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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n 26. 2024

40년 전부터 파국이 예정된

아버지에게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누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말은 아버지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다는 걸 뜻합니다.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우리 3남매(누나, 나, 남동생)와 아버지의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우리를 정말 쉽게 키우셨습니다. 어릴 때는 방임하다시피 새엄마 손에 무관심으로 우리 3남매(누나, 나, 남동생)를 대하셨습니다(물론 본인은 집안의 평화를 위해 참았다고 하지만 글쎄요 그건 아버지의 입장이니까요). 이후 우리가 돈벌이를 할 정도로 머리가 굵어진 이후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번 돈(누나의 결혼자금, 제 어학연수 비용)을 모두 아버지 사업자금으로 가져다 쓰기 바빴습니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정도가 지나치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일해서 모은 돈이 바닥나자 이젠 우리 이름으로 대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누나와 저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손해를 보았고 그 뒷감당 역시 아버지가 아닌 누나와 제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면 전 거북이처럼 움츠리게 됩니다. 이번엔 무슨 일일까? 또 돈 얘기일까? 아, 이젠 그만하고 싶다가 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전 글에도 썼지만 아버지, 새엄마, 누나와 나, 남동생(돌아가신 엄마가 낳은 자녀들), 새엄마가 낳은 여동생 이렇게 6명이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겉에서 본 가족의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아버지, 새엄마, 여동생 3명의 가족에 3명의 처치곤란한 아이들(누나, 나, 남동생)이 문간방에 얹혀사는 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무관심, 새엄마는 오직 여동생만 예뻐하는 곳에서 우리가 마음을 기댈 곳은 없었습니다. 새엄마는 자신이 낳은 딸과 우리 3남매를 달리 대했습니다. 차별대우가 아주 심했습니다. 자연스레 3남매는 각자의 성향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집이 아닌 밖에서 찾으러 무진장 노력했습니다(시간이 지나 그게 헛된 노력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누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따뜻함으로 어린 시절을 견뎌낸 것 같습니다. 남동생은 친구들을 통해 부족한 마음을 달래려 했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교회 선생님에게 그 모습을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그분 역시 앞길이 바쁜 대학생일 뿐 제 엄마가 되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결국 대학에 가서 만난 여자친구들을 통해 엄마의 빈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그 아이들로는 채울 수 없었습니다. 서로 기대하는 것이 다르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지고 다시 다른 여자친구를 찾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마음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한 것과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친구를 둔 덕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아, 누나에게서 온 전화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습니다(전라도 사투리가 들어갑니다).


누나 : 어제 아빠 생신 선물도 살 겸 여름옷을 사고 저녁을 먹었어, 00(남동생) 식구들이랑 같이

나 :  어, 근데 (계속 얘기해, 누나)

누나 : 근데 꼭 식사 끝나고 가기 전에 아빠가 또 그러는 거야, "앞으로 너희들 모이는 자리에 여동생 안 부를 거면 나, 다시는 너희들이 불러도 모임 참석 안 할란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나 : 왜 또? 그 말이 그렇게 하고 싶으셨대?

누나 : 몰라, 아빠에게 우리는 뭐지 싶다, 이럴 때 보면 작년에 작은 아빠가 2주간 아빠 병간호하고 난 후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맞는가 싶어, “너희 아빠가 여동생과 너희 남매(누나, 나, 남동생)를 대하는 게 정말 다르다, 너희는 아직도 그걸 모르겠냐?"

나 : 아, 그거, 맞아, 가끔 보면 우리는 아버지한테 그냥 아무 때나 열기 쉬운 저금통 아닌가 싶어

누나 : 8월에 아빠랑 놀러 가려고 미리 예약한 펜션 있지, 아빠 그때도 안 가신다고 하신다. 어쩜 좋냐? 00(남동생)은 아버지 안 가신다고 하면 그냥 우리 남매끼리만 가자고 하던데 넌 어때?

나 : 아, 그냥 우리끼리 가. 안 가신다면 별 수 없지. 그렇게 여동생 챙길 거였으면 40년 전부터 우릴 잘 챙겼어야지. 이제 와서 물(우리 남매)과 기름(새엄마, 여동생)이 합쳐져?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사실 아버지는 머릿속의 종양이 없어지고 난 후 새엄마와 여동생이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우리 남매는 3명이지만 여동생은 아버지랑 새엄마가 돌아가시면 혼자 남게 된다며 우리 보고 여동생을 잘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30년 전이었다면 “네”하고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새엄마, 여동생 VS 우리 3남매 사이 얼마나 깊은 감정의 골이 있는데 그걸 다 없는 셈 치고 잘 지내라고요?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아무리 아버지라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버지에겐 여동생만 자식이고 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꼭 아버지가 아쉬울 땐 여동생이 아닌 우리를 찾으면서,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쏟아붓고 싶었지만 어차피 말해도 그 말을 들을 분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쳤다)


우리 매형(누나의 급한 성격을 다 맞춰주는 성격 좋은 매형, 체구며 마음씨 모두 듬직합니다) 역시 작은 아버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형이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그동안 죽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우리 3남매와 여동생을 대하는 게 다르다며 왜 그리 자식들을 편애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매형이 그런 말을 했을까? 아버지와 우리 남매가 아닌 3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니 그게 가장 정확할 테지. 가끔 이렇게 아버지에게 실망할 때면 늘 자식을 위하는 좋은 부모를 둔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아버지! 우리 3남매와 새엄마, 여동생이 하나 되길 원하셨다면 지금 제 나이가 46이니까 40년 적어도 35년 전인 89년(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나 90년(내가 중 1)부터는 우리에게도 신경을 쓰셨어야죠, 그때는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다 누리고 사셨으면서 이제 와서 우리더러 여동생 신경 쓰라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3남매 결혼할 때 아버지 뭐해주셨어요? 모두 Lip Service만 날리셨잖아요, 여동생 결혼할 때는 저한테 카드 달라고 하셔서 여동생 신혼여행비 내주려고 하신 거, 기억 안 나시죠? 그 일로 저와 제 아내, 누나, 남동생 모두 크게 상처받았답니다. 아버지는 저희에게 미안하단 말 한마디 안 하셨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 일 없듯이 사이좋게 지내라고요? 죄송하지만 저희 더 이상 아버지 말 잘 듣는 꼬맹이들 아닙니다. 아버지한테 속을 만큼 속았고요, 할 만큼 했어요, 더 이상 어떻게 할까요? 학생 때 모은 돈 다 드렸죠, 돈 없으니 대출받아 드렸죠, 그 뒷감당 모두 저희가 했죠, 아버지 암 걸려서 치료비 냈죠, 치료비 하고 남은 돈 모두 달라고 하셔서 다 쓰셨잖아요, 저희 남매보다 돈을 더 좋아하시는 아버지, 우리에게 더 이상 뭔가를 요구하지 마세요, 계속 그러시면 저희 이제 아무도 아버지 일 신경 안 쓸 거예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새엄마와 여동생에게 가서 매달려 보세요, 과연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PS. 파국을 검색하니 설렁탕 이미지가 나오네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웃음만 나옵니다. 일부러 이 이미지를 네이버에서 가져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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