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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에 산다는 건

며칠 전 이사를 했다.

미국에서 10년 살이를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첫 전셋집에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 지금의 두 번째 전셋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은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 인덕션을 쓴다.

친정엄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담배를 안 피우는 여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 중 하나가

요리하는 동안 발생하는 가스 때문이라고 한다.

요리하는 동안 나오는 가스의 양이 무시할 수 없다기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나는 전기 인덕션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사 온 현재 집에는 가스레인지가 매립되어있다.

주위에선 매립형도 빼내고 인덕션을 넣어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매립형을 빼내기 전에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2년 동안 세입자 신분이니 최대한 공손하게 전화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이사한 세입자입니다.”

“네”

“저희가 건강상의 이유로 인덕션을 쓰는데 이미 가스레인지가 매립되어있어서요”

“그런데요?”

“저희 인덕션으로 바꿔 쓰고 이사 나가기 전에 다시 가스레인지를 원상 복구해도 될까요?”

“가스레인지는 옵션인데 그걸 옮긴다고요? 그건 비추인데요?”


'비추'라는 집주인의 말에 갑자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공손하게 물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전기 인덕션을 써야 한다고.


“그럼 부엌 딴 데다 놓고 쓰면 되겠네요”


하지만 매립된 가스레인지 위에 환풍기가 있다.

부엌 다른 곳에 인덕션을 놓으면 음식 할 때 환기의 문제가 있었다.

그 부분을 집주인에게 다시 말씀드렸다.


“그래서요?

그건 비추인데요?”


나는 더 이상 집주인과 말이 안 통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세살이가 이런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이사하면서 쓰고 있던 코웨이 정수기를 이전 설치했다.

설치기사님은 정수기 연결 줄을 설치하려면

부엌 선반에 작은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싸늘하게 '비추'라고 말하던 집주인이 생각났다.

나는 설치기사님께 구멍을 안 뚫고 설치할 수 없냐고 여쭤봤다.

기사님은 싱크대를 이리저리 관찰해보셨다.

그리고는 싱크대 세제 놓는 자리의 구멍을 사용해 본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정수기 연결 줄이 길게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외관상 보기 안 좋다고 하신다.

뭐.. 어쩔 수 있나.

집주인이 '비추'라고 할 텐데...

비추라는 말은 안 된다는 말이다.

2년 동안은 우리 집이지만

나는 전세 세입자다.

어쩔 수 없다.


집에 있던 액자와 사진들도 다 바닥에 그냥 놔둔다.

못을 쓴다는 것은 상상해서도 안된다.

벽에 시계는 걸어야 하는데 어쩌지?

하는 수 없이 압정 핀을 사용하기로 한다.

이 압정은 시멘트 벽만 아니면  사용 흔적이 안 남는다.

단 무거운 것은 못 건다.


그런데 우리 집 거실에 가장 잘 보이는 곳.

벽에 시계를 걸면 딱인 그곳은 다름 아닌 콘크리트!

압정 핀을 사용할 수 없는 장소다.

압정 핀이 들어갈 만한 곳을 찾으니 거실 구석에 있는 벽에 압정 핀이 쏙 들어간다.

그렇게 우리 집 벽시계는 잘 보이는 벽이 아닌

구석 벽에 걸리게 되었다.




저번 전셋집에서는 집주인이 집을 5개 가지고 있는 임대업자였다.

의논할 일이 있으면 바쁜 임대인 대신 주로 부동산과 소통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편했다.

그런데 우리 집 아랫집과 층간소음 가해자 지목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우린 아이들을 위해 이사 나가기로 결심했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월세로 나가려고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에 계약금 백만 원까지 냈다.

그런데 집주인이 우리 이사를 막았다.

2년 계약인데 안된다고.

꼭 나가려면 집 인상률을 감안해서 인상률을 내놓고 나가라고.

결국에 우리는 그 집에서 2년을 꾸역꾸역 보냈다.




대한민국에서 집 없는 설움을 겪는 게 이런 것이다.

못은 못 박는다 해도

내가 원래 쓰고 있던 인덕션까지 사용 못한다니...

 

진짜 내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다짐하게 된다.

미국에서 10년간 살며 한국 실정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팍팍한 한국 살이에 적응하려면

나도 같이 팍팍해져야겠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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