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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24. 2024

공무원은 어디까지 친절해야 하나?

자기 일을 미루는 신고자

제목을 단어의 의미까지 정확하게 따져서 다시 쓴다면 "공무원은 어느 정도까지 친절해야 하나"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그냥 제 하소연입니다.


얼마 전, 상황실에서 출동 방송이 나왔습니다. "00 펌프, 가게 유리문이 떨어졌다는 신고입니다. 안전조치 출동하세요" 그날은 마침 팀장님이 해외여행을 가셔서 펌프차에 탄 4명 중 제가 팀장님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며 어떤 상황의 출동이 될지 미리 계산해 봤지만 깨진 유리가 얼마나 크길래 119를 부를 정도일지 궁금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유리가 떨어진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로 건물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유리문이 떨어진 곳이 보이지 않아 후배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신고자 전화해 봐라", "네, 지금 전화 중입니다" 조수석에 탄 제 뒤에서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10층 정도의 빌딩을 한 바퀴 다 돌았을 무렵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어 운전 중인 대원이 바로 얘기합니다. "저기 신고자네요, 그 앞에 깨진 유리문이 보입니다(출동 중에는 서로 알게 된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같이 탄 대원들이 충분히 알아듣도록 큰소리로 말합니다)"


운전 중인 대원은 근처에 주차를 하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은 헬멧, 장갑까지 모두 착용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출동 시 알맞은 개인안전장비 착용은 정말 중요합니다. 귀찮더라도 안전장비는 칼같이 챙깁니다). 신고자와 같이 유리문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신고자가 말하기를 새벽에 알람이 울려 나와보니 1층 가게 유리문(가로x세로 : 약 1x2m)이 떨어져 있고 너무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119에 전화했다고 합니다. 즉, 소방관더러 본인 가게 앞에 있는 박살 난 문짝과 바닥에 있는 깨진 유리조각을 치워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경황이 없어 신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고자는 저희가 올 때까지 깨진 유리조각 하나도 치우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 후 저희가 유리를 다 치울 때까지도 신고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저희만 할 일이었을까요?


신고자의 설명이 끝나고 제 눈으로 직접 바닥에 떨어진 유리문과 깨진 유리조각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글에 썼다시피 소방관은 위급하지 않은 경우엔 출동하지 않거나 단순 불편해소 차원의 출동의 경우는 출동 요청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출동을 단순 불편해소로 보아 거절하기에는 조금 무리였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이 많아 얼른 치워야지 출근시간이 시작되는 두어 시간 뒤면 바닥의 유리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얼른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리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문짝은 따로 치울 필요 없이 가게 앞에서 2m 떨어진 화단 벽에 예쁘게 놓여 있었습니다. 후배들더러 바닥에 떨어진 유리를 먼저 치우자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신고자를 보며 얘기했습니다.


나 : 선생님, 두 가지를 요청하셨는데요, 선생님 말씀처럼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들은 사람들이 다칠 위험이 있으니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두 번째로 요청한 문짝은 저희 차 보이시죠? 저 차에 짐을 싣을 공간이 없어 넣을 수도 없고요, 저희가 따로 처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건 동사무소나 시청 쪽에 문의를 해보세요, 유리 조각을 담을 만한 게 있을까요?


가게 주인 :  (쓰레기통을 가져다주며) 제가 경황이 없어서...(그리 말하면서도 절대 유리를 치우지 않았다, 마치 이건 니들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말하는 것 같아 뒤끝이 썼다) 시청에 전화해 보죠


15년차 소방관인 나도 이 일을 우리가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정도인데 유리를 치우고 있을 후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했습니다. 일부러 큰 소리로 가게 주인이 들을 수 있게 얘기했습니다.


나 : 얘들아,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하자, 이거 내버려 두면 사람들이 지나가다 다칠 수 있으니 이것만 하는 거야, 바람 불어서 눈에 유리가루가 들어갈 수 있으니 헬멧에 달린 보안경 꼭 쓰고, 장갑 있어도 손 조심해야 한다, 천천히, 다치지 말고 하면 되는 거야

후배들 : 네, 알겠습니다.


5분쯤 지나 바닥에 떨어진 유리를 거의 다 치웠습니다. 혹시 몰라 사무실에서 가져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이용하니 누가 봐도 말끔해진 상태였습니다. 혹시라도 후배들이 다칠까 봐 유리를 치우는 5분 내내 손조심해라, 다치면 안 된다 여러 차례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운전 중인 대원(얼마 전 제게 들이댔던 그 후배입니다)이 갑자기 신고자에게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합니다.


들이댄 후배 : 사장님, 유리 거의 다 치웠으니 나머진 사장님이 마무리하세요

(후배야, 나도 네 맘 다 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야, 일단 제복을 입었으면 우린 상대보다 2~3수는 밑지고 가는 거야,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야지 성질대로 지르고 나면 편한 건 1분이지만 피곤해지는 건 1주일, 1달이 될 수도 있어, 너도 잘 알잖아 - 민원인이 불친절로 소방서나 본부로 항의하는 경우 위에서는 자초지종을 조사하고 그 후 출동했던 대원들은 그 조사 명목으로 인해 엄청 시달립니다. 이번처럼 본인이 귀찮아서 하기 싫은 일을 위험하다는 명목으로 신고한 경우 소방관은 그 출동을 거절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무료 봉사자가 아닌데 열심히 유리를 치우는 동안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는 신고자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배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끼어들어 신고자에게 말했습니다.


나 : 저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습니다. 아까 시청에 전화하신다고 하셨죠? 나머지 문짝 처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신고자 : 그건 시청에서 따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나 : (가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더 이상 저희가 할 게 없네요, 보이는 건 다 치웠지만 작은 건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발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저희는 가볼게요


후배들과 다시 차로 돌아오며 여러 얘기를 했습니다. 혹시 유리 가루가 몸에 묻었을지 몰라 장갑과 옷을 다 털고 차에 올랐습니다. 들이댄 후배에게도 "출동 나가서 민원인과 싸우면 안 된다, 더럽고 치사해도 우린 공무원이니 친절하게 할 수밖에 없다. 어쩌겠냐? 일 잘하고 나서 마지막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큰 고생하는 거 다 알지 않냐? 다음부터는 기분이 언짢더라도 절대 티 내지 말자" 얘기했더니 그 후배는 "네, 알겠습니다"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곧이어 뒷자리에 탄 2명의 후배에게도 "우리더러 유리 치워달라는 신고자를 보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사람들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우린 우리 일을 했을 뿐이다, 출동 나가서는 조금 기분이 나쁘더라도 싸우지 않고 마무리 잘하고 오는 거야, 고생 많았다" 제 말이 끝나자마자 후배 둘 모두 "잘 알겠습니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듬직했습니다.


소방관인 저희는 무료 봉사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해보고 어렵고 힘들다면, 위험하다고 느껴진다면 그제야 출동 요청을 하는 게 어떨까요? 저희도 그런 경우엔 이렇게 기분이 언짢지 않습니다. 마땅히 저희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 뒤 구분 없이 자기 할 일조차 저희에게 미룬다면 어찌할까요? 그냥 제 마음속의 가슴앓이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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