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중엔 꼭 여행을 가야 하나요?

휴직=여행이라는 상관관계

by 애나

사람들이 나의 휴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휴직하고 뭐 할 거야?’였다. 이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회사/일과 관련된 시간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휴직자 중 다수가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열에 아홉이 언급하는 것은 여행이다. 시간이 많으니 어디 여행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냐는 것인데… 왜, 언제부터 휴직=여행이라는 공식이 생긴 걸까?


아마 첫 번째는 누구나 여행을 좋아한다는 일반적인 생각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일반적인 휴가는 짧기에 시간이 많을 때 가기 힘든 먼 곳을 가야 하지 않겠냐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내가 읽어본 휴직이나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여행은 빠지지 않는다.


나 또한 휴직을 결정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 중에 여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와 멀어지고 2달 조금 넘어가는 내게 여행은 To do list의 그다지 높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물론 나도 언제든 휴가가 생기면 가까운 일본으로라도 여행을 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여행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제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을 때 훌훌 떠날 수 있는데 왜 여행에 대해 흥미가 없어졌는가…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나의 여행에 대한 열망은 팬데믹 이전에 이미 사그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여행에서 얻는 인사이트가 여행에 따르는 불편함을 넘어서지 못하는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아메리카와 유럽을 묶어 서양이라고 한다면 이곳들에서 겪는 눈에 보이는/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에 지쳤다. 웃긴 건 본인들이 차별받는다고 부르짖는 유색 인종들의 아시안 차별이 더 심하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겪고 나면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호텔 생활의 불편함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 호텔 침구의 보송보송함과 생활감이 없는 청결함 등은 좋은데 계절을 막론한 건조한 공기는 나를 힘들 한다. 이 건조함은 수면과 직결되는 것이라 여행이 피로도를 높이고 이 부분이 나이 들수록 힘들어졌다. (참고로 여러 가지 이유로 에어비앤비 등은 선호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긴 비행시간의 장벽과 시차는 나이 들수록 힘들어졌다는 것. 뭐 돈이 엄청 많아서 비즈니스 이상만 타고 다닌다면야 무슨 문제겠냐만은… 난 그냥 일반인이기에 이코노미에서의 10시간 이상의 비행은 이제 힘들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팬데믹 이전의 나의 여행은 주로 일본으로 향했다. 너무 다르지 않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우리나라와 엄청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게 재밌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흥미에서 시작되어 어느 정도 일본어가 가능했었다는 이유도 있었고.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일본도 더 이상 가진 않을 것 같다.


휴직 후 나는 별다른 것들을 하진 않는다. 이전보다 활발한 게 있다면 내가 보고 싶었던 전시를 주말이 아닌 평일 낮에 보러 간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예전에 와봤던 곳이든 처음 온 곳이든 여행 온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서울은 시시각각 변하고 이제 글로벌 트렌드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웬만한 미식들도 서울에서 다 맛볼 수 있는 것도 당연하고. 사람은 저마다 취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이제 왜 여행은 안 가요?라는 질문은 그만 받고 싶다. 그게 나에 대한 선의의 관심인 것은 알지만 본인의 열망과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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