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9. ~ 1999. 8. 육상근무-제주 해양경찰서 제주 지서
난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조건의 남자다. 키 172cm, 78kg이다. 요즘엔 가끔 80kg을 왔다 갔다 할 때도 있지만 프로필엔 항상 78kg이라 쓴다. 원하는 몸무게는 72kg 정도다. 지금은 스스로 몸이 무겁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지만 원하는 만큼 빼는 게 참 어렵다. 남들처럼 독하게 식이요법을 하지 않은 것도, 나잇살이 빼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많은 발전을 한 거다. 초등학교부터 군대에 가기 전까지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택한 직업과 내 현재 모습이 그들이 기억하는 나와는 매우 다를 것이기에.
군대에 가기 전까지의 난 그냥 멸치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키가 큰 탓에 가장 힘없고 볼품없으며 키가 작은 아이 그게 나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물론 운동신경도 없어서 공놀이와는 거리가 멀었고 또 싫어했다. 그래도 남자니까 왜소한 체격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운동하고 싶어도 어떤 식으로 운동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중고등학교 다닐 땐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하니 배울만한 상황도 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항상 내 마음속에서만 운동을 배워야 하는데,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학 가서도 여전히 그 상황은 똑같이 이어졌다. 오죽하면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두고 평가하기를 “군대에 가서 훈련소 잘 적응할까 걱정했었다”라고 한다. 그 정도였다. 약해 보인다는 말이 싫었지만 이런 현실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노력은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노력하지 않는데, 당연히 주변의 도움도 없었다.
그러던 중 군대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양경찰 전투순경(이하 해경)으로 가게 됐다. 해경으로 군대를 가게 되면 보통 해상근무 6개월~8개월 → 육상근무 8개월~1년 → 해상근무 6개월 이상을 마치고 제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내 운동 첫 사부인 고00이라는 후임을 만나게 된다. 그때 난 제주 해양경찰서 제주 지서라는 곳에서 제주항 어선 출입 현황과 선박 검문(승선 명단에 적힌 사람이 제대로 배에 탔는지를 검사)을 담당했다. 그곳에는 6명의 경찰 정직원과 7명의 전투순경이 있었고 난 그중의 막내 바로 윗선임, 막내 고00이 내 운동 사부였다, 13명 중 12위 그게 내 서열이었다.
90년대 후반의 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듯이 정말 많이 맞았다. 그리고 편한 곳이라 그랬는지 똥군기가 정말 셌다. 계급이 낮으면 쉬는 시간에 운동할 수 없었다. 책도 볼 수 없었다. 오직 자는 시간 외에는 선임들을 위해 대기해야 했다. 처음 겪는 일에 적응하랴, 이상한 선임(추자도 깡패 출신이라 언행이 거칠었던 선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전라도 출신 선임-교묘하게 일을 떠넘기거나 했던 일을 안 했다고 우기며 뒷수습을 후임에게 미룸, 일을 가르쳐주지 않고 방관하는 선임, 항상 놀면서 가끔 던지는 말 한마디로 갈구던 얄미운 서울 태생 선임 등)들에게 갈굼(간단히 갈굼이라 표현함, 실제로는 읽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음)을 당하느라 전혀 겪어보지 못한 피부 발진이 얼굴에 생겼고 정도가 심해져서 물이 닿으면 쓰리고 따가워서 세수를 못 할 지경이었다.
그때만 해도 군 생활엔 구타와 갈굼은 빼놓을 수 없었다. 8개월 동안 했던 해상근무(배 타면서 제주도 해역 경비와 경비함 관리) 와는 달리 육상근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선임들은 나와 후임들을 괴롭히려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많이 힘들었다. 차마 집에는 얘기하지 못했을 뿐.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발진 정도가 심해졌고 같이 근무하는 직원(경찰관)도 더는 두고 보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그제야 잠깐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 오라고 했다. 온종일 이어지는 이유 없는 구타와 갈굼에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서 그리된 것일 텐데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오죽하면 피부 발진 약을 사러 간 약국에서 “스트레스가 많은가 봐요.” 란 약사님의 한 마디에 참았던 설움이 터져 나오며 울 뻔했다.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잘 참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4명의 이상한 선임들이 제주 지서에서 다른 곳으로 발령 나는 3개월 동안은 내 마음의 수양(?)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힘든 육상근무 3개월 동안 운동 사부인 고00와 김00 삼촌(당시 계급은 경장으로 나와 해상근무 3달, 육상근무 10개월을 같이 근무했었다.), 두 사람 덕분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고00는 킥복싱 동양 챔피언이었다. 운동만 잘할 거라는 거친 이미지와는 달리 싹싹하고 맡겨진 일 충실히 잘하며 선·후임과의 사이도 좋았던 팔방미인이었다.
육상근무 중에는 오후 6시 일과시간이 끝나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다 볼 수 있었다. (물론 조를 나뉘어 휴게시간에도 일하는 근무조와 쉴 수 있는 대기조로 나뉜다. 왜냐하면 파출소는 1년 365일 24시간 돌아가야 하니까) 그중 액션 영화를 가장 많이 봤다. 90년대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장 클로드 반담(이하 반담)을 기억하는가? 고00는 반담이 영화에서 했던 액션 동작을 현실에서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담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을 때였다. 영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고00가 슬며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가는지 다시 비디오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지난 후부터 옥상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하며 옥상에 올라갔더니 고00가 땀을 훔치며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나 : 00야, 뭐했냐, 왜 땀을 흘리고 그래, 어디 아프냐?
고00 : 아닙니다. 그냥 운동 좀 했습니다.
나 : 뭐했는데?
고00 : (수줍어하며) 아까 영화에서 나온 동작 함 해봤습니다.
나 : 뭐라고? 설마 아까 반담이 했던 거? 점프한 후 앞뒤에 있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공격하던 그 동작?
고00 : 네, 맞습니다. 한 번 보여드립니까? (동작 시연)
나 : 우와...(그리고 놀라서 얼음)
알고 보니 고00는 몸을 쓰는데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한 번에 팔굽혀펴기 500개, 공중에 떠서 발차기 세 번 정도는 기본이었다. 오죽했으면 해군 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UDT/SEAL(해군 특수전 전단-지원자만 들어갈 수 있다)로 차출될 뻔했을까? 해양경찰이라 해군과 소속이 달라 차출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교관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악몽 같았던 선임 4명이 차례대로 제주 지서를 떠난 후 자유로운 분위기로 변할 수 있었다. 그게 1999년 1월쯤이었을 거다. 운동도 하고 책도 볼 수 있었다. 난 고00가 부러웠다. 걔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이젠 새로운 일을 시도해볼 시기였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래, 이제 나도 운동이란 걸 해보자” 큰맘 먹고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는 고00에게 다가갔다. 내가 물었다.
나 : 00야, 나도 운동하면 너처럼 될 수 있을까?
고00 : (정색하며) 저같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건 좀 힘들지 말입니다.
나 : 아니, 그냥 윗옷 벗었을 때 부끄럽지만 않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약골로 살긴 싫다.
고00 : (웃으며) 아, 그 정도면 쉽지 말입니다. 저만 따라 하시면 됩니다.
그 따라 하라는 얘기가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다.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운동과는 아무 상관없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제주지서 앞엔 왕복하면 대략 4km 거리의 방파제가 있었다. 당시 우리들은 이틀에 한 번꼴로 철야 근무를 했었고 그때마다 새벽 4시경이면 그 방파제를 뛰었다. 힘들 때면 속으로 당시 코카콜라의 광고 슬로건을 되뇌었다. “The game must go on.” 숨이 찼다. 중간에 포기하고 걷고 싶었다. 뛰어도 뛰어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지만 참았다. 천천히라도 뛰었다. 참으면서 뛰었더니 어느덧 22분 정도면 다 뛸 수 있었다. 그리고 근력운동도 시작했다. 운동시설도 변변치 않았던 그곳에서 후임을 따라 팔굽혀펴기, 아령 들기, 쪼그려 앉아 돌기 등 할 수 있는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운동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후임의 격려에 “이것만이 살길이다”라 생각하고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줄넘기에도 도전했다. 사실 난 그때까지 줄넘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루스벨트의 말처럼 “당신은 자신이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당시 이 말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1주일쯤 지나니 힘들기도 하고 굳이 내가 운동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와, 000 운동 시작하더니 몸 좋아졌네” 주변에서 하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좋을 수 없었다. 영화 제목과는 달리 칭찬은 나의 힘이었다. 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서서히 내 안의 자존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마 운동할 당시 많이 읽었던 명언집이나 자기 최면이 될 정도로 외웠던 루스벨트의 명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난 약골에서 건장한 남자로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