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1996. 2월 카페 비벌리힐스

by 거칠마루

95년 11월 수능을 치르고 엄청난 자유가 찾아왔다. 이젠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1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험 치르기 전에는 쉬는 시간 10분도 아까워 화장실만 얼른 갔다가 책을 봤었다. 그렇게 애썼지만 실제 수능에선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지원하진 못했다. 그래도 시험이 끝나니 홀가분했다. 아버지는 버릇처럼 “우리 집에서 재수는 없다. 수능 끝나고 대학 못 가면 바로 공장 가서 일해라” 말씀하셨다. 별 수 없이 집 근처에 있는 00 대학교에 지원했다. 광주에선 나처럼 서울 갈 실력이 안되거나 집이 가난해서 서울서 공부할 형편이 되지 않는 경우엔 대부분 차선책으로 국립대학인 00 대학교를 갔었다. 다행히 원하는 과를 골라갈 수 있었다. 법학과나 사회학과는 딱딱한 이미지가 싫어서 영문과나 경영학과 중 그냥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수능이 끝난 95년 11월부터 대학에 입학하는 96년 3월까지는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늘 학교에 매어 있다가 4교시만 끝나고 집에 들어가려니 어색했다. 노는 것도, 만화를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반복되니 지겨웠다. 대학 다니면 필요할 것 같아 컴퓨터 학원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배웠지만 금세 시들해져서 1달 다니고 그쳤다. 영어공부를 하러 아침 6시 30분부터 학원을 다녔어도 오전 9시 전에 끝나니 심심한 건 여전했다. 무언가 할 일이 필요했다.


공부만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봤다. 그 당시만 해도 시내 카페 같은 곳은 의외로 아르바이트 공고를 내기보다는 카페 창문에 직접 구인공고를 내곤 했었다. 어차피 시간은 남아도니 광주 시내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오후, 도청 앞 전일빌딩 쪽을 뒤져보기로 했다. 주말에 공부하러 자주 가던 독서실이 있던 곳이라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 근처엔 각종 학원과 사무실, 은행, 증권사 지점이 있어 서비스업인 카페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벌리힐스 영어 필기체.JPG

1~2시간 남짓 여기저기 카페라고 생긴 곳을 무작정 방문했다. 몇 군데나 카페 문을 두드렸을까? 20년도 더 지난 옛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영어 필기체로 표기된 “Beverly Heels “란 카페를 보게 됐다. 2층짜리 건물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건물로 간판 역시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비벌리힐스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따뜻하고 세련된 느낌이 드는 외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조심히 물어봤다. ”혹시 아르바이트 구하세요? “ 바로 "구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일하고 마감 청소까지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시급은 1500 원이며 한 달 동안 쉬는 날은 없다. 월급은 약 30만 원 정도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곳은 30대 사장님과 여동생이 운영하는 곳으로 서빙 인원 3명, 주방 인원 2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오후 5시부터 일하지만 저녁밥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일하기 전에 집에서 밥을 먹고 오거나 그냥 금식해야 했었다. 직원 복지는 꽝인 곳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손님이 오면 메뉴판을 건네고 주문을 받기, 컵과 따뜻한 물 드리기, 주문한 음료 및 간식(새우깡) 제공, 간혹 테이블마다 설탕이나 프림 채우기, 재떨이 치우기였다. 다만 쟁반에 컵과 음료를 여러 개 들고 다니는 일이 처음이라 실수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같이 일하는 형, 누나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형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을 때도 있었다.


그 카페에서 지배인처럼 일하는 5살 위의 형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던 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형은 동료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본인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그 사람을 따로 불러다 이것저것 야단을 치는 사람이었다. 그리 잘못한 것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며 꾸중을 했었다. 5~10분 정도 야단을 치고 나면 본인은 잠시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온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야단맞은 사람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도 본인은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해서 같이 일하던 누나들은 그 형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른 상태라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그 형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나 역시 멀리할 것 같다.


사장님은 2~3일에 1번씩만 카페에 들렀다. 따로 운영하는 가게가 또 있다고 했다. 바쁜 사장님 대신 사장님의 여동생이 주방에서 일을 했는데 그 누나의 성격도 만만치 않았다. 손님이 없어 한가하거나 가끔 잘못해서 컵이나 집기가 깨질 때면 화를 많이 냈었다. 너희들 월급에서 빼야 하는데 우리라서 그냥 넘어간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리 듣기 좋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딱 1달만 채우고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아직까지 인상 깊었던 손님이 있다. 아르바이트 시작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난 주로 2층에서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서빙했다. 2명의 남자분이 2층으로 올라와 테이블에 앉았다. 아마도 커피와 사이다 주문이었을 텐데, 특이하게 그 카페에선 탄산음료는 꼭 병으로 제품을 가져다준 후 손님 앞에서 병뚜껑을 따서 손님이 직접 따라 마시게 했다. 왜 그런 지는 모르겠다. 음료병이 세로로 긴 편이라 쟁반에 든 채로 움직이다 보면 일반 컵처럼 고정되지 않고 흔들릴 때가 많았다. 탄산음료를 테이블로 내려놓다 실수로 인해 음료병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때 다른 음료로 바꿔 드렸어야 했는데 당황한 나머지 떨어진 음료를 주워서 테이블로 올린 후 병뚜껑을 열어버렸다. 테이블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라 탄산음료가 콸콸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냅킨과 행주로 테이블을 닦았다. 그나마 다행인지 테이블만 적셨을 뿐 손님의 옷이나 소지품에는 튀지 않았다. 정신없이 테이블을 닦던 내게 손님은 아르바이트 처음 하나 봐요 물으며 괜찮으니 천천히 닦으라고 말했다. 자신도 아르바이트 처음 할 때 실수 많이 해서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얘길 해주는데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그 손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다 했다. 간식(새우깡)과 물은 떨어질 때마다 계속 리필했다. 그 손님의 따뜻한 한마디 말 때문에 어딜 가서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 당시만 해도 카페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러다 보니 담배를 놓고 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호기심에 담배를 몰래 피워보기도 했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이 빨아 들었다 바로 껐다. 아무 맛도 없는 이상한 연기에다, 쓴 맛만 가득했다. 얼른 입을 헹궜다. 그리고 담배를 절대 피우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물론 그 맹세는 6개월 뒤에 무너졌다.


아. 하마터면 아르바이트 1달도 못 채우고 액션 활극을 펼칠 뻔한 일이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한참 바쁠 때였다. 20대 초반 남자 3명이 2층 테이블로 올라왔다. 그날따라 2층 테이블이 모두 꽉 찬 상태였다. 안 그래도 바쁜데 그 일행은 하필이면 손이 많이 가는 음식 메뉴를 주문했다. 일반 음료 주문과는 달리 식사 주문은 해야 할 일이 3배 정도 늘어난다. 일단 밑에 종이로 된 덮개와 수저를 세팅해야 하고 음식을 담은 식기를 여러 번 날라야 했다. 그날따라 유독 내가 담당한 2층으로 사람들이 몰려 1층에서 일하는 누나에게 조금만 도와줘라고 SOS를 보내기도 했었다. 식사를 주문받고 나서 이것저것 식사 준비 세팅을 했다. 히터를 틀어서 2층은 더운 편이었다. 바쁜데 덥기까지 하니 이마에 땀이 맺혔고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런데 식사를 주문한 일행은 내가 인상 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남자 일행 : 왜 인상을 써요?

나 : 아니에요, 더워서 그런 겁니다.

남자 일행 : 왜 바쁜데 말 시켜서 기분 나빠요?

나 : 아무 말 않음(상대가 괜히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기분이 언짢아서 짜증을 푸나 싶었지만 나 역시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곧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상대는 3명이고 난 1명, 그렇다고 맞아줄 순 없었다. 일단 1명만 박살내기로 했다. 슬쩍 물컵을 집었다.)


갑자기 천사가 찾아왔다.

1층 누나 : 00 야, 1층 내려가 있어, 누나가 할 테니까 내려가, 어서

나 : (물컵을 내려놓으며) 네

내가 1층으로 내려가니 팽팽했던 긴장이 슬그머니 사라졌고 같이 일하던 누나는 아무 일 없듯이 남자 일행의 식사 준비를 마쳤다. 1시간쯤 지나 그 남자 일행이 사라지고 난 뒤 누나에 고맙다고 말했다.

나 : 누나, 아까 어떻게 알고 그때 왔어요? 타이밍 아주 끝내줌

누나 : 아까부터 네가 도와달라고 말했잖아, 2층에서 식사 주문하길래 도와줘야겠다 싶어 올라갔는데 곧 싸움 날 분위기에 넌 또 물컵을 집더라, 그래서 얼른 끼어들었지.

나 : 덕분에 안 싸우게 됐어요, 고마워요.


때마침 같이 일하던 누나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도, 상대 일행도 크게 다칠 뻔했다. 그땐 무슨 객기였는지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그러지 못했다. 같은 또래에게 서빙한다는 게 의외로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내가 이 카페를 그만둘 수 있는 월급날이 되었다. 부모님은 힘들더라도 1달은 채워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1달을 다 채우기까지 버텼다. 평소와는 달리 사장님의 여동생은 웬일로 일을 마친 나를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호의였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다음 달도 계속해서 일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어쩌나? 난 이미 그곳에서 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에 직원 밥도 챙겨주지 않는 회사, 집기가 깨지면 직원 월급에서 뺀다는 곳에선 일하기 싫었다. 평소에 직원들에게 잘했어야 했다.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볼게요, 집까지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대답을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 후, 10년 정도는 그 카페 근처는 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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