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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무용담
(어려운 일은 3일 동안 연이어 온다)

1999년 여름, 제주해양경찰서 제주지서(제주신고소)에서 생긴 일

by 거칠마루

군 복무를 해양경찰로 할 때의 이야기다. 육군과는 달리 해양경찰은 바다에서 떠있는 동안 생활하는 것과 경비함이 육지에 정박 후 생활하는 두 가지 체계가 있다. 바다를 지키는 해상근무가 중심이지만 배가 육지에 들어온 후 해야 하는 일도 있다. 이를테면 함정 수리, 장비나 유류 보급 등(배는 경유를 쓴다, 바다에 떠있는 동안 쓸 물, 음식 등 식자재 반입), 또 나같이 군 복무를 위해 배안에서만 생활하는 전투경찰과는 달리 일반 직원(해양경찰)은 가족이 육지에 살고 있으니 그분들의 생활을 위해서라도 육지에 정박하는 일은 꼭 필요했다.


내가 육상 근무했던 제주해양경찰서는 크게 제주지서와 서귀포지서가 있었고 그 밑으로 성산신고소, 도두신고소, 애월신고소 등이 있다. 신고소 < 지서 < 해양경찰서라는 개념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최말단 조직인 신고소(파출소라 생각하면 된다)에서는 담당구역의 어선 관리를 맡는다. 어선이 하루에 입·출항하는 것과 몇 명의 선원이 타고 나가는지를 실제로 검사하며 항구에서의 치안을 담당했다. 물론 내가 복무했던 23년 전의 기준으로 얘기하니 지금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제주지서(제주신고소가 포함, 그래 봤자 신고소 인력에 지서장 1명, 순찰차 1대만 추가됨)는 제주도에서 선박 입출항 건수도 많고 일하기가 힘들기로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 해상근무할 당시 선임들은 성산신고소, 한림신고소, 제주지서, 서귀포지서만 피하면 육상근무는 다들 괜찮다는 평을 했었다. 해상근무하다 육상근무로 전환되는 시점은 보통 일경 4호봉부터 상경되기 전까지다. (군대 계급 기준으로는 일병부터 상병까지라 생각하면 된다) 해상근무 당시 내무반장이었던 조00 형은 곧 육상 발령을 앞둔 내게 웬만하면 힘들다고 여기는 4곳 중 한 곳에서 근무해보길 권했다. 바쁘고 여러 일이 일어나는 곳에서 일을 해봐야 많이 배울 수 있고 여러 가지 사회 경험도 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제주지서에서 8개월 동안 근무하다 다시 해상근무하는데 그쪽에서의 경험을 내게 강력 추천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난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는 “편한 데 가고 싶습니다”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늘 같은 선임에게 그런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네, 알겠습니다.”란 대답을 했었는데 말이 씨가 됐을까? 그로부터 2~3주가 지났을 무렵, 난 제주지서 발령이라는 소식에 영혼이 반쯤 탈출한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적응하는데 힘들었던 얘기는 저번 글에 썼으니 넘어가고 적응 후 1999년의 일이었다. 이젠 업무도 익숙해졌고 내 밑으로도 여러 후임이 생겼다. 제주 바다는 계절에 따라 잡히는 생선이 달랐다. 그곳 어민들이 생선이란 말 대신 “고기”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도 배웠다. 이를테면 “오늘 고기가 잘 안 나네.” 이런 식의 말투였다. 고기가 나오는 철이 다 달랐지만 어민들은 늘 부지런하게 바다에 나갔다. 어떻게 아냐고? 바다에 나가려면 어민들이 내가 근무하는 신고소에 나와 신고를 하고 노란 플라스틱 통에 쌓인 걸 받아가야 했다.(오래전 일이라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아마 선원명부와 뭐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민들은 주로 오후 2시 이후에 나가 아침 5~6시까지 꼬박 밤을 새우며 조업을 했다.


배마다 특색이 있었다. 예전 기억을 떠올려 설명하는 것이니 틀릴 수도 있다. 배 크기에 따라 실을 수 있는 그물과 타는 인원이 달랐고 조그만 배들은 주로 3톤 이내의 무게에 1명~4명 이내의 채낚기(고등어나 갈치, 오징어를 주로 잡음)였다. 2~30톤 이상은 그물 종류에 따라 달랐다. 안강망, 유자망, 저인망, 선망(특히 선망 어선들은 10척 이상 팀으로 움직였다. 운반선만 따로 육상을 왕복하며 어선들에게 장비, 물, 기름 보급을 하고 고기를 항구로 실어 날랐다) 이런 어선들은 일반 어선에 비해 크고 사람도 많이 타기 때문에 주로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주로 보게 된다. 이런 어선들이 항구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고 내가 일하는 신고소에 입·출항 절차를 밟고 새로 배에 타는 선원은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 그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대략 5~6월쯤의 오후로 기억한다. 신고소는 2층짜리 건물로 연면적(건축물의 총면적)은 약 50평 정도였다. 각 층에 1개씩 화장실이 있었다. 1층에 있는 화장실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주 막혀서 물이 내려가지 않았었다. 약품도 써보고 고무로 된 뚫어뻥으로 여러 번 물이 내려가게끔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고장 난 상태였다. 신고소에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전화번호부를 찾아 수리업체를 불렀고 그 수리업체에서는 어떤 기계장치를 가져오더니 좌변기 물 내려가는 입구에 놔두고 센 압력으로 물을 밀어냈다. 그리고는 제대로 난리가 났다.


무슨 난리인고 하니 물이 내려가는 쪽에 무언가가 막혀 있는데 업체에서 그걸 무시하고 편하게 수리하려고 압력으로 막힌 것을 밀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수관 아래를 막고 있는 물체는 무엇인지 몰라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압력은 아래로 내려가질 못하고 위로 올라가 1층 천정의 오수 배관을 떠트린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업체의 기계장치가 압력을 걸고 그걸 활성화시키자마자 바로 1층 천정의 오수 배관이 터진 것이었다. 터진 시간대도 환상적인 타이밍이었다. 한참 어민들이 찾아와 선박 출항신고를 하는 바쁜 시간이었다. 출항신고만 해도 꼬박 2~3시간을 서너 명이 달라붙어야 하는 일인데(지금처럼 컴퓨터로 하는 일이 아님, 모두 서류에 도장 찍고 손으로 쓰는 수작업으로 처리함) 오수 배관이 터지니 신고소 실내에선 일처리를 할 수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인원을 둘로 나눴다. 책상과 사무 집기를 밖으로 빼내 어민들의 출항신고를 전담하는 팀, 오수배관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오물을 처리하고 사무실 안을 깨끗하게 치우는 팀 그렇게 두 팀으로 정신없이 일을 처리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라, 오물이 넘친 사무실에서는 냄새가 심하게 나지, 업무는 업무대로 해야 하지 정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머릿속으로는 생각만 할 뿐 몸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래도 하다 보니 어찌어찌 청소도, 출항신고 업무도 천천히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화장실이 막혔던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게 생각난다.


그다음 날이었다. 비가 제법 내리는 날이었다. 그런 날은 보통 파도가 높아 조업을 하기가 어려워 비교적 한가한 편이었다. 일이 벌어진 그 시간 역시 오후 1~2시 사이였다. 50대로 보이는 선원이 신고소 안으로 오더니 갑자기 “돈 내놔”라고 말하며 후임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었다. 후임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계속 맞고만 있었다. 여러 명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냈다(50대라고 하지만 선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아주 힘이 셉니다. 특히 술 취한 선원들과 몸싸움이 붙을 때는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걸 이겨내기 위해 우리들은 운동을 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공권력이 지금처럼 죽어있지는 않았다. 파출소에서 난리 치다가는 어두운 데 끌려들어가 호되게 혼나는 시절이었다. 글에는 쓰지 못할 여러 과정을 거쳐 그 선원을 교육시켰고 “나가”라는 말에 그 선원은 “알았어, 다신 안 올게”하며 나갔다. 알고 보니 50대 선원이 그날 아침에도 두 번이나 술 취한 채로 와서 후임에게 밥 사 먹게 필요한 돈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술 취한 선원이 와서 군 복무를 하는 우리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일은 흔한 일이었음, 하지만 우린 빌려줄 돈도 없었음). 돈 달라는 요청이 두 번이나 거절당하자 홧김에 후임을 때린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는 오수관이 터지더니 오늘은 폭행사건이라 우습기도 했지만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기도 했다.


대망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 끝나고 나니 마지막 날이지만 당시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많이 긴장했었다. 바쁜 시간대가 끝나고 한가한 저녁 근무 때였다. 저녁 9시쯤 됐을까? 난 곧 있을 휴가를 앞두고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20대 정도로 추정되는 남자가 신고소 안으로 들어오더니 “저 죽으러 가요”라는 말을 하자마자 문밖으로 나갔다. 통화 중이던 나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혹시 몰라 같이 있었던 후임에게 “저 남자가 뭐라고 하든?” 물어보자 “죽으러 간다는데 말입니다” 대답이 돌아왔다. 서둘러 난 랜턴을 챙기며 말했다. “빨리 뛰어나가 잡아.” 그 정체불명의 남자가 우리보다 빨랐다. 내가 근무하던 신고소는 10m 앞이 바다였다. 사무실 밖을 나오자마자 풍덩하고 바다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앞에는 유명한 식당(물0식당)이 있어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난 다시 사무실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119 불러!”


갑자기 외친 큰 소리에 2층에서 쉬던 다음 근무조가 모조리 사고 현장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물에 빠진 사람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았고 정박해있는 조그만 어선 옆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육중한 체격이라(아마 90kg은 넘어 보였다) 혼자 힘으로는 바다에서 배 위로 끌어올릴 수 없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과 힘을 합쳐 사고자를 배 위로 끌어올렸다. 어라, 물 위로 올렸는데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음 절차로 바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데, 술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 살려야 하는데 어쩌지?" 순간 인공호흡을 하지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어쩌나 살려야지” 체념하며 인공호흡하기 전, 정신 차리라고 일부러 세게 뺨을 때렸다. 고막이 찢어지거나 이빨이 부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힘을 실어 때렸다. 이왕이면 인공호흡하기 전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인공호흡을 하려는 찰나였다. “푸우우”하고 내쉬는 숨과 함께 술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리고 때맞춰 도착한 119에 사고자를 인계했다. 다행히 술 취한 사고자에게 인공호흡은 하지 않았다. 아찔했던 그리고 우스웠던 그때 일어난 세 가지 일들은 당시 휴가를 앞둔 내게 위풍당당한 무용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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