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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닭강정이 싫다

속초 한 달 살기 D-11

속초에 오고 나서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겨울 바다도 아니고

설악산도 아닌

바로 만석 닭강정이다.

닭강정이야 치킨의 또 다른 친구로서

달달한 맛으로 먹는 누구나 아는 그 맛이 아닌가?

속초라고 특별히 닭강정이 맛있을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속초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지 시간이 꽤 지나고

드디어 속초 중앙 시장을 찾았다.

시장에 가기 전 속초 닭강정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만석 말고도 다른 브랜드의 닭강정도 괜찮다고 한다.

고기를 꺼리는 사람은 코다리 명태 강정도 괜찮은 대안이라고 했다.

 

속초 중앙 시장을 가는 길에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디 닭강정을 먹을까? 만석? 중앙? 아니면 코다리 강정?'

행복한고민을 하며 주차를 하고,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신호는 꽤나 길게 느껴졌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는 이제 막 시장에서 쇼핑을 마치고

손에는 짐을 한아름씩 든 사람들이 서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들린 건 바로 만석 닭강정!

한 사람도 아니고 열명에 여덟 명은

하얀 케이스의 만석 닭강정을 들고 서있었다.

난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왔노라! 만석 닭강정을 샀노라! 이겼노라!’

같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만석 닭강정의 광고를 본 적은 없지만

행인들의 손에 몇 박스씩 들린 그 장면이 나에게는 광고였다.

이보다 더 강력한 광고효과가 또 어디 있을까?

어느 닭강정을 사야 할지 고민 중이던 나는

바로 결정했다.

그래! 나도 만석으로 가야겠어!



나는 만석 닭강정 화끈한 맛으로 한 마리 주문했다.

결제하려는데, 평소 닭강정을 좋아하시던 시아버님이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 전 결혼 한 아가씨도...

속초에 왔는데 가족들에게 무얼 선물할까 고민했었다.

남편은 반건조 오징어를 사 가는 게 어떻게냐고 했다.

"글쎄... 오징어는 너무 고리타분하잖아!

그건 어른들의 옛 방식이라고!"

이제 두 번째 마흔 짤인 나는 되받아쳤다.


그래! 어르신들 선물로 이 만석 닭강정을 보내드려야겠어!

나는 그 자리에서 시부모님, 친정 아빠, 아가씨네, 동생네.

이렇게 4박스나 더 주문했다.

한 주소당 4천 원씩 더 내면 택배로 보내준다기에

빨리 보내고픈 마음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시장 안에서 장을 다 보고 내 손에는

하얀색의 만석 닭강정 박스가 들려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신호등 앞.

나 역시 자부심이 담긴 표정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박스를 열어 맛을 볼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이미 시장 안에서 새우튀김이며, 오징어순대며

이것저것 군것질을 해서 아직도 배가 불렀다.

‘그래도 만석 닭강정이니깐 맛은 봐야지’

만석 막스를 열어본다.

화끈한 맛을 시켜서인지 정열적인 빨간색의 닭강정 위에

하얀 아몬드 슬라이스가 뿌려져 있다.

'음! 비주얼은 좋은데!'

한 개를 집어 맛을 본다.

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평소 치킨을 좋아하는데

갓 튀긴, 씹을 때마다 바사삭 소리가 나는,

그 바삭함이 좋아서 치킨을 먹는다.


그런데 닭강정은 부드러웠다.

아니 물컹거렸다.

‘아~ 내가 배가 안고파서 맛없게 느껴지는 걸 거야. 내일 다시 먹어봐야겠다’

그렇게 다시 박스 그대로 베란다에 놔두었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만석 닭강정 생각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래! 오늘은 진정한 만석의 맛에 눈 뜨리라!

밤새 베란다에 있던 닭강정은 아주 차가웠다.

몇 개 꺼내어 접시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그리고 먹으려고 입에 갖다 대는 순간!

입끝에서 느껴지는 이 물컹함!

어제보다 더 미끄덩거리고 흐물거렸다.


아... 나는 닭강정이 아닌가 봐...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리던
나의 만석 닭강정이여....
안녕!

만석 닭강정...

우리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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