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관계를 정의해보자

친구 = 내사람 + α (시절 인연)

by 애나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웠다. 그건 가까운 친구들 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이 둥글둥글한 편은 아닌 내가 어린 시절을 잘도 넘겨왔다. 각 시기마다 단짝 친구들이 있었고, 좋은 추억들이 많이 남았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친구들과의 관계는 변했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내가 인연을 끊어버리는 일들도 생겼다. 어떤 경우든 마음이 편치는 않았는데, 이런 시간을 거치면서 다른 관계는 모르겠지만 친구에 대해서는 나만의 중심이 생긴 것 같다.


어렸을 때엔 우정이란 무조건 좁고 깊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나의 관심을 나누어 주기보다는 내 사람들에게 더 잘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가끔 그런 관계는 나에게 상처로 돌아왔다. 이유는? 내가 보낸 일방적인 호의에 나도 모르게 어떤 대가를 바라고 있었던 거다. 친구는 당연히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닌 호의에 보답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결국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듯 혼자 과한 사랑을 보내고 혼자 아파했다는 결말.


여러 사회를 거치면서 나의 친구에 대한 정의 또한 달라졌다. 가장 크게 변한 건 우정이 영원해야 한다는 편견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릴 때의 우정이라는 건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에 바탕을 둔 것으로 어린 마음에 영원할 듯 느껴졌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친구들과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히고 각자의 관심사도 달라 어느 시기마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용수철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자주 연락하고 오랜 기간 동안 함께했던 친구들은 대학 때 만난 아이들이다. 휴학 후 복학한 나는 동기들보다 1년 늦게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고, 2학년 때 전공이 정해지는 학부였던 탓에 2학년 개강 초기는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날들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한 학번 아래의 후배들은 본인들이 친했던 동기들과 무리를 지어가고 중이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환심을 사볼 요량으로 과자를 몇 개 사 들고 가서 인사를 하는데… 그중 한 명이 “저 에이스 안 좋아하는데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 와중에 옆의 다른 후배는 어쩔 줄 몰라하고. 결국 시간이 흐르고 단짝이 된 몇 명이 매일 몰려다녔다. 나의 청춘을 함께 보내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달라진다. 나는 유학을 가고 친구들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예전엔 천사 같던 친구가 거친 언사로 토로하는 직장생활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했지만 몇 년 후 내가 그녀와 똑같이 되어있었고, 친구들이 본격적인 육아에 들어가거나 하는 일들이 달라지면서 관계가 느슨해졌다. 나도 현생에 파묻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을 겪으면서 정기적으로 하던 모임도 그만두었고 자연스럽게 연락도 소원해졌다.


어느 날 TV에서 김영하 작가가 한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살아보니 친구가 중요하지 않더라’는 말. 물론 이 말이 말 그대로 친구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행간의 의미는 친구 관계에 집착했던 어린 시절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 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생의 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대체로 생각해보면 친구라는 관계도 시절에 따라 변하는 관계였다. 그걸 시절 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느 시기에 따라 더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고 그 관계들은 시간이 지나며 필연적으로 색깔이 달라졌다. 그냥 흐르는 물에 떠 있듯 살아갔으면 좋았으련만, 떠나가는 관계들을 붙잡으려고 하면서 참 힘들고 아팠더랬다.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일 테지만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좀 더 편안했을 텐데


살면 살수록 느끼는 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단순히 우연에 의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여러 인연이 겹치고 쌓이고 시기가 맞아야 만날 수 있는 사람, 그게 친구인 것 같다. 그렇지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진 말자고 또다시 생각한다. 그냥 물 흐르는 데로, 만나지는 데로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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