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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 대한 단상

속초 한 달 살기 D-12

우리 부모님은 부산사람이다.

나 역시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회를 먹지 않았다.

평생 회 먹은 날이 손에 꼽았다.

그 이유는 엄마가 날 것을 잘 못 드셨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일부로 회를 찾아 먹기는 않았다.


이런 내가 회를 아주 좋아하는 시댁을 만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시댁 식구들이랑 동해에 갔다.

동명항 시장에서 회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난 그때 회의 참 맛을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 지느러미 부분을 먹어보았다.

세상에나!

이렇게 꼬숩고 쫄깃쫄깃한 맛이 있다니!

그때 난 회의 신세계에 눈을 떴다.




하지만 결혼후 나는 남편이 공부하던 미국에 갔기 때문에

한동안 회 먹을 일이 없었다.

우리가 텍사스에 살 때였다.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갈베스톤 비치에 게를 잡으로 남편과 다녀왔다.

이곳에서 살아있는 꽃게를 많이 잡을 수 있다.

게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매년마다 이곳에 게를 잡으러 갔다.

싱싱한 꽃게를 숙소에 가져와서 삶아 먹었을 때 그 맛이란...

정말 게 잡는 노동의 대가를 촉촉이 치러주는 맛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는 몇 마리 못 잡은 날이 있었다.

 아무리 미끼를 던져봐도 게는 잡히지 않았다.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작은 수산물 가게를 알게 되었다.

작은 상가에 입점해 있던 그곳은

살아있는 해산물을 파는 곳이었다.

미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우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광어를 팔고 있었다.

세상에! 광어라니!

엄청 싱싱해 보였다.

우리는 두 마리를 샀다.

집에서 회를 떠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회 뜨는 방법을 폭풍 검색했다.

그리고 회는 숙성시켜 떠야 맛이 좋다길래 따라 해 보았다.

날카로운 칼로 광어 뼈를 따라 썰었다.

야무지게 초장과 고추냉이를 준비하고 광어회를 한 점찍어 먹었다.

그런데 내가 알던 회 맛이 아니다.

무언가 퍼석퍼석하고 씹는 맛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 먹지 못했다.

그냥 매운탕에 넣자!


우린 매운탕 거리도 장을 봐왔다.

무, 쑥갓, 콩나물, 매운탕 양념장까지 준비해두었다.

남은 광어 살점을 넣고 매운탕을 끓였지만 결과는 실패!

맛이 없었다.

회는 아무나 떠서는 안 되는 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우리 가족은 지금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

그리고 오늘은 친정아빠가 우리를 보러 먼 길을 오시는 날이다.

아빠와의 거나한 한상을 위해 회를 먹기로 했다.

나는 수산시장에 들러 회를 준비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회를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빠가 속초에 오셨으니 대게도 드셔야지!

하지만 대게가 없고 대신 홍게만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홍게와 모둠회 (광어, 도다리, 밀치)와 방어, 오징어, 매운탕 거리를 샀다.

회를 좋아하시는 아빠와 우리 부부가 거나하게 먹기 위해서 가득가득 준비했다.

회는 정말 맛있었다.

특히 제철인 겨울 방어의 고소한 맛은 최고였다.

하지만 나의 욕심이 과했을까?

우린 반 정도밖에 먹질 못했다.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조개를 팍팍 넣고 매운탕도 한 솥 끓여 놨는데...

매운탕은 한 숟갈도 드시질 못했다.

아빠는 식사를 하시고 잠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곤 다시 내려가셨다.

할 수 없이 남은 회들은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우리가 해치워야 한다.

어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인데...

하지만 속초에 왔으니 뭐 어떤가?

회를 이렇게 풍성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이건 엄청난 행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처럼 회를 그리워하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이젠 회...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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