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 바빠요!
1월 말 충북 음성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화재규모가 커서 대응 2단계 발령이 났고 인근 관서 차량이 출동했습니다. 출동대원들은 실종된 공장 근로자 2명의 행방을 찾고 있었고 화재로 인해 주변의 야산으로 불이 번지지 않도록 열심히 진화작업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일하는 관서에서는 충북으로 지원출동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충북 음성에서 가까운 경기도 관서에서 지원출동을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도미노 효과라고 해야 할까요? 관내에 차가 출동하니 근처에서 지원을 나오고 다시 빈 곳의 인근 관서에서 지원 출동을 하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저녁 8시가 되지 않았을 시간, 원래는 저녁 운동을 해야하지만 그날따라 몸이 좋지 않아 저녁운동(보통 점심을 빨리 먹고 점심시간에는 근력운동을 하고 저녁 8시부터 1시간가량 복싱 새도우 훈련이나 줄넘기를 합니다)을 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부러 샤워를 일찍 마치고 땀내 나는 옷도 빨았습니다. 편하게 커피 한잔을 마실 무렵, 갑자기 출동벨이 울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느긋한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조연(조명+배연) 차량과 굴절사다리차는 출동빈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귀를 쫑긋 세우고 지령 컴퓨터(출동 방송이 나오면서 사무실 컴퓨터에 화재 위치와 출동 차량이 표시됩니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아이고, 이번은 제 차례로 인근 지역의 공장화재 출동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이미 출동한 차량이 20대나 넘게 있었습니다. 이번 화재출동에서 제 역할은 화재가 일어난 공장 10여 미터 뒤에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불이 나면 주위가 밝아지기도 하고 랜턴으로 앞을 비추며 일하지만 아무래도 차량에서 내리쬐는 조명만한 게 없습니다(야구장 조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후 지휘관에게 차량 배치할 곳을 물어본 뒤 장애물을 피해 차량 양 옆을 아우트리거로 지지했습니다. 그 후 전선을 피해 조명대를 위로 높이 올리고 불이 난 곳으로 조명 위치를 조절합니다. 말로 하면 쉬워 보이지만 현장에서 하는 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조연차에는 경유로 돌아가는 6~700kg 정도 무게의 발전기가 있어서 주변에 전기를 공급하거나 조명에 필요한 전기를 충분히 감당합니다. 저는 직접 화재현장에서 불과 마주하는 진압대원과는 달리 이 차량의 전반적인 관리와 조작, 운전만 하면 됩니다. 공기호흡기를 메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진압대원보다 몸은 편하지만 대신 추위와 싸워야 합니다. 화재 현장 주변에는 얼어붙은 소방용수로 인해 길이 미끄러웠고 수시로 주변을 체크하는 안전관(현장에서 안전을 담당)이나 지휘관, 진압대원, 경찰(화재현장에 동시 출동해서 주로 인원 통제 및 초동 조사 담당)이 돌아다녔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일하는데 혼자만 차 안으로 들어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8시쯤 출동 후 자정이 다 되는 시간까지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며 차량 관리(발전기 이상 여부, 경유 소모량 체크, 차량 이상 소음 확인, 조명붐대나 아우트리거 이상 여부 확인 글로 쓰면 많지만 막상 1~2분이면 끝납니다)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추위와 싸우며 속으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영하 7~8도의 날씨라 가만히 서 있으면 손발이 시리고 몸도 떨렸습니다. 추위를 참으려고 핫팩의 도움을 받았지만 추울 때마다 이를 악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 화재가 거의 진압되어 잔불정리만 남을 때였습니다. 그때쯤이면 지휘관은 최소로 필요한 인원과 차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차량과 인원의 철수를 지시합니다. 아울러 남은 인원을 교대로 편성해 돌아가며 쉬게 하고 잔불정리를 마무리합니다. 마침 의용소방대 10여 명이 지원출동을 나오셔서 주변 인원 통제와 간식 준비를 해주셨습니다(간식은 보통 빵이나 컵라면, 물, 커피가 전부지만 화재현장에서 먹을 땐 정말 꿀맛입니다). 컵라면을 먹고 나니 몸도 지치고 나른해져 결국 차 안으로 들어가 대기했습니다(제가 맡은 조연차는 출동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이든 불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밝은 곳에서 안전하게 진화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따뜻한 차 안에 있으니 꽁꽁 언 손발이 스르르 녹았습니다. 20분 앉았다가 다시 내려 차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얼른 차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차 안에 있다 밖으로 나오니 더 추웠습니다(그날 컨디션이 나쁜 탓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시간 반쯤 작업을 더 진행한 뒤 드디어 지휘관의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지휘관은 절 보며 "00 조연, 수고했어"라고 말씀하셨고 저 역시 "수고하셨습니다"로 화답하며 철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방서로 복귀해 뒷정리를 하고 샤워를 마친 뒤 세탁한 옷을 입었습니다(화재 출동 시엔 엄청난 매연이 발생하니 복귀한 후 꼭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매연을 나와 동료가 들이마시게 됩니다).
다음 근무날이었습니다. 전 근무 날 출동했으니 별일 없겠지라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새벽 5시 40분쯤 또 조연차량 출동 방송이 들렸습니다. 이번에는 00 대학교 지하에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오잉? 학교에서 웬 불? 30km 정도의 거리를 운전해 화재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대학교 한 건물의 지하에서 새카만 연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출동했으니 일을 해야지요. 해가 뜰 때까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나오는 곳을 향해 조연차의 조명을 환하게 비췄습니다. 날이 밝은 뒤에는 화재 현장에서 대기하다 근무시간이 지나 다음 근무팀이 화재현장까지 와서 교대하는 현장교대를 했습니다. 교대를 마치고 소방서로 복귀하니 10시 반이 다 된 시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 연속으로 이어진 조연차 화재출동은 끝이 났습니다. 그 뒤 여러 화재 출동이 있었지만 다행히 제 근무날은 아니었습니다. 글로만 읽으니 심심하시죠? 사진 몇 장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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