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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동안, 남편이 변했다

속초 한 달 살기 D-10

오늘 오후에는 이곳 기온이 8도까지 올랐다.

오늘은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남편이 나가자고 한다.

이상하다.

보통 남편은 집에서 한 없이 쉬려고 하는 주의고

나는 밖에 나가자고 하는 주의인데...

이 곳 속초에 오니 남편이 적극적으로 밖에 나가자고 한다.

물론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 반갑지만 영 어색하다.

역시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변하나 보다.


우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송지호 해변’을 가보기로 한다.

이 곳은 고성군에 있는 해변으로 한적하고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자연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져 겨울 철새 도래지라고 한다.

우리는 가방 하나 들쳐 매고 오늘도 겨울바다를 보러 간다.

나는 그동안 외국의 바다만 멋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동해바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푸르른 색감이 좋았다.


집에서 20분 정도 달렸을까.

우린 송지호 해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바다다~”하며 달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모래사장에서 엄마를 부른다.

“엄마 오징어예요. 제가 오징어를 잡았어요!”

무슨 소리인가 봤더니 정말 오징어다.

새끼 오징어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다.

모래 해변 곳곳에 오징어들이 죽어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들의 이름은 매오징어라고 한다.

해수가 뒤집히는 '용승 현상' 때문에 엄청난 양의 매오징어 떼가 밀려 나와 죽은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죽은 오징어들을 손으로 줍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첫째 아이가 집에 가져간다며

패딩 주머니에 넣으려고 한다.

아들아! 아무리 오징어가 좋아도 흐물흐물한 오징어를 주머니에 넣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아이들에게 모래 해변은 진정한 놀이터다.

갑자기 아이들은 모래를 파더니 굴을 만든다.

내가 밖에 나가자 할 때도 집에서 있고 싶다며 떼쓰던 아이였는데

밖에 나오기만 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논다.

어떻게 놀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 속 놀이 재료들을 스스로 찾아 논다.


남편은 돗자리라도 챙겨 올걸 그랬다며 앉고 싶다고 한다.

발 밑 모래를 보니, 모래가 아주 곱고 깨끗하다.

“여기에 그냥 앉아보면 어때요?”

내가 물었다.

깔끔쟁이 남편이 웬일인지 그러자고 한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해변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바다를 응시한다.

아이들은 가까운 곳에서 모래 놀이를 하고 있고

나와 남편은 바다를 보고 앉아있다.


이런 경은 최근 몇 년간 우리 가정에게 없던 모습이다.

남편은 일로 항상 바빴고

아이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지냈다.

아이들이 원에 다녀올 때면 집에 돌아와서  숙제를 하느라 바빴다.

그런 삶 속에서 엄마란 자리는

늘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을 도우며 식사를 준비하는 것.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챙겨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가가 허전했다.

내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오늘 우리 부부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

특별한 대화는 없지만 이 고요함이 좋다.

그렇게 바다를 응시하던 남편은 모래사장에 눕는다.

달랑 하나 챙겨 온 배낭을 머리에 받히고서.



‘아이코! 저런 깔끔한 사람이 맨바닥에 그냥 눕다니!’

자연 속에 있으니 남편의 완벽주의 성향도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

그렇게 누워서 남편은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네!

이렇게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은 처음 봐”

그랬다.

오늘은 바다도 하늘도 아주 깨끗한 도화지 같았다.  


포근했던 겨울바다지만 오래 있으니 콧물이 훌쩍 나온다.

“우리 옹심이 먹으러 갈까?”

남편이 묻는다.

감자로 만든 옹심이는 나의 최애 음식이다.

옹심이는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은 안 좋아해서 남편과는 옹심이를 먹을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먼저 옹심이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와... 역시 사람은 자연 속에 있어야 해... '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그러자고 한다.


우리는 집 근처 작은 옹심이 식당을 찾았다.

옹심이 한 그릇과 옹심이칼국수 한 그릇, 감자전을 시켰다.

쫄깃한 옹심이를 먹는데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강원도 옹심이의 이 감을 참 좋아하셨는데...

엄마...

엄마를 그리워하며 나는 옹심이를 먹는다.



그렇게 우리 넷은 국물까지 싹싹

강원도 토속 음식을 다 먹고서는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옹심이 가게 옆 마카롱 가게가 보이는 게 아닌가.

“어? 마카롱 가게도 여기 있네?”

나의 한마디에 남편은 갑자기 차를 세운다.

가서 마카롱을 사 오란다.

'와... 우리 남편은 절대 이럴 사람이 아닌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인데... '

내가 꼭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마카롱 가게가 보여서 마카롱이다 외쳤을 뿐인데...

고지식한 남편은 웬일로 마카롱을 먹자고 한다.

'히야... 역시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구나!'

나와 아이들은 다람쥐들처럼 쪼르륵 마카롱 가게에 들어간다.

무엇을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원하는 맛 1개씩을 골랐다.


집에 들어와서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못 마시지만 나지만, 남편은 커피를  사랑하기에...

커피와 마카롱...

씁쓸한 맛의 커피와 달달한 마카롱.

이 다른 두 맛이 참 잘 어울린다.


마치 우리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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