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를 처음 만나고 나서
드디어 아들만 찾는 주치의를 대면하려 가는 날이다.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동안 휴가를 내어 아들 둘을 데리고 광주 누나네 집으로 갔다. 애들에게는 그나마 건강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고 나로선 8월 1일 오전에 예정된 아버지의 병원 진료 때문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진료를 보러 오지 않아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관심이 없다고 비난하던 주치의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 누나나 매형에게 전해들었던 대로 주치의가 말을 이상하게 하면 나 역시 가만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하고 갔다. 그렇게 8월 1일 오전이 되었고 나와 누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 지난 번 MRI 결과는 아주 좋아요, 종양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거의 보이질 않아, 이 정도면 아주 상태가 좋아요, 그동안 6차에 걸쳐 항암치료 하신 결과가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이 3~40%는 이렇게 좋은 상태여도 시간이 지나면 재발이 됩니다. 그 때 얘기했던 임상 시험은 어떻게 생각해 보셨어?
나, 누나 : (정말 의아하게 생각한 점이 보통 MRI를 찍으면 그 결과를 환자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데 이 의사는 MRI 결과만 말할 뿐이지 절대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너희들은 봐도 몰라, 내가 말해주면 그리 알아들어라는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면 참을만 했다)
아버지 : 생각해봤는데 임상 안 할거요.
의사 : 뭐 먹는 약이긴 하지만 임상약을 먹는 환자 중에서도 2~30%는 재발이 되니까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네, 그럼 나머지는 밖에 간호사랑 상담하시고 저랑은 4개월 뒤에 다시 뇌 MRI 찍고 결과 봅시다
누나 : 임상 연구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후엔 무슨 조치가 있나요?
의사 : (진료 마무리하려는데 마지못해 말해준다는 듯이) 4년동안 분기에 1번씩 MRI찍고 결과를 확인해야죠, 지금은 그거 말고는 더 방법이 없어.(참 교묘하게 반말과 높임말을 섞어서 쓴다, 화 내기는 애매하고 그런다고 듣고 있자니 슬금슬금 짜증나는...)
뺀질거리는 의사와의 진료는 이걸로 마무리되었다. 혹시라도 아버지나 누나에게 버릇없게 얘기하면 나 역시 제대로 되갚아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크게 반응할 만한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다(주치의가 의외로 위기를 피하는 재주가 있네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 의사를 보며 느낀 점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본인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자세는 나는 너보다 높은 위치에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느낌이었다.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진료가 거의 점심시간 앞이라서 진료실 앞에는 몇몇 제약회사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제약영업을 했던 경험이 있어 그들이 진료를 마친 교수님들을 만나기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다 주치의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필터링 없이 제대로 보게 됐다. 제약회사 직원들이 진료실 문 앞을 나서는 주치의를 보며 인사를 꾸벅 하자 제대로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고개만 까딱 하며 상사가 부하직원을 격려하듯 제약회사 직원들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지나갔다. 내가 영업하는 직원이었다면 상당히 기분나쁘게 느낄 정도로 건방져보였다.
암튼 아버지가 무사히 6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게 도와준 점에는 감사한다. 다만 환자를 대하는 자세나 말투는 어딜 가서 제대로 교육받고 오는 게 어떨지 그 주치의에게 권하고 싶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맘이 불편한 병원 관계자분들에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 비난의 화살은 오직 아버지 주치의 그 한 분에게만 향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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