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 말 벼르고 벼르던 상경 휴가(7월 말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휴가 이틀 전 갑작스러운 북한의 도발로 휴가가 취소되었습니다. 근 1년 만의 휴가여서 만날 사람, 장소 등 모든 계획이 짜여 있었지만 허무하게도 한 달가량을 더 근무한 뒤에야 다시 휴가를 나갈 수 있었습니다. 군인에게 휴가가 잘린다는 것은 안 당해본 사람은 그 절망감을 절대 모를 겁니다. 제가 휴가를 잘린 뒤로 꽤 예민해져 같이 근무한 후임들이 제 눈치를 보느라 고생했습니다, 원래 기간은 14박 15일인데 섬에서 근무한다고 4박 5일이 더 붙은 총 19박 20일의 아름다운 휴가였습니다)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왜 꼭 중요한 일은 제가 없을 때 일어나는 걸까요? 한참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1999년엔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시기였지만 도심인데도 통화가 되지 않는 음영지역 역시 많았던 이상한 시기였습니다. 핸드폰으로 통화하다 끊기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느낌이 싸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누나에게 들어보니 부대(경찰이지만 부대로 통칭)에서 전화가 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서 제 소속인 제주해경 제주지서에 전화를 했습니다.
후배 : 감사합니다. 제주지서 상경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 : 어, 잘 지냈어? 별일 없냐?
후배 : 아, 00님, 잘 지내십니까? 00님, 이번에 3002함으로 발령 났습니다.
나 : 어, 뭐라고?? 갑자기 왜? 나 지금 휴가 중인데, 여기서 우리 집으로 전화한 거 아냐?
후배 : 어, 저희는 전화 안 했지 말입니다(군대에선 말끝에 ~요가 붙으면 군기가 빠졌다고 엄청 혼났습니다, 꼭 말 끝은 다, 나, 까로 끝나야 했습니다), 아마 새로 발령받은 3002함에서 전화한 게 아닐까요?
나 : ....(인사발령 소식에 잠시 어질어질) 그래, 알았다, 고생해라
제 속마음은 이랬습니다. "하필이면 19박 20일의 휴가 중에 발령 날 게 뭐람? 아이, 짜증 나." 당시 해양경찰 의무경찰의 근무 순서는 보통 다음과 같았습니다. 해군훈련소(진해) 8주 및 후반기 교육(부평 중앙경찰학교) 6주(?) 정도 → 함정 근무(6달~1년) → 육상 근무(신고소에서 어선 관리 또는 통신 관련 수신소 근무 또는 해양경찰서에서 일반 경찰들 업무 보조로 6달~1년) → 다시 함정 근무(제대할 때까지 남은 기간, 보통 6개월 이상)로 나뉘었습니다. 다만 경우에 따라 육상근무만 하다 제대한 선임도, 함정에만 계속 근무했던 선임도 드물게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저 역시 곧 육상으로 발령 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하필 휴가 중이라니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휴가였습니다. 1999년 제주에는 제주해양경찰서 한 곳뿐이었습니다(지금은 제주와 서귀포 해경 두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배 중 제일 크고 좋은 배로 발령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신조 배(새로 만든 배라는 뜻, 당시는 그렇게 불렀습니다)여서 제주에서 같이 군생활하던 선임들이 아닌 강원도와 전라도 쪽에서 전입된 사람들 위주의 구성이라는 사실과 기수별로 인원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수경(병장과 동급인 의무경찰 계급)이어도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익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쪽으로 발령이 나다니요!!! 발령 있기 한 달 전쯤에도 3002함 근처에 있는 어선으로 선원 검문을 갔다가 처음 보는 3002함 선임들에게 제대로 경례를 하지 않았다며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는 꾸지람을 듣기도 했던 곳이라 더욱 꺼려졌습니다. 제주해경의 많고 많은 배 중에 하필 3002함이라니... 그곳으로의 발령 후 몇 달간은 텃세 아닌 텃세 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진짜로 병장 달고 화장실 청소에, 거지 같은 선임들 뒷바라지까지 별의별 아름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주해양경찰서 3002함
같이 훈련했던 순시함과 비슷한 사진(일본 해상보안청)
3002함 발령 일화는 여기서 줄이고 본 내용인 일본 해상보안청과의 합동 훈련 얘기로 돌아갑니다. 3002함은 1998년에 건조된 당시 해양경찰청의 가장 크고 좋은 배여서 여기저기 행사에 많이 불려 다녔습니다(물론 제주 바다를 지키는 일 역시 빼먹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2주 동안 보급 없이 바다에 떠 있다가 부식거리가 다 떨어진 채 간장에다 밥을 비벼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1999년 가을(아마 10월 말로 추정됩니다, 한일 합동 훈련), 부산 한국해양대학교 앞 부두에 정박했고 3박 4일의 훈련기간 중 이틀 동안 우리 배(3002함) 옆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함이 계류했습니다) 훈련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훈련 당일, 높은 곳의 어르신들(아마 국회의원, 각종 관련 단체장 등 기타 귀빈들)이 우리 배(3002함)에 올라 훈련 참관을 했고 일본 순시함과 우리 배 등 배 10척 정도가 바다에 나가 소화훈련(바닷물을 끌어올려 불이 난 다른 배로 뿌리는 훈련) 등을 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저녁에는 한일 화합대회가 우리 배에서 열렸지만 의무경찰인 우리는 대기실에서 대기하라는 명령 때문에 행사장에 나가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야 했습니다, 다만 의경이 아닌 일반 경찰들은 일본 해상보안청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교류했었습니다(저희는 그런 행사를 치를 때면 행사 준비, 뒷정리, 바닥 왁스 청소 등 궂은 일은 전부 도맡아 했지만 정작 있어 보이는 일들은 우리 몫이 아니었습니다).
훈련 당일, 저녁에 있었던 한일 교류를 마치고 다음 날 오전 우리 배 옆에 계류한 일본 배를 구경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흔한 기회가 아니었습니다. 의무경찰인 우리도 항해, 갑판, 기관 등 각자 맡은 보직이 있어 일본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궁금해하는 차에 잘 됐다 싶었습니다. 일본 순시함에 오르니 한국어가 가능한 하라상이라는 분이 저를 포함한 의무경찰 20여 명을 배의 구석구석으로 잘 안내해 줬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건조된 지 10년이 지난 일본 배의 기관실이 우리 3002함과는 달리 상당히 조용했다는 점입니다. 하라상에게 "너희 배 정말 조용하다, 이거 엔진도 일본에서 만든 걸 썼냐?" 물었더니 일본 제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하라상과 기관실에 근무하던 일본 해상보안청 직원의 모습에서 자국 조선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만든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3002함의 기관실은 헤드폰(귀 보호를 위해 차음 헤드폰을 써야 했습니다) 없이는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3002함의 엔진은 MAN B&W 16V 28/32A (5330hp) 2기였지만 기술이 나쁜 건지, 엔진을 뺀 나머지 부품들과의 조합이 나빴던 것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꽤나 시끄럽고 잔고장도 많았습니다. 지금 검색을 해보니 3002함의 건조 가격이 251억으로 나오는데 과연 그 돈이 전부 배를 만드는 데 쓰였는지는 의문점이 드는 계기였습니다. 다른 예로는 당시 대기실마다 쇠로 된 네모난 재떨이가 있었는데 그 재떨이 하나의 가격이 5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어서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에는 3002함을 타며 겪었던 여러 일들(불법조업 중인 중국 어선 탑승, 어선 예인 등)에 대해 써볼 예정입니다. 다음 편을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