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신문배달- 1st

오토바이 타는 여대생

이 이야기는 나의 대학생 시절 일화이다.

내 전공은 클래식 피아노로 정확히 말하자면 기악과 피아노 전공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피아노 개인 지도나 피아노 학원 강사였다.

피아노는 7살부터 시작해서 엄마한테 혼나면서 다녔다.

하지만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음대까지 갔으니 나의 인생은 피아노스러웠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항상 무언가 결핍되어있다고 느꼈고,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다 위인들이나, 크게 된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신문을 돌리기였다.

그래, 신문 돌리기!! 바로 이거다.

이상하게 난 신문 배달에 꽂혔다.

내가 해 봐야 할 게 이거구나!!

나는 이미 어린 나이가 아닌 대학생이었지만,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옆 동네에 동아일보 지점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그날로 찾아가서 면접을 보았다.

지점장 아저씨는 두 가지를 물어보셨다.

첫째는 신문 배달하려는 이유, 둘째는 새벽에 일찍 출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하니, 아저씨는 한참을 아무 말이 없으시다가, 언제부터 할 수 있느냐고 하신다.


다행이다! 면접에 통과한 것이다.

우선 신문 100부를 줄 테니 내일부터 나오라 하신다.

다음날 새벽 3시에 나갔더니

방금 막 나온 따끈한 신문 100부와 배달될 주소 목록을 함께 주신다.

일단 100부만 돌려보라며 걸어서 배달할 수 있는 곳만 준거라 하신다.

덜덜 끄는 손수레에 신문 100부를 싣고

아주 이른 새벽에 손수 적어주신 주소를 보며, 신문을 넣기 시작했다.


밤과 새벽 중간쯤의 모호한 공기를 뚫고

주소를 더듬더듬 찾아 신문을 가지런히 놓는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에 살아서인지

주택 주소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주소가 맞는지 확인하고 신문을 놓는다는 게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아저씨가 접혀있는 신문을

각에 맞춰 잘 던지는 법도 알려주셨다.

신문은 결이 난 방향대로 접혀 있어

접힌 반대 방향으로 던지면 한 장씩 다 분리된다.

결 방향에 맞게 손목 스냅을 이용해 휙 던져야 대문 앞에 가지런히 놓을 수 있다고 하셨다.

매일같이 피아노 손가락 연습만 하던 나는

이번엔 손목 스냅 꺾기를 연습했다.

내가 신문을 넣던 집들은 옛날 주택이거나

오래된 빌라여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5~6층의 빌라에 신문을 넣어야 하면

4층에 서서 5층 집 문 앞에 잘 놓일 수 있게

잘 던지는 신공도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100부라 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오래된 주택 지역에서는 집을 찾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피아노만 쳐오던 나에게

이 새로운 일은 말 그대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신문을 전달하는 일은

신나고 매력적인 일이었던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지점장 아저씨는 300부로 할당량을 늘려 주셨다.

또 신문에 들어갈 광고 전단 끼는 법도 배웠는데

신문 두 번째 장에 각을 잘 맞춰서 착착 넣어야 했다.

그렇게 내게 할당된 배달 부수에

광고지를 끼우면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새벽 3시 출근을 위해 그 전날 이른 시간에 누워야 했지만

뜨거운 피가 흐르는 청춘이었던 나는

일찍 잔다는 게 무슨 죄처럼 여겨졌다.

원래 밤 12시 언저리에 자곤 했던 내가

일찍 잔다는 것은

일찍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결국, 출근시간까지 잠을 못 자고 밤을 꼴딱 새워서

새벽 3시에 배달하는 기인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2~3시간 정도 배달을 끝내고 오면

그때부터 오후까지 늘어지게 자는 것이었다.


새벽 3시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그 시간에

신문지 특유의 냄새를 맡아가며 배달하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종이 냄새와 비릿한 잉크 향이 버무려진 것으로

막 나온 빵처럼 따뜻함이 느껴지는 신문들이었다.

피아노 레슨으로만 돈을 벌어오던 나에게

신문 배달은 말 그대로 새로운 경험이었고,

나중에 나도 크게 되겠지...라는 이상한 믿음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점장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해보지 않겠냐고 물으신다.

예쁜 스쿠터가 아닌 중국집 형아들 배달할 때 타는

씨티100 오토바이였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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