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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에 노천탕 이용기

속초 한 달 살기 D-8

나에게는 역마살이 있다.

한국에서의 삶을 답답해했다.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다름 사람과 비교당하며

평가받는 삶이 싫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외국에 나가면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는

목욕탕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동네 목욕탕을 찾아

나의 몸을 따뜻한 물에 푹 담그면

나의 딱딱하게 굳었던 뭉친 근육들이 풀리는 그 느낌

그렇게 나는 목욕탕을 사랑했다.


미국에서 살 때는 한국 목욕탕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다른 주까지 운전해서 목욕탕에 갔다.

내가 살던 주에는 아쉽게도 한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 아니라

목욕탕이 없었다.

건너편 주에는 한국 목욕탕이 하나 있었는데

운전해서 5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또 멀리 다른 주에 있는

자동차로 8시간 걸리는 거리도

단순히 목욕탕을 가기 위해 마다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렇게 타향살이에서

목욕탕이 주는 위로와 안도감은

외국에서 사는 큰 힘이 되었다.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목욕탕을 찾았다.

물론 작년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렇게 자주는 못 갔지만.


목욕탕 문화가 너무 좋아서

직접 목욕탕을 열어보면 어떨까 고민도 했다.

목욕하며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새롭게 접근해 보고 싶었다.    

  

지금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했을 때

숙소 주변에 괜찮은 목욕탕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야호! 유명한 온천이 숙소 근처에 있었다.

이름하여 <척산 온천장>.

1985년 준공된 이 온천은 미네랄이 살아있는 알칼리성 온천수를 쓴다고 홍보하였다.

목욕탕만 있어도 좋은데

온천이라니!

그것도 진짜 온천!


우리 가족은 당장 그 온천으로 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붐비지 않을 때를 공략해보기로 했다.

평일 오전에 찾은 온천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거리를 두면서

한적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기대한 곳은 바로 노천탕이다.

어렸을 때는 노천탕의 매력을 몰랐다.

나를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셨던

엄마가 노천탕을 좋아하니

나는 그저 따라다니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노천탕의 묘미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실내 탕 안에서는 오래 있으면 어지러운데

야외에서 즐기는 탕은 상쾌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다.

날씨는 마이너스 10도!

노천탕 옆에는 처마 밑으로 고드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다른 사람들도 한파에 노천탕은 무리였는지

아무도 안 들어온다.


그렇게 나는 노천탕을 혼자 전세 내며

여유롭게 즐겼다.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는 차가움을 넘어서 상쾌했다.

몸은 40도를 넘는 뜨거운 탕 안에 있고

머리는 마이너스 10도에 있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노천 탕 안으로 흐르는 뜨거운 물줄기를 가만히 본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

일명 물 멍!

물 보며 멍 때리기를 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나 홀로 노천탕을 즐기고 있다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와~ 시원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셨을 텐데...


탕 주변에는 소나무들이 있었다.

얼핏 봐도 오래된 소나무 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소나무들은 이 탕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겠지...

저 소나무는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겠지...


사람들은 자기가 백만 년 살 거라고 생각한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른다.

평소 병원 한번 안 가신 엄마가

꽃다운 60세에 그렇게 세상을 떠나실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노천탕 옆의 소나무가 이야기하는 듯하다.


한치의 앞일도 모르는 거.
그게 인생이라고.


내가 언제 이 세상과 작별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온천에서 다시 한번

생의 의지를 다짐한다.


언제 갈지 모르는 이 세상.

후회 없이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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