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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로 발견된  
남편의 가치

속초 한 달 살기 D-6

우리 가족은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다.

한 겨울 강원도 속초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4명이 일주일간 같이 있으니

서로 얼마나 다른 존재였는지 매일 깨닫는다.


남편은 그동안 일이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적었는데

이곳 속초에서는 하루 종일 24시간 같이 지내다 보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육아관이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아이들에게 거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이이기 때문에 지저분할 수 있고

어질러도 아이니깐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몰입해서 놀 때는 치울 생각을 못한다.

레고며 색종이며 거실을 초토화시킨다.

하지만 나는 자기 전 한번 치우는 것 외에

정리하란 말을 거의 안 한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치우라고 하면

어른들도 싫어할 것이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그날 논 것을 못 치우고

다음날이 되어야 치운 적도 있다.

그래도 난 개의치 않는다.

지저분하게 놀아도

그게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준다고

그게 아이다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남편은 깔끔 주의자다.

완벽주의자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지저분하면

"집에 들어오기 싫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치워라.

제자리에 갖다 놔라.

닦아라”

거의 잔소리 3종 세트다.


아이들이 한참을 레고로 놀고 있는데

거실이 지저분해지니 치우라고 한다.

난 지저분한 거실보다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놔두는데

남편은 그 모습이 보기 힘든 거다.

그런 남편도 아내로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실 아이들 엄마로서의 입장이

아직까지는 더 강한 듯하다.


이런 남편과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

우리가 취한 행동은 바로 산책!

속초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장점은

낯선 장소에서의 산책이다.


우리는 집 앞 영랑호를 걷기로 한다.

마이너스 10도의 한파지만 중무장하고 나가보기로 한다.

밖에 나가기 싫다고 하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논다.

마침 호수가 꽁꽁 얼었다.

하얗게 변한 얼음 호수와

새파란 하늘의 조화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얼음에서 노는 아이들을 사진 찍기 위해

호수 위의 얼음으로 가 보았다. 좀 더 잘 찍으려고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얼음이 깨져버렸다.

한 발자국만 내딛었는데도 그곳은 살얼음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오른쪽 운동화는 호수 물에 쫄딱 젖어 버렸다.


첫째 아이가 밖에 나오자

신났다고 강아지처럼 뛰어다닌다.

그런데 아이 주변으로 뭔가가 자꾸 날아다닌다.

가까이 보니 털!

오리털!

오리 솜털이었다.

아이가 너무 열중해서 놀다가

그만 오리털 패딩에 구멍이 난 상황이었다.

그 구멍으로 오리 솜털들이 마구마구 탈출해 나풀나풀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털이 나온다며 신나서 춤을 추고 뛰어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데 옆에서 같이 뛰놀던 둘째 아이가 갑자기 길에서 넘어졌다.

나름 세게 부딪혔는지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는 호수 물에 발이 빠졌고,

첫째는 패딩에 구멍이 났으며,

둘째는 길 한복판에서 넘어졌다.


결국은 남편만이 아무 사고가 안 났다.

뒤에서 가만히 있던 남편만이 온전했다.


그러고 보면 나와 아이들이 사고를 쳐도

항상 안전을 추구하는 남편은 멀쩡했다.

남편의 역할은 너저분한 우리를

지켜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그런 힘이 있었다.


남편이 항상 아이들에게 치우라고 하는 잔소리.

가끔은 나도 남편의 잔소리가 싫다.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이지만

나도 들을 때마다 뜨끔뜨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남편이 있기에

우리 가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에 빠지고, 넘어지고, 옷이 찢어져도 괜찮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위로해주고

토닥토닥해주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남편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의 지저분함을

평균화시켜주는

남편의 안전함.

깔끔함.

그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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