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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an 11. 2024

추울 때는 고드름 제거가 딱이지

영하 10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추워요

어제가 글 발행일이지만 쓴 글이 맘에 들지 않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습니다. 오늘 다시 써서 올릴 생각이었는데 오늘 쓴 글 역시 영 맘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원래 썼던 글을 지우고 다른 내용으로 씁니다. 여전히 재활(운동에 집중한, 하지만 아직 계단 내려오기와 달리기는 못해요 ㅠㅠ) 중이지만 차량 운전과 기계 조작은 가능해서 전에 있었던 출동 얘기를 쓸게요.     



오전 9시 50분 갑자기 구조출동 벨이 울렸다. 그리고 굴절사다리차가 출동하라는 지령 소리가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어, 뭐지?” 원래 사다리차는 출동이 많지 않다. 그래서 더욱 무슨 출동인지 궁금해졌다. 출동지령서에는 4층 건물에 고드름 제거로 먼저 출동한 다른 곳에서 사다리차 지원 요청을 보냈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운전하는 굴절사다리차는 길이만 10m가 살짝 넘는다. 그래서 골목이 좁거나 길 양쪽에 주차가 되어 있는 경우 차량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운전할 때도 출동장소를 알리는 웹패드(삼성 갤럭시 탭)에 나온 경로를 참고하지만 그 경로를 그대로 따라갈 순 없었다. 수시로 지도를 살피며 이곳에 굴절사다리차의 진입 가능 여부를 체크한 후에야 운전대를 돌릴 수 있었다.      


왕복 4차로의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고 70m만 직진하면 이제 재난 위치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회전하기 전부터 차량들이 도로 양쪽에 주차된 게 보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섣불리 차를 꺾을 수 없었다. 내려서 도착 장소까지 걸어가며 차량 진입 여부를 확인했다. 일반 주택가의 도로라 차들이 양쪽에 주차된 상태에서는 사다리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 나왔다. 앞 뒤로 차량을 유도할 대원들을 세워 가까스로 목적지인 00 복지관 앞에 도착하자 이미 출동했던 다른 대원들이 여기저기 길을 막고 있는 차량(대략 6대 정도)에 전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20여분 동안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에 전화했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한 차는 겨우 4대였다. 나머지 2대는 연락이 되지 않거나 지금 밖에 있어 못 옮긴다는 차였다. 이젠 울며 겨자 먹기로 오로지 내가 운전해서 나머지 난관을 헤쳐나갈 차례였다(원래는 전화번호도 없어 연락이 안 된 차, 연락이 되어도 지금 차를 빼지 못한다는 사람의 차를 시청에 통보해서 견인하려 했으나 주무부서에서는 강제 견인 대상 지역이 아니라서 견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드름을 제거할 만한 위치로 차를 운전해 정차한 후 아우트리거를 펼쳐 차를 고정시켰다. 이후 대원 2명을 태우고 4층 높이로 사다리를 전개하며 바스켓에 탄 대원들과 수시로 소통했다(바스켓과 조종석에는 마이크와 스피커가 있어 무전기를 쓰지 않고도 의사 교환이 가능합니다). 복지관 정면에 위병들처럼 나무가 여러 그루 심겨 있어 그 나무에 닿지 않고 고드름을 제거할 수 있는 위치까지 바스켓을 전개하는 게 1차 목표였다. 고드름의 상태는 건물 정면 4층 우수관(옥상의 빗물이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는 관)에서 4~5m 정도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바스켓 조작자와 바스켓 탑승자가 나뉘어 고드름을 제거합니다


바스켓을 전개한 이후에는 바스켓을 조작하는 나와 바스켓에 탄 대원들의 소통이 정말 중요해진다. 그 이유는 내가 있는 조작 위치에서는 바스켓이 벽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조작하다 애매한 상황이 되면 바로 조작을 멈추고 지금 벽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대원들에게 물어보았다.  

    

나 : 00 반장, 지금 벽하고 거리가 얼마나 될까?

00 : 지금 1m 정도입니다, 조금만 더 올려주세요

나 : 알았어

00 : 여기 작업 끝났습니다. 아래로 조금만 내려주세요

나 : OK. 흔들릴 수도 있으니 꽉 잡아

00 : 네, 알겠습니다. 바스켓 왼쪽으로 조금만 돌려주세요

나 : 이 정도면 괜찮아? 얼음 조각 눈에 들어갈 수 있으니 조심해서 작업해

00 : (웃으며) 네

00 : 작업 다 끝났습니다.    

 

이런 대화들이 내가 조종간을 책임지고 있는 동안 이뤄졌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접촉사고도 없었다. 무사히 바스켓에 탄 대원 2명을 지상으로 내려주고 다시 사다리를 원위치시켰다. 이젠 복지관에서 굴절사다리차를 뒤로 후진해 주택가에서 일반도로까지 빠져나가는 일이 남았다. 그것까지 완전히 마무리해야 이 출동이 완전무결하게 끝이 날 수 있다. 남은 인원들이 전부 달라붙어 사다리차 앞뒤에서 차량을 유도했다. 나 혼자서는 절대 100m 가까이를 후진할 수 없었다(후진하는 동안 대원들이 앞뒤로 통제했던 차만 4대가 넘어요).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니 어언 2시간이 흘렀다. 오늘 출동은 업무 난이도로 보면 중상정도의 일이었다. 바스켓을 조작할 때는 몰랐지만 생각보다 추웠는지 사무실의 따뜻한 온기에 온몸이 노곤해지며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굴절사다리차 운전원은 운전도 해야 하고 사다리 조작, 현장에 도착해서 사다리 전개 작업을 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판단하는 모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겉에서 볼 때는 출동이 많지 않아 편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운전원의 입장에서는 출동 후에 이뤄진 모든 사다리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이 은근한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맡겨진 일을 잘하기 위해 수시로 조작 연습을 하고 매뉴얼을 정독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난 하나님께서 주신 내 자리에서 사람들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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