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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09. 2022

애마(愛馬) 변천사(變遷史)

2004. 3. ~ 2022. 7.

2004년 3월 처음으로 차를 샀다. 누비라 99년식으로 60,000km를 탄 중고차였다. 당시 난 C0 제약사업부에 입사한 후였다. 광주 사무실에서 순천, 광양 쪽이 내가 맡은 지역이라서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차를 사야 했다. 첫 차여서 그런지 아직도 하얀색 차의 모습이 생각난다.   

   

하지만 내 운전 실력이 꽝이라 주차하면서 기둥에 부딪히고 벽에 긁혀 운전석과 조수석 앞, 뒤 문을 3번 정도는 교체한 것 같다. 앞뒤 범퍼 교체는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차의 외관 정비만 한 게 아니라 전반적인 차량 정비도 배울 수 있었다. 오토미션 교체, 타이밍 벨트 교환은 기본에 써모스탯, 냉각수 관련 수리 등 60,000km를 타며 할 수 있는 모든 정비 경험을 다 해봤다.      


고속도로 진입 전 요금소 앞에서 차 보닛에서 흰 연기가 나며 앞으로 가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난 해봤다. 2~3km만 더 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도 난 사고가 나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요금소 진입 전 차에서 흰 연기가 나더니 멈춰 버렸다. 차 안의 냉각수 온도는 H에 닿아 있었다. 차가 멈추자 그제야 그 온도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요금소 직원의 도움으로 견인차를 부를 수 있었고 무사히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원인은 호스에 구멍이 생겨 냉각수가 흘러 나왔고 결국엔 냉각수 부족으로 차가 멈춘 것이었다. 계기판에 냉각수 온도계가 있는데 그것도 볼 줄 몰랐다. 그땐 차는 일하는데 필요한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게다가 영업 관련 거래처를 방문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주차 위반 장소에 차를 멈추고 잠시 일을 하다가 견인당하는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일을 마치고 주차해 놓은 장소에 왔을 때 차는 보이지 않고 덩그러니 주차 위반 딱지가 그 자리에 붙어 있을 때면 허탈함을 느겼다. 속도위반 과태료에 주차 위반 범칙금까지 합하면 아마도 1년에 100만원은 내지 않았나 싶다. 그 땐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했지, 차 범칙금 따위야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누비라를 탔던 2년동안 다섯 차례의 사고 중 세 번의 가해자가 되기도, 두 번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 초년생이 여기저기 맨땅에 헤딩하며 일을 하는 사이 내 첫 차인 누비라는 나 대신 여기저기 다쳐가며 나를 지켜주었다.      


국내 대기업에서 외국계인 B회사로 옮긴 후에는 2년동안 몰고 다닌 누비라의 상태가 나빠져 다시 중고차 매매 시장엘 가게 됐다. 차를 잘 아시는 아내의 외삼촌 덕에 좋은 중개인을 만났고 그곳에서 나와 만 14년을 같이 보냈던 범피울리(아들이 지어준 뉴스포티지 애칭, 아이들 만화에서 따옴, 제목에 있는 차 사진)를 만났다. 이제 막 31살인 내게는 과분한 차였다. 일단 준중형 세단에서 중형 SUV를 몰게되니 차 시야도 다르고 모든 면이 낯설었다. 연료도 휘발유에서 경유로 바뀌었고 제조사가 대우자동차에서 기아자동차로 바뀌니 와이퍼 스위치 작동법도 반대였다.      


파란 색 범피울리를 타며 두 곳의 제약회사를 더 거쳤고 소방관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실업자일 때도, 공시생일 때도, 간단하게 택배 일을 할 때도 모두 이 차와 함께했다. 그동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내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난폭운전은 할 수 없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운전습관도 변했다. 30대 초반만 해도 120km 속도는 우스웠는데 이젠 110km 이상의 속도는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비가 나빠지기 때문이다(실은 돈보다는 아내가 무서워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규정속도로만 운전합니다).     


내가 범피울리를 살 때는 주행거리 약 20,000km에 나온 지 1년 된 따끈따끈한 중고차였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19년, 범피울리는 160,000km의 주행거리에 꽤나 신경써서 관리를 받은 차였다. 그런데 2019년 1월, 차량 검사를 받을 때 매연이 심해 불합격했다. 1달안에 수리 후 재검사에 합격해야만 운행할 수 있었다. 수리비는 3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가 드는데 그 과정도 웃겼다. 일단 부품 1 교환 후 매연 검사 → 부품 2 교환 → 검사 → 부품 3 교환 → 검사 이런 식으로 수리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런데 부품을 모두 갈아도 재검사 시 불합격할 수 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참 무책임한 말이었다. 정말 엔진과 차체 모두 멀쩡했는데 EURO 3에서 EURO 6로 배기가스 규제가 심해지다 보니 더 이상 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되었다.     

 

완벽하게 고칠 가능성이 불확실하지만 수리를 해볼까 아니면 이번 기회에 조기 폐차 지원금(최대 수리비와 같은 150만원 지원)을 받고 세금 지원까지 받아 새 차를 살까 망설였다. 아내와 2주 가까이 고민했다. 결국 이번 기회에 차를 사기로 방향이 정해졌다. 경유차를 몰다가 배기 가스 규제로 조기 폐차를 하게 됐으니 휘발유 SUV를 사고 싶었다. 대우차, 기아차를 타봤으니 이젠 다른 제조사의 차를 타고 싶었다.    

  

이젠 중고차냐 새 차를 사느냐의 결정이 남아 있었다. 누비라, 스포티지 모두 중고차 시장에서 입양한 아이들어서 이번만큼은 남이 타지 않았던 새 차를 운전하고 싶었다. 아내를 설득해 집 근처 르노대리점에 갔고 거기서 지금의 맥스(큰 아들이 지은 애칭입니다)를 만났다. 15년만의 신차라 모든 게 좋았다. 범피울리와는 달리 큼지막한 액정이 달려 있어 운전하면서도 마치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맥스도 여러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CVT 미션이라 간혹 미션에서 말썽을 일으킨다는 글을 인터넷 동호회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나 역시 그 문제에 당첨이 되었다. 운전 중 간혹 RPM 3천까지 널뛰기할 때도 있었고 주행중에 오토미션 점검을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나올 때도 있었다. 다행히 재제조품으로 교체를 받아 지금은 새 차가 되었다. 맥스와 함께한 3년 6개월동안 오토미션 교체 외 간단한 보증수리를 3건 정도 더 받았다. 수리가 잘 되어 아무렇지도 않지만 새 차를 사며 좋았던 것은 딱 1년 뿐이었다. 1년이 지나니 이래저래 차는 그저 이동수단이라는 생각이 맘속에 자리잡았다.      


그래도 맥스가 있어서 여름 휴가 때면 거제로, 포천과 가평으로, 담양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쩌다 한 번씩 예전 범피울리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일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맥스가 새차여서 좋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작은 아이가 어제 차를 타며 한 말이다. “맥스야, 이젠 별 문제 없이 수리 그만 받고 우리랑 잘 지내보자.” 어느 새 우리 발이 된 맥스야, 앞으로 10년은 더 부탁한다. 아프지 말고 잘 달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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