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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공원 벤치에서 자는 이유를 알았다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한 지 3주가 지났건만 우리 집은 아직도 뒤죽박죽 정리가 덜 끝났다.

요리를 할 때마다,  평소 쓰던 무언가를 찾을 때마다 빨리 집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나는 너무 바빠서 집 정리를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본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날씨를 보니 오랜만에 영상 11도인 따뜻한 날씨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 4명은 집 앞 공원을 가보기로 한다.

차를 안 타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나가본다.

이른 봄 같이 따뜻한 날씨에 우리가 걸쳐 입었던 오리 솜털 90% 패딩이 부끄러워진다.

얼른 패딩을 벗어 손에 걸치고 공원을 터벅터벅 걷는다.

그곳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터를 보곤 꺄아 소리 지르며 달려갔다.

구름사다리를 원숭이가 건너듯이 척척 두 팔로 건넌다.



남편은 두리번거리더니 자기 자리를 발견했다.

놀이터 구석 벤치 의자다.

그리고 아이들 패딩으로 베개를 만들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누웠다.

마치 그곳에 몇 번 와본 것처럼 편안하게 잠을 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찬다.

'어이구~아이들과 놀아주지는 못할망정 잠만 자네'

나는 연거푸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젓는다.


'나라도 애들이랑 놀아줘야겠다.'

나는 아이들이 놀고 있던 기구 옆으로 가본다.

아이들이 구름사다리 건너는 것을 구경한다.

사진도 찍어 주고 탄성이 섞인 칭찬도 한다.

엄지를 치켜주며 아이들 옆에서 서성인다.


둘째 아이가 나보고 놀이터에 성같이 생긴 기구로 올라오란다.

'아! 난 올라가기 싫은데'

나보고 괴물이 되어 자기들을 공격하라고 한다.

같이 싸우자고 한다.

아들에게 나는 늘 악당이 되어야 한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뒤뚱거리며 따라가면 아들들은 숨이 넘어가도록 좋아한다.

나의 괴물 연기가 꽤나 괜찮은 모양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잡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아이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


그런데 몇 번 그렇게 놀다가 급 피곤해졌다.

요즘 투고하느라 밤늦게 잔 게 화근인가 보다.

같이 더 놀자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남편이 아직도 꼼짝없이 누워있는 벤치로 간다.

남편 옆 비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내 패딩을 알맞은 크기의 베개로 만든다.

딱딱한 의자인데도 누우니 좋다.

'아! 그래서 남편은 여기서 그렇게 자는구나!'

남편에게 동화된 듯이 편안하게 누웠다.

다리를 뻗고 벤치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 보니 이젠 그만 집에 가잔다.

내가 얼마나 잤냐고 물으니 한 시간을 넘게 잤단다.

'에이~~ 설마! 난 그냥 눈만 감았는데 한 시간이 지났다고?'

믿기지 않는다.

내가 누웠을 때 시간을 안 봐서 확인할 길이 없다.

'몇 분 정도 눈만 감고 있었는데...'

그렇게 우리 넷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몸이 가뿐했다.    

이젠 알겠다.

남편이 왜 놀이터만 가면 구석 벤치에  누워 잠을 자는지...  

딱딱한 벤치에서의 쪽잠이 이리도 달콤할 줄이야!

나도 다음부터는 애들과 놀이터 가면 벤치에 낮잠을..

각설하고, 남편을 이해해 주어야겠다.



Photo by Dan Go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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