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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n 05. 2024

삼부자의 여수 밤바다

아내 없이 떠난

첫째 날(시간표시는 군대에서 배운 대로 06시를 0600으로 씁니다, 이게 헷갈리지도 않고 은근히 쓰기 편합니다 )

0620 집에서 출발
0820 충북 오창휴게소 : 화장실만 들림, 아이들 간식(소떡소떡)
1040  전남 황전휴게소 : 유부우동 둘, 라면
1110 황전휴게소에서 낙안보건지소로


큰 아이가 토요일에 다친 손가락이 아프다고 해서 황전휴게소에서 첫 번째 목적지인 낙안읍성과 600미터 떨어진 낙안보건지소로 출발했습니다. 그곳에서 1차 소독만 하고 숙소가 있는 여수에서 병원 진료를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서 낙안읍성까지의 거리는 55km, Tmap에서는 도착시간이 12시로 나와있어 속도를 냈습니다. 20년 전, CJ제약사업부 영업사원 시절 자주 지나던 순천나들목을 지나 승주나들목에서 일반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시간은 11시 30분, 20km쯤 남았는데 도착예정시간은 계속 12시가 넘는 걸로 나와 있어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아뿔싸, 잠시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고 도착시간을 신경 쓰는 사이, 스쿨존에서 30km인 제한속도를 8km나 초과해 버렸습니다. 아이고, 과태료에 한숨,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지난 일을 바꿀 순 없습니다. 속은 쓰리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습니다. 별생각 없이 3km쯤 가니 왜 도착예정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길이 그렇듯 직선으로 된 도로가 없었고 커브길에 높낮이가 심한 고갯길이 죽 이어졌습니다. 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도착예정시간이 늦어지는구나 그제야 Tmap의 깊은 속뜻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내어 보건지소(학교의 분교라고 이해하시는 게 편합니다, 보건소의 하위 조직)로 향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11시 58분에 도착해 진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의사 선생님만 진료 중이어서 그리로 갔습니다. 아이의 손가락을 보시고는 빨갛게 부어서 염증이 있는 걸로 보이니 오늘 꼭 병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환부 소독 후 코반(3M자가점착 밴드, 붕대 대용으로 쓰임, 다만 비쌈)으로 손을 돌돌 감 고나니 처치가 끝났습니다. 진료비 1100원이 나왔으나 관광객이라 무료였습니다.

이제 낙안읍성으로 갈 차례,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별 거 없었습니다. 대장금세트장이라면서 그냥 드라마 장면을 인쇄해 벽에 붙여놓은 수준이었습니다. 1시간가량 아이들과 사진 찍고(둘째는 현장체험학습이라 제출용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왔습니다. 여름도 아닌데 땀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아이들 입에 시원한 것 하나씩 물러주고 두 번째 계획인 드라마 세트장을 건너뛰고 여수로 왔습니다.

1420 여수 소아과 도착


20년 전 여수와 지금의 여수는 너무 달랐습니다. 새 건물,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고 제가 기억하는 예전 모습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큰 아이가 조금 전 처치받은 손이 계속 아프다고 해서 여수의 소아과로 향했습니다. 일부러 예전 영업사원일 때 거래했던 참조은소아과로 갔습니다. 예전의 저를 기억하는 의사 선생님을 뵌다면 짧게라도 인사드리려고 했지만 생각만으로 그쳤습니다.

이틀 전 토요일, 큰아이가 레고에 손을 다쳤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하루 뒤인 일요일 오전에 상처 부위에서 피와 고름이 났고 집에 있는 과산화수소로 세 번이나 소독하고 이부프로펜을 먹였습니다. 오전 6시, 순천으로 출발 전에도 소독을 하고 출발했는데 자꾸 아프다고 하니 병원 진료를 받아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소아과 선생님은 상처 부위를 보지도 않은 채 처치 여부를 결정하기 애매하니 다친 손의 염증 때문에 온 거라면 여기 말고 같은 건물 한층 위에 있는 외과 진료를 받는 게 낫다며 위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엔 엄청 환자가 몰리는 곳이었는데 이상하게 한가하더라니,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기억하는 의사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냥 아무 말 안 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여기며 외과로 올라갔습니다. 외과 선생님은 환부를 둘러싼 코반을 벗기고 아이 손가락 움직임과 감각이 느껴지는지 여부를 체크하시더니 이 정도는 약 먹을 필요도 없고 소독 잘하고 후시딘 바르면 금방 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염증이 심해졌을까 걱정했는데 전문가의 확답을 들으니 아이도, 나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외과 진료 후 삼부자는 병원 옆 골목의 어묵가게에서 어묵 8개, 붕어빵 4개, 떡볶이 1인분을 먹었습니다

1530 호텔 헤이븐 도착


숙소 광고에 따르면 마운틴 뷰지만 2박에 106,000원입니다. 가성비 숙소로 추천할 만합니다. 올해 2월 오사카에서 4일간 머문 숙소와 비슷했습니다. 또한 여수 야경을 볼 수 있는 크루즈가 50% 할인이라 세 명이 33,000원에 80분 간 배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이틀간 1일 1 장어 식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늘의 장어는 화양식당(여수 공화동 1258), 장어구이를 시키면 장어탕이 따라 나오는 곳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화양식당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가게 앞이 한산합니다.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내려서 가게 문을 열려고 했는데 꿈쩍도 안 합니다. 닫혔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서둘러 다른 공화동 맛집을 검색합니다. 크루즈 승선 시간은 1830, 멀리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의 식사 속도가 느려 가까운 데서 해결하는 게 속 편합니다.

10분 검색 끝에 찾은 식당, 고향민속식당(공화동 544), 숨겨진 맛집인가 봅니다. 연예인 사진이 제법 걸려있습니다. 아이들은 생선구이 정식, 저는 장어탕을 시켰습니다. 갑자기 기대도 않은 간장게장, 양념게장이 나왔습니다. 정식에 포함된 거라 합니다. 아이들이 게장을 먹지 않아 모두 제 차지입니다. 행복했습니다. 네이버 리뷰에 숨은 맛집이라더니 오늘은 웬일로 선택을 잘하는 날인가 봅니다. 생선구이, 장어탕, 서비스로 나온 게장까지 배불리 먹고 아이들과 함께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이젠 숙소에서 서비스로 50% 할인가에 구매한 크루즈를 탈 차례입니다. 이름이 여수 오션크루즈네요, 배는 747톤으로 건물 3층 높이입니다. 크루즈는 아주 심심한 맛이었습니다. 여수항과 방파제 인근을 매우 느린 속도로 1시간 20분을 주행하고는 끝입니다. 할인가에 탔으니 망정이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군대시절 탔던 3002함과 같은 톤수의 배입니다

배 타면 갈매기를 위해 새우깡을 사야 합니다. 두 녀석의 새우깡을 사니 6000원이 나갔습니다. 1시간 20분의 짧은 출항시간 동안 예전 해양경찰 군복무 시절 3000톤급 배를 탔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나?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 몇 장의 추억뿐이네요.

배에서 내린 시각은 8시 20분, 숙소로 들어가 애들 재우면 오늘 하루도 끝입니다, 내일을 위해 간단히 혼맥하고 서둘러 자야겠습니다.

둘째 날 : 16,000걸음

0900 헤이븐 호텔에서 향일암으로 출발 

향일암에서 본 바다는 정말 멋있었습니다. 높고 탁 트인 곳에서 보는 바다와 숙소 앞에서 봤던 바다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 광경을 보니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였던 바다의 모습처럼 전문가도 수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평생 노력해야지, 멈추면 저절로 퇴보한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가는 연어처럼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1110 오동도
역시 여행지는 몸소 겪어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오동도는 관리가 잘 된 관광지의 표본이었습니다. 깔끔한 나무데크길과 계단, 곳곳에 있어 저 같은 길치가 헤매지 않게 해주는 안내판, 깨끗한 화장실 등이 최고였습니다. 오동도 공영주차장에서 오동도까지는 약 800미터로 걸어가도 되는데 아이들이 자전거를 원해 만원/1시간에 빌렸습니다. 방파제 길도, 등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도 멋졌네요.

1238 오동도 주차장에서 국동항으로 출발
1253 국동항에서 주차 후 경도로 배 타기
1310 배에서 내려 경도회관까지 300미터 걷기

원래 배 타고 5분이면 내리는데 브런치 글을 쓰는 사이 경도에 도착해 버렸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신나게 쓰다 보니 다시 국동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운임(그래봤자 세명 왕복 운임 3000원, 총 6000원)을 치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갯장어 샤브샤브(여수 경도회관 본점)입니다. 2009년 TV에서 갯장어 샤브샤브를 보고 언젠가는 가야지 했는데 15년 만에 오게 됐습니다. 여수 현지인들은 굳이 이 가격을 주고 먹을 필요가 있을까 반문하는 음식이지만 관광객인 우리 삼부자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그저 배불리 먹고 즐기면 그뿐입니다.

큰아이가 음식을 많이 가리는 편입니다. 아이가 장어구이를 먹으니 갯장어 샤브샤브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식탁에 놓인 갯장어를 본 큰아이는 회를 안 먹는데 왜 이리 왔냐며 싫어하더라고요, 여러 차례 권했지만 안 먹겠다는 아이 마음을 돌리기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식당 사장님께서 아이가 못 먹는 걸 보고 안타까우셨는지 도와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먹어봐, 장어구이와 똑같은 장어야, 이거 먹으면 오늘 키 1cm 클 거야라며 아이를 달래주셨습니다. 1분쯤 지나자 제 말에는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이 사장님 때문에 먹어본다며 한 점 집어먹습니다. 아이 엄마 없이 저 혼자 달래려니 생각보다 힘드네요, 아내의 빈자리를 확실히 느꼈습니다.

1420 경도에서 국동항 주차장, 다시 고소동 벽화마을로
1450 벽화마을 도착


예전 거제의 동피랑 벽화마을 같은 곳이 여수에도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가벼운 산책(이라 하고 속으로는 계단을 포함한 걷기 등 유산소운동을 노리는 아빠의 속뜻은 애들이 모를 겁니다)을 했습니다. 이런 그림들이 기다란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그림 실력이 영 꽝이라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1510 낭만카페 도착

벽화마을에서 사람들이 꼭 가보라던 낭만카페에 왔습니다. 2층에 오르니 사람들이 추천한 이유를 금세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추신

원래 사진을 몇 장 더 넣으려 했는데 브런치 오류인지 계속해서 에러가 났습니다. 원하는 위치에 사진이 어가질 않습니다. 스무 번도 넘게 시도했지만 계속 안되네요.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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