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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보내고, 진짜 엄마가 되다.

나는 엄마가 없다. 

나도 엄마지만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남편이랑 싸웠을 때,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 아이들 일로 고민될 때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다. 


     




미국에 10년 동안 살면서 엄마랑 매일 전화통화했었다. 

엄마랑 나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면 서로 데면데면했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있으면 그렇게 살가운 사이로 변했다. 

매일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고, 서로를 그리워했다. 

후 미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땐 지금처럼 쉽게 연락할 수 있는 SNS 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스카이프로 엄마 얼굴을 봤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영상통화로 엄마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외로운 미국 생활을 이겨냈고, 엄마는 내게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이후에 돌아가셨다. 

이후, 나는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와 매일 이야기하던 나의 소중한 사람을 뺏긴 기분이 들었다. 

나의 사소한 일상을 재잘재잘 나누던,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주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화가 났다. 





‘왜 나만 엄마가 없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면 엄마가 없는 친구는 나 혼자였다. 

내 친구들은 다 엄마가 있었다. 

딸이 힘들면 보듬어주고, 안아주며,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엄마가 다 있었다. 



“나 지금 엄마랑 통화해야 하니까 나중에 전화하자”라고 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던지... 


시댁에 갔는데 시어머니는 시집보낸 딸의 전화를 하루 종일 붙잡고 계셨다. 

‘딸이 결혼했으니 얼마나 엄마랑 미주알고주알 할 이야기가 많을까?’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슬펐다. 

내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하며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를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엄마는 없지만, 나 스스로가 그런 역할을 해보면 어떨까?’ 

누군가에게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예뻐하는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탓하면 나만 더 힘들어지고 비참해졌다. 


생각해보니 사랑을 누군가에게 받으려고만 했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준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그게 사랑받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사랑하고 내가 나를 돌보는 연습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다가 가신 건데...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게 없는 것에 대해 우울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봐야겠어!




‘나를 이때까지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인데...’ 


‘내가 없는 것에만 집중하고, 남과 비교하며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구나!’를 깨달으니 아찔했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가족, 사람들, 친구는 보지 못하고 이미 돌아가신 엄마에게만 집중했던 나는 이제 없다. 우울하게 사는 건 하늘에 계신 엄마도 슬퍼하실 일이었다.






나는 이제 내게 없는 것을 보지 않는다. 

그것에 집중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면 탈탈 털어버리고 내게 주어진 것을 생각한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나는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스스로 다독여본다. 






엄마가 떠나가고 나는 진짜로 엄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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