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속 '중립'이라는 단어는 존재하는가
중립. 내가 좋아하지 않는 단어중 하나다.
모든 것은 멈춰 있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데, 중간에 설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치고 있는 키보드도, 타이핑하는 진동에 의해 조금씩 변형이 되어가고 있다.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내 의자도 지구가 시속 약1600km로 자전하기에, 매 순간 위치가 변한다.
양자역학적으로 우리 모두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중간이라는 개념과는 멀어진다.
중간에 선다는 뜻인 중립. 애매모호한 비과학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 중립 좀 지켜서 처리해주세요.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에게 들은 말이다. 해당 학부모의 자녀인 A는 학교폭력 신고를 당할 위기였다. 신고자는 그동안 피해 사실을 정리한 문서를 가져오며 말했다. A가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면 학교폭력으로 신고까지 할 생각은 없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내용을 A에게 전달했고, 만약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문을 써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사과문이라는 말이 나오자 A는 매우 억울해 하며 눈물을 보였고 상대쪽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삼자대면을 제안했지만 신고자는 거부한 상황. 사과를 하고 마무리하거나, 맞폭신고를 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맞폭신고는 두 학생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선사하기에 최대한 지양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사과문을 강제할 수 는 없는 상황. A에게 잘 생각하고 선택해달라고 했다.
약 2시간 뒤, A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와서 위와 같은 말을 듣게되었다. 사과문을 쓰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자녀인 A를 가해자 취급했다는 것이고, 그러기에 학교폭력 교사로서 중립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즉, 내가 사과를 제안한 것이 편파적인 일처리라며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미 너무 흥분을 한 상태로 전화를 건 A 학부모는 목소리까지 떨며 변호사를 사서 맞폭신고를 하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가해자 취급한 것처럼 느꼈다면 사과드린다고, A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미 본인 주장만 하는 상황이라 내 설명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얼른 사과만 하고 빠르게 통화를 마쳤다.
정신 없는 통화 속 A 학부모의 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 세 가지다.
1. 사과문을 쓰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2. 교사가 학생에게 사과문을 쓰라고 말하는 것은 학생을 가해자 취급하는 것이다.
3. 학교폭력 교사가 사과문을 쓰라고 말하면 중립을 어기는 것이다.
차근차근 반박해보자.
1번, 사과문을 쓰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학교폭력 신고 위기에 놓인 학생의 부모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과하는 게 맞다. "나도 잘못을 5정도 했지만, 상대방도 5정도 했다! 그러니 사과를 한다는 것은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절대 먼저 할 수 없다!"와 같은 접근 방식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화를 돋궈 일을 그르친다. 인지적으로, 사회적으로 발달이 완전하지 않은 아이가 하는 생각이다. 용서, 뉘우침, 용기 등의 덕목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2번, 교사가 학생에게 사과문을 쓰라고 말하는 것은 학생을 가해자 취급하는 것이다.
먼저 나는 사과문을 쓰라고 강제하지 않았다. 사과문을 상대방쪽에서 요구하고 있는 사실을 전달해준 것일 뿐이고, 자신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과문을 써보는 게 맞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었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전달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발화자인 나의 잘못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설령 사과문을 쓰라고 했어도, 어떻게 그 학생을 가해자 취급하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면 의도와는 상관 없이 사과를 하는 게 도리다. '가해자 취급'이라는 말은 정당한 교육 활동을 더럽히는 표현이다.
3번, 학교폭력 교사가 사과문을 쓰라고 말하면 중립을 어기는 것이다.
내가 학교폭력 처리 AI로봇이었다면 신고를 접수 받아 그 사실을 A에게 통보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서로 맞폭 신고를 하든 말든 신경 쓸 일이 아닐 것이다. 학교폭력 관련 법안은 누구를 강력히 처벌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은 가해 학생이든 피해 학생이든 폭력 상황에서 신속히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학교폭력 관련 법안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사과문을 쓰라고 말하는 것이 중립을
어긴다고 보는 것과 적극적으로 두 학생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과문을 제안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교육적으로 가치있는 행동일까. 교육자로서 무엇을 더 지향해야할까.
학교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닌 교육적 관점에서 본다면,
'중립'이 설 자리는 없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그 명칭과는 다르게, 학교폭력 상황 속 굉장히 애매한 상황에 놓이기 일쑤다. 피해 학생, 가해 학생이 상반된 입장이다 보니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소위 말하는 '중립'의 역할을 하는 꼴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상식으로 통하는 시대이나,
'누군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면, 네 왼쪽 뺨을 돌려대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체하길 바란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악은 악을 낳는다.
희생과 사랑이 교육 현장에 가득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