우어파크 벼룩시장

6일 차 베를린 : 마우어파크 벼룩시장

2019/10/13


베를린은 오전에 날씨가 좋고 오후 1시가 지나면 구름이 끼기 시작해 3~4시경부터 비가 온다. 항상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착한 날 이후 계속 이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오늘의 일정은 Mauerpark 마우어파크 벼룩시장이다. Mauer는 장벽이라고 한다. 과거 장벽이 있던 지역에 공원을 조성했고 그 안에 벼룩시장도 열리고 버스킹도 하는 그런 곳이다. 


다행히 햇볕이 쨍하고 온도도 23도 정도로 날씨가 아주 좋았다.

공원의 분위기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돗자리가 없으니 자연과 더욱 하나가 된 듯 보인다.

사람들은 언덕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며 피크닉을 하고, 각종 밴드들은 넓은 들판에 서로에게 방해가 안될 정도로만 떨어져 각자의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이고 관객들은 그 앞에서 함께 리듬을 타며 즐기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유로움”이었다.


할아버지가 춤을 멋들어지게 추신다.


인도의 수행자 같은 백발 할아버지가 뭔가에 취해 무대(?)에 난입하여 괴상한 춤을 추고, 술에 잔뜩 취한 흑인이 뮤지션의 악기를 마구 두들기는데 그 리듬이 예술인... 그런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흑인 아재가 허락도 없이 퍼커션을 두들길 때 싸움이 날까 봐 긴장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기가 쳐보겠다며 떼를 쓰는 술 취한 흑인 아재. 난처한 듯 웃는 뮤지션.

관객도 뮤지션도 그냥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악기를 쳐보라고 내주는 드러머 그리고 그걸 엄청난 리듬감으로 쳐내는 술 취한 아재, 또 그 리듬에 맞춰 기타 연주를 하는 기타리스트..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잼(Jam)이요, 진정한 버스킹이 아닐는지. 음악이란 본래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뒤이어 술 취한 흑인 아재가 비틀대며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그 옆에 유모차를 끌고 와 아무렇지도 않게 음악을 즐기는 아주머니의 모습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편견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인간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누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성정을 가진 친근한 존재로 대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모두가 좋은 날씨와 음악을 즐길 뿐이었다.


음악이 너무 좋아 현장에선 판매하는 CD를 한 장 구매했다. 10유로.

이들의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강아지가 사람을 보고 짖으면 200만 원짜리 훈련소에 입소를 시켜 교육을 받게 하고 강아지에게 칩을 박아서 유기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나라. 

벼룩시장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데도 서로 밀치고 인상 쓰는 사람 하나 없이 즐기는 사람들. 

신호가 금방 바뀌는 걸로 보아 독일인들은 성격이 급한가 생각이 들다가도 식당에선 종업원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상한 매너가 있는 곳.

그렇게 매너가 좋고 원칙을 잘 지키는 듯 하지만 은근히 빨간불에는 잘 건너는 사람들. 


의식의 흐름이 여기에 이르자 드는 생각. 혹시 베를린이라서 그런 건가? 이곳은 독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워낙 개방된 도시고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니깐.. 베를린에서만 살아보고 독일을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결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국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죽일 듯이 난리다. 전 국민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나름 사람 사이의 낭만이 있던 8-90년대와는 다르게 2000년대를 넘어서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것이 풍요로워지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80년대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군부독재 시절이니 인권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사람 사이의 정은 있었지만 매너란 게 부족했다. (버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니..) 과거에 비해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까지 더해지면 참 좋을 텐데라는 부러움이 들었다. 


술 취한 행인이 마이크를 뺏어도 웃을 수 있는 여유. 발 디딜 틈도 없는 시장길에서도 부대낌 없이 즐길 수 있는 여유. 대체 이런 것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들 삶의 여유의 원천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마음의 여유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서 만난 행위예술가의 모습


너무 비싸서 놀랐던 벼룩시장.

공연은 뮤지션들의 실력도 좋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인상 깊었지만 벼룩시장은 기대에 못 미쳤다. 크레딧 카드나 페이팔도 받는 등 대부분 상인이었다. 가격도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도 살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베를린에서 베트남 쌀국수라니.. 맛있었다.


베를린의 휴일을 제대로 만끽하고 나와서 베트남 쌀국수에 맥주 한잔하고 일어서니 또 비가 온다.


비가 오니 한층 운치 있다.

숙소로 들어와 책을 좀 보다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글을 적다 보니 10:30이다.

베를린에서도 역시 하루는 잘 간다.


#마우어파크 #벼룩시장 #공연 #버스킹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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