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헤아릴 수 없는 마음
무너진 수면 패턴에 또다시 잠들지 못하던 밤. 괜스레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부고를 보았다. 얼마 전 자주 가는 팬덤 플랫폼에서 웰컴 인사 배너를 봤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나이의 꽃다운 청춘 하나가 또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부고 기사의 댓글 같은 것 찾아보지도 않지만 꼭 등장할 몇 마디는 알 것 같다. "죽을힘으로 살아보지!" 또는 "남은 가족들은 어떡하라고…" 같은 말들.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그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말들을 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내가 그 찰나의 문턱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나 자신을 해치기 직전까지 갔던 경험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은 없다. 당시 나는 미국 유학 2년 차였고, 박사과정을 외국에서 시작한 건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다. 어떤 면으로나 부족한 것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도 않았고 큰 트러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완전히 이방인이었고(아시안이 없진 않았지만 어쨌든 다수의 사람들과 생김새부터가 다른), 익숙지 않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 언제나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반면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관계들은 너무나 멀리 있었고. 결국 쌓여가던 마음의 불안정은 내가 그곳에 있어야 했던 유일한 목적인 학업은 물론 삶 자체를 흔들어 놓았고 그에 따른 우울은 깊어져만 갔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날이 있다. 일어날 힘이 나지 않아 침대에 누워있는데 클로짓(한 평 정도의 공간에 옷을 걸 수 있는 봉들이 있었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면 아마도 저곳일까? 이전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한 구체적으로 떠올린 것은 처음이라 나 스스로도 놀라고 무서웠다.
물론 그때의 나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고(못했고)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가 나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죽을힘으로 살아보자' 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내겐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만약 그 당시 나의 절망이 조금 더 깊고 용기가 조금 더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때의 경험 이후 나는 어떤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이 내몰렸을 깊은 절망, 그리고 선택과 실행 사이의 시간이 찰나라는 것은 이해하게 되었다. (몰랐으면 더 좋았겠지만...)
누군가는 여기까지 읽고 당신이 '남겨진 사람'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너무 쉽게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불행히도 '남겨진 사람'이 될 뻔한 경험 또한 있다. (이것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앞서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남겨진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상처는 매우 컸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완전히 극복되진 않았다.
최근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내가 굳이 몰랐으면 좋았을 일들을 겪으며 깨달은 건 떠나간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애도가,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조용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남겨진 사람들이 너무 감정적이 되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타인(가족 포함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타인이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기에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들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도울 수는 없었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힘내' 라거나 '산 사람을 살아야지' 같은 당장은 공감되지 않는 말들 또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옆에서 조용히 함께 슬퍼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청춘의 친구들의 SNS에 안 좋은 댓글들이 달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발 생각 없는 사람들의 오지랖은 넣어두면 좋겠다. 그런 비난을 할 바엔 차라리 외면하는 게 낫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우린 너무 많은 생명을 떠나보냈다. 더 이상 누구도 아파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를 해치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세상 따위 올리가 만무하니 그저 각자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그러니 세 치 혀나 가벼운 손가락으로라도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