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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지만 영화관에 가고 싶어!

나는 디즈니 만화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5학년 내 생일날 가족 다 함께 '라이온 킹' 영화를 보러 갔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형편은 안 좋았다.

하지만 내 생일에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 가족 4명을 이끌고

서울 신촌까지 봉고차를 타고 가서 그 영화를 보았을까?


그때 처음 접한 애니메이션의 세계.

웅장한 음악과 눈 감을 수 없는 영상이 주는 감동.

그것과의 조우 후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 후로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어떤 애니메이션은 내 인생을 진지하게 돌아볼 만큼 진지했다.


특히 영화 OST를 좋아했다.

수중에 돈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OST는 꼭 CD로 사서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영화음악을 더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유학을 알아보고 준비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집에는 몇십 년 전에 샀던 수백 장의 CD들이 있다.

그 먼지 묻은 음반들은 아이들 CD에 밀려 이제는 잘 듣지 않는다.




얼마 전 디즈니에서 ‘소울’이란 애니메이션을 개봉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영화관을 가본 지도 이제 2년째다.

검색 후 예고편을 보니 음악 영화에 전체 관람가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남편 쉬는 날에 가까운 영화관에 가자고 했다.

남편은 그게 무슨 내용이냐며 심드렁했다.

남편은 애니메이션 자체를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하는 생각 한다.

겨울 왕국도 하도 내가 조른 덕에 같이 봤다.

보고 나서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아주 짧은 평을 했다.


남편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아이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애들에게도 소울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 영화에 동물이 나와요?"


아이들은 라이온 킹을 아주 좋아한다.

아니라고 했다.


"그럼 로봇이나 공룡, 자동차 이런 것들이 나오나요?"

"아니, 그런 것들은 안 나와."

"그럼 뭐가 나와요?"

"흑인이 주인공이야.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리고 고양이가 나와"


아이들에게 설명보다 예고편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유튜브를 뒤져서 짧은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예고편을 보고 열광하면서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해주기를 살짝 기대했다.


"근데 저 조그마한 애들은 뭐예요?"

"그건 주인공의 영혼이야."

"영혼이 뭐예요?"

 "응~ 사람의 몸 말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 마음 같은 거야."

 "뭐라고요?"


아! 틀렸다.

7살 아이들에게 영혼을 설명하는 일이란 정말 힘들다.

남편이 말한다.

"꼭 그 영화를 봐야 해?"

"응. 보자!"

나는 긴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이유였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

가족 다 같이 말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신촌에 가서 라이온 킹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가까운 곳 영화관을 검색해 본 뒤 그곳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게다가 월요일이라 극장 안은 썰렁했다.

상영시간 5분 전에 입장했는데도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심지어 상영 10분 전부터 틀어주는 광고조차도 화면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관을 잘못 찾았나? 할 정도로 조용했다.

다행히 상영 시간에 맞춰 다른 관객 대 여섯 명이 더 들어오고 광고도 시작했다.  




영화는 흥미로웠다.

재미있을 법한 부분도 꽤나 많았다.

하지만 나는 중간중간 눈이 감겼다.

'요즘 새벽 기상을 하고 있어서인가? 아!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조깅을 해서 그렇구나! 내가 먼저 보자고 해서 왔는데 내가 자면 안 되는데... '

비몽사몽 하며 졸린 눈꺼풀을 이겨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아이들이 옆자리에서 용을 쓰며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인 내가 이해하기도 심오한 내용인데, 아이들은 어떨까?

특히 자막 영화라 영어 대사에 아이들은 어떻게 이 영화를 볼지...

그래도 다행인 건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영상이라

아이들이 그냥 보기만 해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허허


그러고 보니 나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영화를 볼 때 남편과 아이들을 참 많이 신경 썼다.

영화를 잘 보고 있는지.

뭐 불편한 건 없는지.

아이들이 화장실은 안 가도 되는지.

자지는 않는지...


그런데 어제 영화 볼 때 2시간 가까이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했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아이들이 지루해할까 봐 살짝 걱정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들 몫이라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남편에게 "영화 어땠어?" 하고 묻지 않았다.

평소에는 매번 남편에게 묻고, 남편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취향이 아닌 영화를 같이 봐주었다는 사실에 그냥 고마워하기로만 했다.




소울을 보고 나서 각자의 감상을 나누기보다는

영화의 느낌을 나 홀로 간직하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맞추던 삶에서 조금씩 독립하고 있는 듯했다.

남편의 반응이 없어도 아이들이 지루해해도

이 과정 또한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나는 이제부터 엄마나 아내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더 집중해 볼 예정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소울을 보았다.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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