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교육받으러 왔어요
소방관의 계급순서입니다. 소방사(9급)→소방교(8급)→소방장(7급)→소방위(6급 을, 센터의 팀장)→소방경(6급 갑, 소방서 각 과의 팀장 또는 센터장)→소방령(5급, 소방서 과장)→소방정(4급, 소방서장). 입사한지 15년하고 한 달이 지나서 작년에 소방위가 됐습니다. 동기들과 같은 속도로 진급을 해서 늦게 진급한 편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빨리 진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정년까지 무사히 소방관 생활을 하는 게 목표인 사람이라 진급은 마음속에서 내려놓은 지 오래입니다. 제가 입사할 때는 소방위 계급이면 간부공무원으로 대접받는 위치였습니다. 당시 소방위 팀장님 한 마디면 막내인 저는 설설 기어야 했었죠. 그러나 점차 승진속도가 빨라지고 승진 자리도 늘어남에 따라 소방위, 소방경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치이는) 조직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계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소방위는 대략 10년 이상의 근무년수를 가진 소방관이 대부분이며 내근에서 팀장 다음의 순서로 팀별 업무를 주관하고 외근에서는 팀장 또는 팀장 밑의 위치에서 행정업무와 현장 출동업무를 담당합니다. 이를테면 후배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거나 좋게 포장해 팀장님께 얘기하는 것도 주업무 중 하나입니다.
몇 해전부터 소방위 기본교육이라는 게 생겨 새로 승진한 소방위들은 2박 3일간 소방학교에 들어와서 여러 과목을 배우는 게 의무화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에 소방학교에 들어와 교육을 받게 됐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기도 인사운영에 대해 2. 소방관의 리더십 3. 생성형 AI 사용 및 활용방안 4. 화재읽기 및 인형의 집 관찰(미로 탈출 체험) 5. 현장안전관리 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인상깊었던 여러 내용을 소개합니다.
1. 경기도 인사운영에 대해
실제 경기도 조직팀장으로 일했던 분이 오셔서 그동안 이뤄졌던 인사운영에 대한 뒷얘기들과 배경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셔서 그동안 결과로만 알고 지냈던 일들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소방의 인사권과 예산권이 모두 경기도에 속해있기 때문에 소방관 증원을 위해서는 도 의회의 승인과 도청과 소방 본부에서의 증원을 위한 노력, 도지사의 결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들을 한데 버무려 인사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들어도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주는 명강의를 들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모두 특정인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 이야기라서 여기에 쓸 수 없습니다. 암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2. 생성형 AI 사용 및 활용방안
이야, 이건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AI는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으로 변환시켜주는 것만 봤었는데 강사님이 직접 보여주는 시연에 입을 쩍 벌리고 감탄만 했습니다. 예를 들면 클로드라는 AI에서 "1박 2일 팀 야유회를 제주도로 갑니다. 팀원은 6명이고 인당 경비는 60만원입니다. 팀장님은 해물을 싫어하고 다들 고기를 좋아합니다. 시각적인 자료를 써서 여행계획을 짜주세요" 이렇게 했더니 5분도 되지 않아각종 아이콘을 활용한 여행계획표가 떡하니 나왔습니다.
또다른 예로는 화재사고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대처방안이나 기타 관련 자료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하면 보고서 초안 작성하는데 빨라야 2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그러나 구글 제미나이 안에 포함된 노트북LM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자 보고서 초안, 대처방안, 파워포인트를 포함한 여러 시각화 자료들이 약 10분도 되지 않아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그 결과에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만 할 뿐이었습니다.
강사님 曰 "AI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최종본이 아닙니다. 그냥 보고서의 초안일 뿐입니다. 그래도 보고서 작성할 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AI는 단 5분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찾을 때 8~90년대에는 도서관을 갔다면 지금까지는 인터넷을 이용했습니다. 이젠 AI를 이용하면 한 사람이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일한다고 야근하거나 날을 새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지금 이걸 삼성, 포스코 등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대기업에 다니며 신입사원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AI를 활용해 은퇴 후 제 2의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꾼 AI를 경험해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수업이었습니다.
3. 화재 읽기 및 인형의 집 관찰
2년 전에 배웠던 실물화재 연습과 거의 내용은 비슷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머릿속에서 흐려졌던 걸 되새겨주는 강의시간이었습니다. 화재가 나면 건물(Building)과 주변 환경(Environment)은 이미 주어진 것이라 소방관인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연기(Smoke), 공기(Air), 열(Heat), 불꽃(Flame)은 제어할 수 있는 변수니 이걸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불을 끄는데 활용해야 한다라는 강의였습니다. 복싱으로 말하자면 무식하게 힘이나 기술만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 몸, 마음, 경기장 상태, 상대방의 기술 분석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고민하는 수업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몸으로 뛰는 체험이 있었으니 소위 미로 체험이라 부르는 고층건축물 화재 세트에서 정해진 미로를 뚫고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3명이 한 조를 이루어 들어갔습니다. 신임 소방공무원 교육처럼 화재를 가정한 열이나 연기도 없었고 앞을 가려 시각이 막혀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방화복 풀세트에다 공기호흡기까지 장착하니 절로 긴장되며 호흡이 살짝 가빠졌습니다. 훈련은 훈련이니까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고 장애물을 통과하고 좁은 곳을 들어가기 위해 잘 메고 있던 공기호흡기를 풀어서 밀고 들어가고 마지막에는 1.2m 정도의 장애물을 넘어서 10분정도의 체험은 끝이 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옷이 흠뻑 젖었고 메고 있던 공기호흡기의 공기양도 꽤나 줄어들었습니다. 몸이 힘들어지니 그제야 15년 전 이곳에서 신임 소방관 훈련을 받던 기억이 새록새록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2박 3일 교육 중 이틀째로 저녁 식사 후 여유를 즐기며 브런치 글을 쓰고 있습니다(어제 운동을 무리하게 했더니 뒤꿈치 통증이 도져서 오늘은 편히 쉬고 있습니다). 몇 년만에 다시 온 학교는 많이 변했습니다. 새로운 체력단련실이 생겼고 매점도 예전 식당으로 위치를 옮겼습니다. 새로운 장비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15년동안 제가 변한만큼 이 곳도 변했을까요? 아님 제가 더 많이 변했을까요? 그래도 정년퇴직할 때까지 무사히 지내자라는 다짐은 변함없습니다. 아울러 그 때까지 제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일한다는 생각도 여전합니다. "선배라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자, 후배들이 배울 수 있는 선배가 되자" 오늘의 리더십 강의시간에 들었던 내용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겠습니다.
Postscript
며칠 전 전남 완도의 냉동창고 화재진압 중 순직하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