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셸가 딸들의 특별한 추억을 듣다
나는 이어서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나처럼 미셸손 피아노를 좋아해서 린다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 중 가장 인상깊은 음악가 누군지 물어보았다.
린다는 잠시 생각하다가 한 음악가의 이름을 말했다.
파스칼 꼼라데(Pascal Comelade)
파스칼 꼼라데는 프랑스의 영화음악과 재즈, 장르으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나도 참 좋아하는 연주자였으며 그 또한 미셸손 피아노를 자신의 음악에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린다의 집을 직접 방문했었다니 그 일화가 정말 궁금했다.
그는 약 1980년에 린다의 집을 처음 방문하며 37건반짜리 미셸손 토이 피아노를 구입하길 원했다고 했다. 그러나 린다와 브리짓은 당시 공장이 이미 망해서 37건반 악기는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파리에서 공연이 있으니 피아노를 팔아달라고 다시 요청을 해서 린다는 악기를 판매하는 대신 빌려줬다.
파스칼은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공연에 두 자매를 초대했는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였지만 공연장에서 린다를 발견하자 린다! 하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멋진 공연을 선보여서 린다와 브리짓은 그에게 악기를 팔았다고 한다.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렇게 듣게 되어 더욱 몰입하여 이야기를 듣던 와중 나는 통역가를 통해 이어지는 대답에 순식간에 구름위로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바로 너야.
나는 기쁨으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이유를 물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환대를 받으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단지 미셸손 피아노의 음색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취재를 하러 온 것일 뿐인데. 린다의 집에는 이미 저명한 예술가들과 방송국에서도 왔다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마 빈말일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 만큼은 내가 토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계속 붙들고 있던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혜리는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 중 가장 멀리서 왔어. 우리는 네가 미셸손 피아노를 좋아해서 기쁘고 이렇게 함께 시간을 갖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 공장을 그만 둔 뒤 이렇게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가 소중히 여겨진단다.”
그러면서 둘의 기억은 공장에 화재가 날 무렵으로 이동했다.
“공장에서 불이 났을때 우리 가족들은 여행을 갔었지. 불이 왜 났냐면 공장 옆에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망치질을 하면서 금속이 부딪힐때 튕 불꽃파편이 공장의 구멍에 떨어지면서 폭발이 일어났어. 불행 중 다행으로 공장이 전체 휴가시즌이었을 때라 인명피해는 없었어.
정말 슬픈 일이었네. 우리 아버지가 만든 공장이었고 우리 인생이고 삶이었던 모든 것이 날아가서 정말 슬펐어. 공장이 불탔을 때 소방서는 300m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화재로 인한 소동 때문에 차가 밀려 바로 오지 못했어.
매우 많은 연기가 났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뒤 오빠와 브리짓은 너무 허무해서 잔해를 쳐다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어.
삶의 터전을 잃은 우리 가족은 파리의 친척들 집에서 잤는데 건물에 연기 냄새가 심하게 배어서 보험문제 등을 처리하느라 1년간 다른일을 하기 어려웠단다.”
힘겹게 그때의 일을 말하던 브리짓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미셸손 피아노를 접하고 항상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하지만 미셸손 피아노의 소리는 잊혀지지 않고 지속될 거에요.”
“그래서 미셸손 피아노를 너에게 선물한거야.”
“그러니 매일 아침 우리집에 와서 연주를 하고 가렴.”
린다의 재치있는 한마디에 분위기는 다시금 풀어졌다.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어릴적 즐거웠던 소중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밝고 쾌활한 성격답게 어릴때 린다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어느날 세남매가 줄넘기를 했는데 벽에 줄을 묶어서 브리짓이 돌리고 린다는 박자에 맞춰 뛰어넘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줄을 밟았는데 묶어놓은 받침이 떨어져서 브리짓 머리 위로 떨어졌다. 린다와 오빠는 아버지에게 혼날까 덜컥 겁이 나서 비밀로 하자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절로 브리짓의 머리쪽으로 눈길이 갔다.
또 린다는 12살때 공장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당연히 아빠에게는 비밀이었는데 어느날 아빠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담배 누가 폈냐고 묻길래 다른 직원이 피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린다와 브리짓이 어릴 적 파리에는 공장이 많아서 풀이 많이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공장 옆 길가에 작은 풀이 돋아나 있길래 애정을 갖고 보살펴 주었다. 하지만 조금 자란 풀을 어느날 한 트럭이 밟고 지나가버려서 매우 슬펐다고 한다.
이렇게 문화의 차이가 느껴지면서도 프랑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에피소드를 들으며 어릴적 읽었던 장 자끄 상뻬/ 르네 고시니의 꼬마 니콜라 시리즈가 떠올랐다.
내가 궁금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고 브리짓이 손수 구운 과자들을 먹으며 티타임을 즐기다 어느새 해가 질 무렵이 되었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사실 나는 통역가의 근무가 끝나는 시간인 저녁 6시에 그와 함께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셀레스타에 오기 전 까지만해도 나는 린다와 브리짓을 만나는 것에 대해 기대감과 함께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원래 초청할 때 2박 3일을 권유했으나 이틀 뒤 파리로 넘어간 뒤 다시 폴란드로 가야 하는 일정 상 이틀만 머물겠다고 이야기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셀레스타에서, 몽생오딜에서, 알자스의 작은 마을들을 구경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자 뒤늦게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 또한 나에게 아직 보여주지 못한 곳들이 많다며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셀레스타에 온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야기는 조금 더 계속 되길 원했기에 나는 몇시간만 더, 스트라스부르의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기로 했다.
마지막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