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ving Tree
아이들을 낳고 엄마가 된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준다.
나의 시간, 나의 재능, 나의 돈을 모두 아이 키우는데 쏟아붓는다.
왜일까?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서일까?
어렵게 얻은 아이들이라 그런 것일까?
아이들은 또 다른 나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이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런 생각은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기 보다는
홈스쿨링하며 키워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집에서 엄마와 놀면서 배우는 아이들...
미국에 있을 때 표본이 될 만한 좋은 홈스쿨 가정을 만났다.
경쟁과 비교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교육과 달리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며
아이들 흥미를 따라가며 배우는 삶!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나의 모든 것을 아이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나의 삶을 홈스쿨링에 갈아 넣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기관에 가는 것보다
엄마랑 집에서 놀고, 공부하며, 공원에 가는 지금의 삶을 좋아한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인데
아이들과 같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마구 퍼주는 이 나무가 자연의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다.
소년에게 자신의 과일을 내어주고
쉴만한 그늘을 주며
자신의 가지에서 그네도 탈 수 있게 내어준다.
그 나무는 소년을 사랑했고
자신의 공간에 와서 놀다 가는 그 소년을 항상 그리워한다.
소년이 자라 돈이 필요하자 자신의 과일을 따다 팔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의 가지로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
멀리 떠나고 싶다는 성인이 된 소년에게
자신의 몸통을 내어주어 배를 만들라고 한다.
이렇듯 나무는 사랑하는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그래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이 나무를 보며 이제는 엄마가 된 나의 모습을 본다.
아이들에게 나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었다.
나의 시간과 가능성, 여성성, 물질까지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준다.
이 책을 보며 눈물이 났다.
나는 모든 걸 내어주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 나무 같은가?
나는 이 끝없는 육아의 세계에 지쳐 불평하고 있지 않은지...
탈출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는지...
되돌아보았다.
이 사랑 많은 나무 곁에서 그네도 타고 과실도 먹고
그늘에서 잠을 자던 소년은
이제 훌쩍 자라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아주 가끔 나무를 찾아올 뿐이었다.
그것도 나무가 보고싶어서가 아닌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만 나무를 찾아 온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도 지금은 마냥 어리니깐
엄마 무릎에서 놀고
사랑한다 입 맞춰 주고
나를 안아 주는 것일까?
세월이 지나 자신만의 세계에 이르면
엄마는 그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여기는 걸까?
슬펐다.
만약 그것이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아직은 어린아이인 이 시절
내 아이와 좀 더 진하게 우리의 사랑을 새기고 싶다.
아직 내 곁에 있을 때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쓰다듬어 주고
사랑한다고 더 고백하고 싶다.
밑동만 남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이제는 노인이 된 소년이 찾아온다.
이제는 아무것도 줄 게 없다며 미안해하는 나무에게
소년은 자신은 이제 늙어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쉬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여전히 이 사랑꾼 나무는
자신의 그루터기에 앉아 쉬라며
자신의 방법으로 소년을 배려하고 사랑해준다.
언젠가 생각한 적이 있다.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한자리에 머무르며
사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