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신문배달 -2nd

오토바이 타는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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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건 빨간색인 그 오토바이

조금은 색이 바랬고, 흠집이 많은 오토바이였다.

아저씨가 발로 시동 거는 시범을 보여주신다.

부릉부릉 부르릉 하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린다.

고요한 새벽이라 그런지 그 소리가 우렁차다.


난 그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한다.

우렁찬 소리가 맘에 들어서였을까

아님 아저씨의 시동 거는 발이 힘차 보여서였을까

아님 촌스런 빨간색이 맘에 들어서였을까

아마도 손수레에 무거운 신문을 잔뜩 싣고 배달만 하던 내게

오토바이 바구니에 신문을 넣고 배달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멋져 보여 그랬나 보다


아저씨는 오토바이 시동 걸 때와

오토바이를 세워 둘 때

그리고 시동 끄는 법

주행하는 법까지 알려주셨다


이번엔 내가 타볼 차례다

평소에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였을까

시동 걸린 자전거 타는 느낌으로 서서히 운전해봤다

아저씨는 처음인데 잘 타네 하시며

나에게 시티 100 오토바이 키를 주신다.

그러면서 이 오토바이를 빌려줄 테니

신문배달도 하면서

출퇴근 용으로 필요하면 쓰라고 하신다


오예!!

오토바이 타고 출근이라니!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동아일보 지점까지 걸어서 15~20분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 오토바이 타고 슝 오면 5분도 채 안 걸린다.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근하는 그 느낌이란...

성공한 사회인이 대기업에 입사하여

출근카드 찍는 비숫한 느낌이라고 나 할까

너무 좋았다.


오토바이가 있어서 배달 부수는 점점 더 늘어났고

앞 바구니뿐만 아니라

뒷 좌석에도 몇 백 부씩 끈으로 묶어가며

점차 전문적이고 능수능란한 모습으로

신문을 싣기 시작했다.


제일 힘든 날은 비가 올 때였다.

신문들이 젖지 않게 조심조심 다뤄

비닐봉지 안에 넣고

던져서도 안되고 집 정문에 가지런히 가져다 놓아야 했다.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하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곤 하셨다.

"아니 다 큰 처녀가 신문 배달을 하네"

나를 신기하게 보곤 하셨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손과 옷에는 신문잉크 냄새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대학교 방학 때라

동네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서 강사로

더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는 신문 배달원으로

오후에는 학원 피아노 선생님으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 학원도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가야 했는데

대학생이라 차도 없었고

버스 노선도 없었고

그냥 걸어 다니기만 했던 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피아노 학원까지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는 새벽에만 탔었지

오후에는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30분 걸어서 가는 게 귀찮다고 느껴질 때쯤

이 생각이 든 것이다.


'아, 그래도 피아노 선생님이 오토바이 타고

학원에 출근한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뭐 어때? 그게 나쁜 일인가?'

두 가지 생각에 고민하다가

결국 난 씨티100 오토바이를 타고 피아노 학원으로 출근했다.

학원 옆 아파트 단지에 주차를 하고 보니

10분도 채 안 걸리는 단축된 출근시간에

만족스럽기도 하고

내 모습이 웃겨 혼자 키득키득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나

피아노 학원 옆반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오토바이 타고 다녀요?"

"빨간 중국집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거 엄마랑 봤어요"


얼굴이 빨개졌다.

잘못 한건 아닌데

아주 잘못한 것 같았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대충 둘러대고

그다음 날부터 다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교 방학이 끝나면서

3개월 정도 지속된 나의 배달 생활도 마무리되었다.

새벽에 오토바이 타고 부르릉 다니면

동네 온갖 개들이 쫒아 오며

컹컹 짖어댔던 기억과


비가 오는데 비닐 우비 입고

비닐 안에 든 신문을 들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신문을 넣던 일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웬 처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냐며

놀라시던 일들이

이젠 모두 추억이 되었다.


신문을 돌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정말 크게 된 사람인지를 묻는다

아직도 작은 것에 일장일단 마음이 흔들리지만

대학생 때 씨티100을 타며 신문 돌렸던

그 기억의 조각으로 인해

오늘도 난 가끔 웃는다.


비록 대학생 때 잠깐 일했던 경험이지만

가끔 마주치는 택배원들이나 배달 아저씨들께

감사의 마음과 함께

눈인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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