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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를 보러 가는 이유

속초한달살기 D-5

한 달 살기 숙소에서 3분 정도 걸어 나가면 영랑호가 보인다.

이번 주는 전국에 한파가 불어 닥쳐 추워서 어디 나갈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바로 집 앞에 자연 호수가 있는데 어찌 안 나 가볼 수 있으랴.

영랑호를 조금만 따라 걷다 보면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나온단다.

우리는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하고 영랑호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밖에 나오자마자 차가운 공기와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내복에 옷을 두 개나 껴입고 장갑에 모자, 귀돌이까지 끼고

단단히 중무장해서인지 그래도 견딜만한 추위였다.

마이너스 15도!

그래도 수도권 지역보다 강원도가 2도 정도 높다.

매서운 추위에 호수는 꽝꽝 얼어붙었지만

그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참으로 따사롭다.


5분 정도, 우리의 목적지인 이탈리안 식당을 걸어가는데

아이들은 춥다고 난리다.

으쌰 으쌰 하며 드디어 레스토랑에 도착!

아이들이 먹고 싶다던 피자와 리조또, 그리고 칼초네를 시켰다.

원래는 식전 빵도 나오는데 코로나로 인해 빵 택배가 안 온다고 했다.

정통 이탈리아 스타일의 화덕에 구운 마그리따 피자와

싱싱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리소토를 먹으니

이제야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자연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만약 집에 있었다면 밖에는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한 달 살기의 시간 덕분에
일상이 특별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근처, 속초에서 유명한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바다정원>이라는 유명한 카페인데

얼마 전 남편이 일 때문에 이곳에 잠시 들렸는데

너무 좋았다고 아내랑 아이들과 함께 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단다.

바다 정원 카페는 국내 최대 크기의 단일 카페라는 자부심이 넘쳤다.

하지만 코로나 거리두기 2단계로

카페에서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고 매장 내 착석 금지였다.

남편은 캐러멜 마끼아또를 시키고,

나는 녹차 라테를 시켰다.

아이들은 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다 했으나 케이크류는 없었다.


우린 주문한 음료를 들고 이 카페의 최대 장점인

바다 뷰를 보러 나갔다.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순간

냉동실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속초 바다 색깔이 이렇게 파랬던가...

정말 찐한 파란색의 바다...

몸은 너무 추웠지만 눈은 바다에게서 뗄 수 없었다.

거기에 하얀 색깔의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는데...

장관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바다와 하얀 갈매기.

파란 하늘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 그림 같은 조화를

나는 멍하니 그저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일상에 지칠 때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말이

이래서구나...


분주했던 나의 마음...

파도 소리는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바람이 강해서 파도까지 강렬하고 열렬하게 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가 떠올랐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4년...

지금은 예전만큼 엄마 생각도 안 나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란 말만 들어도 울던 나의 모습은 더 이상 없는데....


이 강렬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엄마가 생각났다.

부산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는 바다를 항상 그리워했다.

부산만 가면 바다 보러 가자고

송정 바다며

태종대며

해운대며

그렇게 다니셨는데...

이곳 강원도 속초 바닷가에서

딸은 이제야 엄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도 무뚝뚝한 남편과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들과 살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바다는 그런 엄마를 위로해주지는 않았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외롭다.

가끔은 서글프다.

이 거친 겨울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리만큼 나의 마음은 차분해져갔다.


우리 엄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바다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래... 힘들지...?
잘하고 있어.
그래.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바다가 전하는 위로를 가만히

온몸으로 받아 드렸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격려와 칭찬이 필요할 때....

꼭 그 존재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은 것 같다.

자연이란 존재는...

위대한 자연의 존재는

그렇게 말없이 나를 품고

위로해주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달살기'는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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