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불면의 악순환

우리 하루라도 빨리 헤어집시다

by 애나

번아웃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내가 느꼈던 주요 증상은 불안과 불면이었다. 나는 예민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불안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예민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이 덮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고, 불안은 강도를 점점 더해 몸을 계속 긴장하게 만들었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아 해소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이전보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피곤이 쌓여갔다. 결국 퇴근 후에도 몸에 들어간 힘이 빠지지 않고 각성상태가 이어져 불면의 밤으로 이어지는 최악이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불안과 불면의 조화는 당연히 나쁜 결과들을 초래했다. 평소 별 타격이 없던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는 일이 잦아졌고, 작은 일에 분노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게 되니 어떤 일을 하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에너지가 배로 들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방어막을 세우고 되도록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실제로 티가 나지 않았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정세랑 작가님의 책「재인, 재욱, 재훈」 중에 다음의 구절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 ‘불안을 들키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사방팔방에 자기 불안을 던져서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방 안에서도 쏟아지지 않는 텀블러처럼 꽉 다물어야 한다.’ 정말 그랬다. 내가 불안에 따른 힘듦을 얘기할 때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피하려 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바란 건 영혼이 없더라도 작은 위로의 한마디였는데. 결국 나는 의도치 않게 상처받았고 차라리 자발적 아싸가 되는 것이 나의 방어막이었다. 물론 당연히 이해는 간다. 다들 자기 인생 사는 것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힘듦까지 함께 공감해주기에 그들도 에너지가 모자랐던 것이겠지… 아마 누군가에게는 나도 그런 따듯한 한마디 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면은 정말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40여 년의 인생을 살면서 내가 잠자는 문제로 고통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불면의 시작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중간에 깨는 것이었는데, 어떤 때에는 잠드는 시간이 달라도 항상 눈 뜨면 일정 시간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뜬금없는 1시 40분 이런 시간) 다음 단계는 새벽에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했고 마지막엔 잠들지 못했다. 불면을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잠이 살아가는데 이렇게나 중요한지 정말 몰랐다. 잠을 자지 못하면 몸이 힘들고 식욕이 없어지고 먹는 게 부실해지니 몸은 더 피곤해지고,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방해한다.


불안과 불면의 날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졌고 중간에 끊어내지 않으면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할 것이 뻔했다. 따라서 내가 휴직을 결정하는 데에도 당연히 큰 영향을 미쳤다. 휴직 후 첫 일주일은 두 증상 모두 나아지는 듯했다. 역시나 쉬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온전한 쉼의 시간을 가진 지 4달이 된 지금도 여전히 불면의 밤은 계속되고 불안은 부지불식간에 나를 찾아온다.


과연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있을까? 사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선은 시간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 힘들어 죽겠는 사람에게 그냥 견디라는 무책임한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긴 한다. 그 결과가 나쁜지 좋은지는 다음 문제지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냥 불안과 불면을 동반자처럼 생각하기로 한다. 불안은 되도록 먼 거리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보며 빨리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불면은 자고 싶을 때 자는 걸로. 그냥 그렇게 물 흐르는 데로 살아간다.


덧: 약으로 둘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에 의존하면서 또 다른 자괴감을 더하게 될까 두렵다. 어쩌면 미련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죽을 만큼 힘들진 않으니 나아지기를 바라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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