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8. 파주에서 놀다 온 후 생긴 일
5학년, 3학년 두 아들을 둔 아빠다. 평소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지만(청소, 요리 등) 아내에겐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남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점수 좀 따 보려 주말에 파주로 놀러 가자고 했다. 애들은 임진각, 판문점 등 볼거리가 있어서 좋고 아내에겐 신세계 프리미엄 아웃렛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아내는 나름 솔깃했던 모양이었다. 금요일 저녁 자기 전에 대충 얘기만 꺼냈고 정확한 출발 시간까지는 정하지 않았다. 모처럼 주간 근무(21주기 교대근무 중 주간 근무는 월~금 5일간 09시~18시까지만 일하고 주말 이틀을 내리 쉬는 근무를 뜻합니다)를 마치고 난 후 토요일 아침이라 9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파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날 깨우기 시작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아직 7시밖에 안 되었다.
나 : 왜 이리 일찍 깨워, 오늘 주말이잖아
아내 : 지금 파주 가는 길 안 막혀, 자기 길 막히는 거 싫어하잖아. 지금 빨리 출발하자
나 : 뭐라고? 어딜 출발해?
아내 : 어제 파주 가자고 했잖아. 지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나 : 알았다
원래 아내는 아침잠이 별로 없지만 난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늦잠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출발하려 했는데, 내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 전날 파주에 가자는 말에 나름 교통체증이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가자고 하니 못 이긴 척하며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차에 태우고 파주로 출발했다.
파주 임진각에 도착해서는 점심 먹기 전까지 가족끼리 기념사진도 찍고 케이블카도 타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 무렵엔 신세계 프리미엄 아웃렛에서 큰 아이 운동화도 샀다. 그리고 아내의 윈도쇼핑 시간도 보냈다. 뭐, 그럭저럭 예상한 대로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아웃렛 다음은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의 박물관 투어와 아이들의 도자기 체험이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헤이리 마을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아마 내 추측이지만 아이들은 헤이리 마을에서 그 지독한 헤르판지나 바이러스에 옮은 것 같다. 헤이리 마을에선 오락실에서 총을 쏘거나 게임을 했고 도자기 체험을 하며 여러 명이 공용으로 쓰는 기구를 사용했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감염 장소로 추정되는 박물관을 갔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각종 물건이 있는 박물관이었다. 여러 물건을 쌓아 놓은 곳 치고는 습하고 어두운 편이었다. 또한 계단이나 통로도 좁은 편이어서 관람하기 불편했었다.
그곳에 다녀온 다음 날 저녁 7시 넘을 때였다. 기분 좋게 놀고 들어온 둘째 녀석이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둘째의 체온은 38도를 넘어 39.2도까지 갔다. 비상사태였다. 해열제를 먹였고 그것만으로는 열이 내리지 않아 미온수 마사지까지 시작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일요일 저녁이라 근처 병원에선 진료를 볼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응급실 진료를 보러 가기는 더욱 꺼려졌다. 2~3시간 둘째를 돌보는 사이 첫째 녀석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 둘을 약 먹이고 미온수 마사지를 하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나 역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월요일부터는 추석 연휴였다. 서둘러 아내가 검색을 했다(아내는 검색의 달인이다. 정말 필요한 정보를 잘 찾아낸다). 다행히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연휴 첫날인 월요일 오전까지만 진료를 했다. 월요일 9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 아이 모두 코로나는 아닙니다. 헤르판지나 바이러스 같습니다. 수족구병 사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며칠 동안 열이 심하게 날 거구요, 아마 40도 가까이 될 겁니다. 아이의 입에 물집이 생겨 많이 아파할 거예요, 시원한 음식 주시고요, 밥 대신 죽으로 먹이세요, 처방한 약 먹이고 편히 쉬게 해 주세요, 스스로 이겨내야 합니다. 전염성이 있으니 아이들은 집에만 있어야 합니다. 요새 이 바이러스 잘 안 걸리는데 신기하네요, 어디 놀러 갔다 오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어제 파주에 놀러 간 게 원인인 줄 단번에 알게 되었다. 아마 박물관 아니면 도자기 체험 둘 중 하나이리라. 약국에서 약을 사고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왔다.
당장 오늘부터가 큰 일이었다. 아내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추석 연휴에 쉬지만 난 월요일 저녁부터 야간근무 후 비번을 반복하는 근무 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출근할 때까지 6시간 정도 남아 있는 때라 서둘러 밤잠을 자지 못한 아내를 재웠다. 애들에게 먹일 죽을 만들고 간단하게 수프 같은 먹거리를 사 왔다. 두 아이 모두 해열제를 최고 용량까지 먹였다. 거기에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제재까지 먹였어도 열은 37.5도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이들 입안에는 빨간 물집이 생겼고 잇몸이 부어서 양치질할 때마다 입 안이 엄청 쓰리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로 인해 물을 삼키는 것도,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열은 계속 나니 물이 없어 시든 풀 같아 보였다. 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만 갇혀 있으니 답답해하며 짜증도 많이 냈다. 아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고 돌보는 내가 미칠 지경이었다. 아내가 자야 하니 애들에게 TV를 보여 줬다.
시간이 지나 내가 야간 근무하러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다. 5시간 정도 자고 난 아내는 여전히 피곤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다크서클이 코앞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내에게 애를 맡기고 출근한 난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조용히 근무를 마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아내를 대신해 애들을 돌봤다. 피곤했지만 이젠 아내가 잘 시간이었다. 아내가 자고 일어나는 오후 3~4시쯤이면 다시 아내와 교대 후 내가 자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추석 연휴 내내 아내와 나는 하루씩 번갈아가며 야간 불침번을 서듯 아이 둘을 돌봤고 연휴 기간 내내 애들은 헤르판지나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열이 떨어지질 않았다.
연휴가 끝나고 나서도 완치가 되지 않아 학교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애들은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다행히 아픈 지 4일이 지나자 서서히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해열제는 최대 용량까지 먹어야 했다. 정확하게 아픈 지 1주일이 넘어가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 우리 부부는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둘이 번갈아가며 밤을 지새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 곤히 자는 애들 옆에서 수시로 깨어나 체온을 체크하고 약을 먹이다 보면 다시 잠은 달아나 버렸고 선잠이 들었다 깨었다가 반복되었다. 두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지독한 1주일이었다.
헤르판지나 바이러스가 뭐라고 참 이상한 바이러스에 된통 걸렸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우리 가족은 코로나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이건 뭐 코로나에 버금가는 대단한 바이러스였다. 괜히 내가 파주에 놀러 가자고 해서 아이들이 이 바이러스에 걸렸나 자책하기도 했다. 아마도 한동안 파주 하면 임진각보다는 이 바이러스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당분간 파주는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