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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Mar 06. 2024

예전엔 담배가 좋았는데,
이제는 싫어요

담배 끊은 지 5239일

난 골초였다. 그래서 담배 피우는 분야만큼은 남들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1996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하루에 1갑 이상 담배를 피웠으니 상위 30% 입성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것도 처음에나 한 갑이었지 나이를 먹을수록 피우는 양도 늘어났고 하루에 두 갑이상을 태우는 날도 있었다. 아마도 14년 동안 평균을 내면 하루 1.5갑 정도 피우지 않았을까?      


술은 거의 못하지만 그렇게 담배를 즐기던 내가 어느 날 담배를 끊게 되었다. 일부러 끊은 날짜를 기억하기 쉽게 2009년 10월 31일까지만 피우고 담배를 버렸다. 담배를 피우는 14년 동안 금연하기 위해 수없는 시도를 해왔다. 담배와 라이터를 버린 건 적어도 열 번이 넘었고 그 이후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의 얘기를 더듬어본다.     


2009년 10월에는 난 백수였다. 전에 썼던 글에 나와 있듯 5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대기업⟶외국계 회사⟶벤처기업)를 2008년 10월에 그만두고 2009년 1월부터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관련 없을 거라 여겼던 노량진에서 두 달 동안 수험생처럼 학원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는 공부를 했다. 운 좋게도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광주광역시 소방관 시험에서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총점 1점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2009년 초의 서울과 경기 소방관 시험을 목표로 한창 공부와 운동에 집중할 때였다.      


당시는 필기 76점, 체력 24점 도합 100점 중 총점이 높은 사람이 합격하는 시스템이었다. 시험 순서도 체력시험을 필기보다 먼저 치르고 체력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만 다음 순서인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험생들에게 체력시험의 중요성은 꽤나 컸다. 운동에 소질이 없던 내가 소방관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선 체대 입시학원(체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체력시험 준비를 도와주는 학원, 고등학생들은 운동을 저녁에 하기 때문에 소방관 체력향상 프로그램을 오전에 부업으로 하거나 전문적으로 소방관 체력시험을 준비하는 체대 입시학원도 있었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체력 시험은 악력, 배근력,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20m 왕복 오래 달리기 6가지 종목을 하루동안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왕복 오래 달리기는 78회가 만점이었다. 거리로는 1.6km가 되지 않지만 뛰다 멈추고 돌아서 다시 뛰어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속도가 빨라져서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이 종목에서 만점을 받기가 힘들었다. 체력시험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주 3일 하루 2시간씩 운동하다 보니 몇 년 동안 신었던 신발이 금세 마모됐고 새 러닝화가 필요해서 사러 간 그날이었다. 담배를 버리고 금연을 시작한 날이.     


당시엔 꽤나 절실했었다. 4달 후인 2010. 2월 말 체력시험, 3월 말 필기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아내에게 무슨 면목으로 고개를 들고 다니나 걱정이 많았다. 더구나 2009년 6월 말 불합격했던 기억은 이런 내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때 무늬만 기독교인이었던 내가 중보기도 교육을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이런저런 기도를 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무슨 덕이 될까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신실한 크리스천의 모습과 현재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런 내면의 불일치를 6개월 이상은 겪었고 그게 시간이 지나 임계점이 되어 한 방에 담배를 끊고 내가 생각하는 크리스천의 모습대로 살아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폐활량도 좋아지니(내 경우엔 담배를 안 피우고 달리기를 하면 확실히 숨이 덜 찼다. 그건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잘 달리는 사람은 하루 1갑씩 피워도 쌩쌩 달린다) 일석이조였다.     


그땐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면 내가 정말 바보다, 내가 이렇게 의지가 약하나, 이번 기회에 담배도 끊고 시험도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자는 생각을 하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흡연 욕구를 계속해서 참았다. 참고, 참고 또 참다 보니 다음 해가 됐고 어느덧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 현직에 발령을 받았다. 담배를 끊은 지 첫 1년간은 정말 참는 것의 연속이었다. 일 마치고 삼삼오오 모며 한 대 태우며 얘기하는데 나도 그 자리에는 끼었지만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땐 담배연기가 구수하게 느껴졌었다. 가서 담배 하나만 빌려볼까, 못 이긴 척하며 다시 피워볼까 여러 생각을 했지만 곧 태어날 아이에게 담배 피우는 아빠가 되기는 싫었다. 첫 1년은 그리 생각하며 참았다.      


렇게 시간이 지나고 3년쯤 지나자 담배 연기에서 나쁜 냄새가 나는 게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구수한 담배연기가 이제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었다.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면 내가 자리를 피하던지 남을 쫓던지 둘 중의 하나였다. 이리 냄새가 역한 것을 뭐가 좋다고 피웠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2019년과 2020년 사이 금연 10년이 넘을 즈음엔 담배 피우고 싶다는 욕구조차 사라졌다. 그러나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제대한 예비역들이 어쩌다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는 것처럼 나 역시 꿈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너무나 허탈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이걸 얼마나 힘들게 끊었는데 지금 이걸 다시 피우고 있냐, 아, 망했다. 10년 넘게 참았는데 내가 왜 못 참고 다시 피웠을까?” 실제로 꿈꾸는 동안 내가 얼마나 자책을 했던지 아침에 일어나서도 꿈꿀 당시의 안타까운 마음이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였다.      


이젠 담배를 끊은 지 14년 4개월이 지났다. 이젠 담배를 피우는 꿈조차도 꾸지를 않는 완전하게 담배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만큼 성숙한 신앙인이 됐으면 좋으련만, 그쪽으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앞으로도 주욱 담배와 상관없는 삶을 살며 애들에겐 다정한 아빠, 아내에겐 듬직한 남편이 되고 싶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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