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혼이 없어요’는 답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날들, 내가 사람들에게 내면의 불안함을 표현할수록 나에게 실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쟁터였던 회사에서 사람들이 나를 이겨야 할 때 그들은 나의 불안을 무기로 사용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그런 행동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믿었던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나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때 내가 내렸던 나름의 처방전은 ‘되도록 나를 숨기자’였던 것 같다. (물론 천성적으로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러려고 노력은 했다) 그 당시 나 자신에게 되뇌는 말 중 가장 빈번한 것들은 ‘영혼을 없애’, ‘지금은 그냥 아닌 척하고 넘어가는 거야’, ‘이 시간만 견디면 돼’,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였고 그땐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영혼을 없앤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를 지우는 것이었다. 회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불합리로 점철된 곳이었고 꼰대와 또라이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리저리 부딪치며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고자 했던 젊은 패기는 직급이라는 벽 앞에서 무참히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고, 나의 내면은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상처 입었다. 나는 잔다르크가 아니기에 그냥 모른척하고 대충 살기로 했지만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아서 자꾸 내 자아가 튀어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가 내면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고 가십 따위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만인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으니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욕하는 것에도 별로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다. (나라님도 욕하는 마당에 뭐 그쯤이야 단, 욕을 하더라도 예의는 갖추고 뒤에서 해야지…) 하지만 회사는 내가 잘한다고만 되는 것이 아닌 정치가 우선인 곳이고, 어느새 나 또한 그곳에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본능이 있었나 보다. (아무리 내가 마이웨이라도 일부 굿걸 콤플렉스가 없진 않겠지…) 회사에서 잘하는 것은 ‘고과’라는 형태로 도출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결국 고과결정권자에게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했고 천성적으로 아부 따위 하지 못하니 나의 자아 분리는 더욱 심화되었다. (문제는 이런 자아 분리가 완벽하게 될 리 없었다는 것)
얼마 전 한 아이돌의 인터뷰를 보다가 내가 번아웃으로 휴직까지 이르게 된 건 너무도 자명한 결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했던 자아 분리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아이는 아이돌로써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과 원래 자신의 모습이 200% 같다며 오히려 무언가 다른 점을 보여주려고 둘을 분리시켰을 때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 매우 행복하고 마음이 편하다고. 결국 나 자신과 내가 보여주는 모습이 다를 때, 그리고 그 보여주는 모습이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야 하는 모습이라면 그걸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결국 노력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진정 내면이 강한 사람들은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하정우는 “무엇보다 나 자신의 행복을 우선에 둘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고 중요한 말이라고, 쉬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전의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새 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맞추기 위해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았고, 사실 그 가면이 나를 완전히 가릴 수는 없기에 오히려 오류를 일으켜 결국 나는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여전히 나는 가면을 다 벗진 못했다. 그리고 그 가면들은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어서 숨쉬기가 불편하다. 더욱 안타까운 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변하기 전의 나로 돌아가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 그걸 사람들은 세월의 때라고 부를지도…) 중요한 건 그냥 이렇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가면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노력’이 필요하는 것이다. 그때 내가 숨 쉬는 새로운 공기가 나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