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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10. 2024

3년을 꽉 채우고 돌아가신  둘째의 전화기

갤럭시 A32(2021년 3월 구입)

6월 초, 둘째의 전화기 액정이 고장 났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아이에게 물었더니 걸으면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바닥에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전화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액정이 깨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걸어 다니면서 유튜브 보거나 게임하는 것은 안 된다고 누누이 얘기했지만 그 말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아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날려버렸나 봅니다. 둘째는 이 일로 엄마에게 제대로 꾸지람을 들었고 아이 엄마는 일부러 전화기를 고치지 않고 일주일 정도를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이 엄마 생각은 본인 잘못으로 고장 났으니 전화기의 소중함을 느껴봐야 깨우치는 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심 아내 말도 맞다 싶어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전화기가 없어 불편한 건 둘째가 아니었습니다. 밖에 나가 놀다 밥때가 되면 집에 들어와야 되는데 이 녀석이 노느라 제시간에 맞춰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약속시간보다 3~40분 늦게 들어오니 밖에 나가서 찾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연락이 되지 않아 속이 탄 건 오히려 우리 부부였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나서서 전화기를 수리했고 액정 교체비만 12만 원이 들었습니다(3년 전 32만 원에 산 전화기인데 앞으로 2년은 더 쓸 수 있겠지 생각하고 기꺼이 수리비를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6월부터 둘째의 운동 종목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5월까지는 킥복싱 도장에 다녔는데 얼마 전부터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해서 6개월 정도 다녔던 킥복싱은 잠시 쉬고 집 근처 체육센터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수영 등록을 마쳤습니다(저희 부부는 운동은 무엇이든 좋다, 이왕이면 본인이 원하는 운동을 시키는 게 더 낫다는 주의입니다). 수영하기 전에 미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여기서 둘째의 부주의가 드러났습니다. 사물함에 전화기를 놔두지 않고 수영복이 들어있는 가방에 전화기를 넣었고 그 가방을 샤워기 앞에 둔 채 1달이 넘게 샤워를 해왔던 것이었습니다. 전화기가 그동안 고장 나지 않고 버틴 게 용했습니다. 둘째가 수영을 시작한 지 1달이 지난 7월 초, 드디어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영을 끝내고 온 아이가 갑자기 “아빠, 전화기가 안 켜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나 : 왜 안 켜지는데?

둘째 : 수영 끝나고 전원버튼 눌렀는데 안 켜져요, 잘 모르겠어요

나 : 줘봐, 물에 빠졌어?

둘째 : 아니요, 그런데 물에 젖은 것 같아요

나 : (날카로운 목소리로) 뭐라고? (서둘러 전화기를 확인했습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전화기와 전화기를 둘러싼 덮개 사이에는 흥건한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00야, 너 전화기 어떻게 놔둔 거야? 사물함에 안 놔두고 어디다 두고 다닌 거야?

둘째 :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풀이 죽어) 깜빡했어요. 그동안 수영복 넣는 가방에 놔두고 다녔어요   

  

물에 젖은 전화기는 함부로 전원을 켜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 그늘에 이틀 동안 놔뒀습니다. 별 일 없이 잘 켜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야속하게도 전화기는 켜지지 않았습니다. 한 달 만에 또다시 AS센터로 가야 했습니다. 둘째는 또 저와 엄마에게 엄청나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수리하기 전 아내와 미리 합의를 했습니다. 수리비가 10만 원이 넘으면 수리하지 않고 전에 쓰던 전화기(제가 쓰던 갤럭시 22+)를 둘째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수리기사님이 전화기를 살펴보고는 “휴우, 이거 수리비 꽤 나오겠는데요, 메인보드와 주요 부품 모두 물을 먹어서 싹 다 교체해야 됩니다. 어디 보자, 갤럭시 A32 부품 가격이...(10여 초 정도 가격표를 살펴본 후) 수리비는 대충 계산해도 25만 원이 넘겠는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수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시 몰라 사진 같은 데이터를 살릴 수 있을지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완전 침수라 이건 복구 불가입니다”였습니다.      


결국 비싼 수리비가 나와서 수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둘째를 불러 조용하게 얘기했습니다. “00이, 이 녀석, 한 번만 더 전화기 함부로 쓰면 다신 안 사줄 거야, 이거 아빠가 쓰던 건데 고장 난 전화기보다 훨씬 좋은 거야, 다음부터는 수영할 땐 꼭 사물함에 전화기 넣는 거야, 알았지?” 아이는 전화기를 받으며 “네”하고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전화기는 3년 넘게 살아주기를 바라봅니다. 또, 전화기를 함부로 쓰는 아이의 습관이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정말 아들 둘 키우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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