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위악 당신의 선택은?

저는 위선을 택하겠습니다.

by 애나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이란 책을 읽다가 어떤 파트에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위선과 위악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때까지 위선과 위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응큼한 사람(위선자에 대한 나의 편견)보다는 솔직한 사람(위악자에 대한 나의 인식)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지.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나보다.


작가님은 본인의 직장생활에서 위악적인 상사와 위선적인 상사 둘 모두와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는 지옥, 후자는 과장을 좀 보태어 천국이었다고 표현했다. 그중 위선이 위악보다 나았던 이유는 ‘선을 위조한다는 것’은 적어도 위조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 알기에 상대와 ‘선’에 대해 따로 합의할 필요가 없지만 ‘위악은 선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설령 안다 해도 그걸 위조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아무런 포장 없이 자신의 밑바닥을 그래도 보여주는 것을 솔직함의 미덕이라 여기는 사람과는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윤리관조차 달랐기 때문’이라고 썼다.


위와 같은 작가님의 의견에 너무나 공감했던 이유는 내가 지난해 실제 겪었던 일 때문이었다. 갑자기 상사가 바뀌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이전에도 꽤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사이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똑똑한 또라이쯤 되는 사람이려나? 엿튼 몇 년 전엔 말은 안 통하지만 그래도 토론은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시 일을 하게되면서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직접 묻고 싶을 만큼 이상한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예전엔 작게라도 직접 일은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입으로만 일하고 본인 지식이 절대적이며 오류가 없으니 반박하지 말라는 상 꼰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갈 데까지 가는 사건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슈로 인력 이동을 감행하려 했으나 명분도 이유도 납득할 수 없어서 아랫사람들의 반발에 부딪쳤고 어찌어찌 그 사건이 팀장님 귀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전화해 위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다며 감정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렸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나에게 그 사람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 욕하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바뀔 생각이 없어.” 이 말을 듣고 내가 처음 한 생각은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아니 무슨 초딩이야?’ 였다. 이건 본인 입으로 문제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내가 윗사람이니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다. 그냥 까라면 까라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정말 기도 차지 않았던 그날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도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혼비 작가님의 지옥을 선사한 위악적 상사가 다름 아닌 내 곁에 있었다. 그 당시 나의 동료들은 그 사람의 아집에 의한 업무 명령과 비논리에 이미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내가 위악의 실체 그대로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위선적이었던 상사들은 나중에 배신감을 느낄지 언정 같이 일하는 내내 조율이라는 단계를 거치기는 했었다.


이제 누가 내게 위선적인 사람과 위악적인 사람 중 누구와 일하겠느냐 묻는다며 생각할 것도 없이 위선적인 사람이다. 착가님의 말마따나 위선을 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선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라도 있으니까. 요즘 ‘난 빈말은 못하니까, 솔직하니까, 쿨하니까 라는 말 뒤에 숨어 무례한 말을 배설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본인들은 자신의 품격을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깎아 내린다는 걸 알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위악자들은 본인이 얼마나 악인인지 모르고 주변 사람들만 힘들다는 것. 뭐 어쩔 수 없다. 나의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만고의 진리를 실천하는 수밖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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