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와우코치 손지혜작가
Jan 13. 2021
'한 달 살기'의 매력
속초 한 달 살기 D-9
우리 가족은 서둘러 밖을 나갔다.
오늘은 한 달 살기로 속초를 찾고 나서
최고로 높은 기온이다.
저번 주는 영하 10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장작 영상 8도이다.
이건 거의 봄 수준이다.
여행 중 날씨가 끼치는 영향은 크다.
우리 가족은 얼마나 날씨가 포근해졌을지 상상하며 밖을 향했다.
마스크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줌의 겨울 냄새.
한결 따뜻해졌다.
햇살 아래 있으니
꼭 봄이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도 못 먹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점찍어 둔 샌드위치 가게로 향한다.
집에서 10분 남짓 거리.
속초에서 유명하다는 그 샌드위치 집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맵고 색이 시뻘건, 군침이 도는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나 먹고 나서 탈이 났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 한 요즘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맛있어 보이는 걸 먹는 것보다
몸에 좋아 보이는 걸 먹는 게
뒤탈이 없는 나이로 들어 선 것이다.
그런데 이 샌드위치 사진을 보자마자
몸에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양상추와 토마토 같은 재료들이
얼마나 정갈하던지...
그 샌드위치 가게를 오늘 간다.
우리는 속초에 왔으니 ‘홍게 샌드위치’로 시켰다.
아이들 몫으로는 ‘에그 명란 샌드위치’와 ‘바비큐 치킨 샌드위치’.
거리두기로 매장 안에선 섭취 불가.
우린 고민했다.
이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를 어디서 먹어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남편은 날씨도 좋으니 바닷가에 가자고 한다.
우리는 얼마 전 다녀왔던 속초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 전 영하 10도에 찾았던 속초 바다
영상 8도에 다시 만난 바다가 얼마나 포근하게 느껴지던지.
바람이 덜 불어 파도도 아주 얌전해졌다.
우린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고
홍게 샌드위치를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눈 앞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 거리고
지금 내 입으로는 빨간 홍게의 속살들이 들어간다.
나는 게 종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거의 정신을 내려놓고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이젠 게 살 발라 먹는 것도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는데...
이 홍게 샌드위치는 깔끔하게 게 살을 발라놓아
나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파란 바다를 보며 먹으니 정말 꿀 맛이었다.
아이들은 모래에서 노느라
엄마 아빠가 오붓하게 샌드위치를 즐길 시간을 준다.
점심을 다 먹은 후 나는
바다 쪽으로 더 가까이 가본다.
한 달 살기를 속초에서 하는 것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 동해 바다를 가까이 둘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바다를 가만히 응시했다.
멀리서 볼 때는 바다의 색깔이 마냥 푸르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바다의 색깔이 푸르다는 말은 어딘가 부족했다.
내가 본 바다 색깔은
검푸른색
초록색
청록색
투명한 유리 색
하얀색
파란색
하늘색
비취색
옥색
에메랄드 색이었다.
이 모든 색깔들이 함께 모여있으니 푸른 바다라고 하는 것일까.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멀리서 볼 때는 단색이지만
그 인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 다른 색이다.
어떤 인생은 청록색
어떤 인생은 비취색
또 어떤 인생은 하얀색...
나의 인생은 무슨 색일까?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바다 가까이 모래에는 가지 않겠다는 남편.
신발에 모래가 들어간다고 염려하는 깔끔 주의자.
어느새 바다 근처, 내 옆에 와있다.
남편은 갑자기 돌멩이를 주워 물제비를 뜨기 시작한다.
자꾸 자기를 보라면서 계속 돌멩이를 던진다.
처음에는 와! 하며 반응했더니
계속 돌멩이를 던지며 보란다.
두 아이들과 같은 영락없는 큰아들이다.
아이들은 모래 속에서 보물을 캐기에 바쁘다.
조개껍데기
말린 미역 한 조각
파도에 깎여 반들반들해진 유리조각.
마치 소중한 보물인 양 주머니 속에 챙겨 넣는다.
그렇게 우리는 속초 겨울 바다를 즐겼다.
급할 게 없는 우리의 한 달 살기.
정해진 일정 속에서 시간에 쫓기어
가야 할 곳을 쏘다니는 여행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 오늘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에
바다 풍경을 마음속에 넣고 집에 돌아왔다.
이게 바로 한 달 살기의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