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톤 이상 나르면 퇴근!

식자재 도매상 아르바이트

by 거칠마루

2001년 제대한 지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대한 후 쉬지 않고 일했지만 돈은 모이지 않았다. 당시 시급은 1,500원이었다. 매일 오전 9시 ~ 오후 6시까지 주유소에서 한 달 동안 일해도 55만 원 정도였다. 그 돈으로는 집에 생활비를 주고 영어학원비를 빼면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다음 월급날까지 버텨야 했다. 이왕 일을 할 거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다른 일을 찾으러 생활정보지를 뒤져봤지만 운전가능자라는 조건이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때의 난 운전면허가 없었기에 별수 없이 그런 구인광고는 걸러야 했다. 또한 여러 공장에 입사지원을 했지만 4년제 대학 휴학생은 금방 그만둔다며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시 난 주유소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친구 : 뭐 하냐? 나랑 같이 일하자

나 : 무슨 일인데? 월급은 얼마냐?

친구 : 여기 식자재 도매상, 그냥 밀가루랑 식용유 나르면 된다. 운동도 되고 좋다. 월급은 80만 원이고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야, 어쩔래?

나 : 언제까지 말해주면 될까? 여기 그만두더라도 당장은 안되니까... 3일 뒤인 월요일부터 하는 걸로 하자, 어때?(당시는 토요일에도 일을 했습니다. 주 6일 근무!!)

친구 : 그래, 그럼 사장님한테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한다고 말해놓을게.


일하며 날랐던 물엿, 전분, 고추장, 밀가루

새로 일하게 될 식자재 도매상은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광주광역시 임동에 위치한 00 유통이었다. 그곳에서는 20kg 밀가루, 10kg 설탕, 14kg 고추장과 된장, 18리터 식용유, 25kg 전분, 다시다 같은 조미료, 10kg 물엿 등 식당에서 쓰는 대부분의 식자재를 취급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CJ, 삼양사 등 밀가루, 설탕 제조사 → 도매상 → 식당에 납품하는 식자재 소매상 → 식당으로 이어지는 제품 유통 구조 중 도매상이 내가 일할 곳이었다. 도매상인만큼 하루에 움직이는 물건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보통 식당에 납품하는 소매상들이 8시 30분 정도부터 도매상으로 들어온다. 그들이 요청하는 각종 물품(밀가루, 물엿, 고추장 등 다양함, 보통 소매상 주문 1개에 최소 5~6가지 물건을 주문함)을 매장에서 가져와 소매상의 차량(소매상들은 1톤 트럭이나 스타렉스 같은 승합차를 주로 사용함) 앞에 가져다 놓는 게 내 주된 업무였다. 물론 매장 안의 물건이 동나기 전에 재빠르게 500여 m 거리의 창고에서 물건을 날라다 채우는 것 역시 내 일이었다. 하루 평균 방문하는 소매상의 숫자는 50여 팀 이상이었고 평균 매상은 2천만 원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신라면 30개의 도매가가 1만 원이었으니 꽤 잘 나가는 도매상이었다. 그 결과 내가 하루동안 나르는 물건의 평균 무게 역시 2톤 이상이었다.


24살 한창때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처음엔 55만 원 → 80만 원으로 월급이 올라 좋았지만 막상 일해보니 월급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또 사장님에게 서운한 점도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일을 소개한다.

그곳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식자재의 납품이 이어졌다. 어제는 밀가루 3톤, 오늘은 설탕 5톤, 내일은 고추장과 된장류 100개 반입 등의 순서로 쉴 새 없이 물건이 오고 갔다. 그날은 저녁 6시 넘어 전북에 있는 물엿 거래처에서 납품을 받을 예정이었다. 저녁 7시가 퇴근시간인데 물건을 납품받고 창고에 정리하기까지는 최소한 1시간이 넘게 걸릴 걸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 중 누구도 7시가 되면 퇴근한다는 말을 못 했다. 기다리던 물건은 저녁 6시 20분쯤 도착했고 조금이라도 퇴근시간을 앞당겨 보려고 힘내서 일했지만 정작 끝나는 시간은 저녁 8시 30분이었다. 1시간 30분 초과근무를 했다. 그것도 공짜로. 그걸 문제를 제기해봤자 욕만 먹고 뻔히 돈 못 받을 걸 알기에 맘속으로만 불평할 뿐이었다. 그땐 일이 있으면 시간이 늦더라도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물건 정리가 끝나자 그제야 사장님 曰

“어이(사모님을 부르는 호칭, 당시 사모님이 경리를 하셨다), 여기 짜장면 좀 시키소” 저녁 9시에 먹는 짜장면은 맛있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초과근무는 진짜 싫었다. 더구나 돈도 못 받는 무료봉사는 더더욱 싫었다.


식자재 도매상에서의 일은 어찌 보면 종일 운동하는 것과 막노동의 중간 강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최소 10kg 이상의 물체를 들었다 내렸다 하니 팔, 허리, 다리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보통 메밀국수 식당에 배달갈 때면 한쪽 어깨에 밀가루 20kg 2포씩 메고 3층까지 네댓 번 왕복을 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하루종일 몸을 쓰는 일의 연속이었다.


한창때인 난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금세 배가 고파졌다. 또 아침잠이 많아 아침밥을 거르니 항상 배가 고픈 상태였다. 하지만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백반 그것도 공깃밥 1개가 전부였다. 원래 힘쓰는 일을 하면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여긴 경비를 아낀다며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간식 역시 점심 못지 않았다. 오직 유통기한 지난 라면만, 오후 3~4시에 잠시 짬이 날 때 먹을 수 있었다. 소매상들이 오기 시작하면 막상 라면을 끓여 놓고도 바쁜 탓에 젓가락을 들 시간이 나질 않았다. 반면에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경쟁업체에서는 이곳과 달리 일하는 사람의 수도 많고 밥과 간식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그런데 어쩌랴, 어차피 평생 일할 곳이 아니니 다음에는 꼭 복지가 좋은 대기업 정규직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단점을 세려면 끝도 없었지만 나름 그곳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일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근육통 때문에 2주 정도는 팔, 다리에 파스를 붙여야 했다는데 날마다 300개 이상 팔굽혀펴기를 한 덕분인지 도매상에서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근육통 때문에 파스를 붙이는 일은 없었다. 하루 일하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운동량은 채우고도 남았다. 1달에 1~2번 오래달리기 빼고는 따로 운동하는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00 유통에서 6개월 동안 일하면서 식자재 유통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고 그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잘 녹여내어 C0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식자재 도매상에서 일했던 나만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느낀 거지만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아쉬운 일, 어려운 일, 속상한 일을 겪어봤고 그만큼 사회에 대한 내 경험치를 쌓았다.

그로부터 어언 20년이 지나 글을 쓰기 전 그 00 유통 회사가 있는지 찾아봤다. 예전 위치에서 100여 m 쯤 떨어진 곳에서 아직도 영업 중이었다. 그때 같이 일했던 다른 직원들은 아직까지 남아 있을까? 아직도 그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초과근무를 시키면서도 수당을 주지 않는 게 당연한 곳, 힘든 일을 하는 직원에게 유통기한이 1년 가까이 지난 라면을 간식으로 주는 곳이라는 서운함이 먼저 떠오르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일하면서 느낀 재미보다는 힘들고 짜증날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게는 한때 일했지만 다시 찾아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었나 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편하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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