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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창쌤 Oct 08. 2024

"갈등 중재를 하려는 의도가 뭐에요?"

학교폭력 교사는 갈등 중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브런치를 통해 학교폭력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 독자들과 다양한 의나누기를 원했지만,

점점 본인의 하소연 공간으로 변질되어 가는 듯하다.

오랜만에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었기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노트북 타자를 눌러본다.




학교폭력 신고를 받아보면, 생각보다 일방적인 사건은 별로 없다.

한쪽이 100% 가해자이거나 100% 피해자인 경우는 적다는 뜻이다.

당사자 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학교폭력 신고까지 접수하러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먼저 신고한 쪽이 '피해 관련 학생'으로 명명될 뿐, '피해자'는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항상 잘못한 부분과 사과할 부분은 존재한다.

발견하지 못했거나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이번 사건 역시 쌍방의 요소가 있었다. 처음 사건 접수 이후 약 일주일 간 양 측을 모두 만나며 흐름을 정리했다. 각자 서면으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써오게 했으며 그때 본인의 기분은 어땠는지,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도록 했다. 각자의 상황과 입장을 차분히 정리된 글로 받아보는 것은 큰 효과가 있다. 바로 대면하여 사과를 진행하기 보다는 화를 '뜸들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을 읽은 후, 상대측과 만남을 거부했었던 신고 학생이 만나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름의 노하우랍시고 뜸들였던 것은 얼큰한 김칫국이었다. 신고 이후 첫 대면을 한 양측은 대화를 잘 이어가나 싶었지만 "나도 잘못했지만 너도 잘못이 있다."라는 논리로 무장하여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절차대로 해주세요.



학교폭력 업무 담당 교사로서, 학생들이 이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그동안 갈등 해결을 위한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어른들이 말하는 "법대로 합시다."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아직 20대이긴 하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서류상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들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따라하는 듯한 언행을 했을 때 마음 한 켠이 뜨끔한다.

법대로 하자는 게 왜 안 좋은 모습이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다.


나에게 '법대로 하자'는 말은 무기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나에게 돌을 던진 것처럼, 갑자기 저 말을 들었을 때 아프다.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지 않는가?

상황에 따라서 법은 누군가를 압박하는 무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법이 탄생하게 된 태초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절차대로 하자, 법대로 하자는 말은 대화를 거부하는 행위다.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화를 거부하는 행위는 일종의 도발이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갈등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쌍방의 과실이 있는 사건에서 어느 한쪽이 신고하면, 다른 쪽에서도 맞폭을 걸 확률이 굉장히 높다.





절차대로 하겠다는 말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냥 군말없이 접수해주면 교사의 역할은 끝이다. 

그것이 학교폭력 담당 교사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학교폭력 전용 키오스크와 다를 바가 있나 싶다.



학교폭력 신고 접수만 담당해주는 사람은 교사가 아니다. 키오스크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당사자 간의 '갈등해결을 통한 학교생활 정상화'라고 생각한다.


교육청의 '갈등 중재 프로그램'을 신청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물었다.

갈등 중재 프로그램은 교육청의 갈등 중재 전문가가 마치 증인이 되어 양측의 합의와 재발 방지 내용을 담은 '약속 이행문'을 받아 갈등을 중재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폭력 사건을 축소,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재발 방지에 대해 교육청이 인정하는 공식 문서를 받아 두는 것이기에 추후 같은 내용으로 피해를 또 입을 경우에는 더욱 강력하게 어필을 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쌍방의 과실이 존재하는 사건일 경우에 굉장히 효과적이다.




신고 학생 학부모에게 갈등 중재 프로그램을 신청해보자는 설득의 전화 끝에 내가 들은 말은,

이렇게까지 하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말이었다. 그냥 신고 받고 절차대로 공문 올리고 진행하면 되지, 왜 자꾸 하기도 싫은 뭔놈의 프로그램을 들먹이냐는 것이다. 흥분하지 않고 순진하게 물어보는 목소리에 더 힘이 빠졌다.


그러게요.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학교폭력 신고 들어오면 군말없이 접수해주면 되지,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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