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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n 22. 2022

악연이란 이런 거야

세상에는 좋은 인연이란 것도 나쁜 인연이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악연을 소개할까 한다. 1989년 6학년 무렵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그 나이만 되어도 남자들 사이에선 자연스레 위계질서가 나뉜다. 누가 싸움을 잘하고 공부를 잘하고 등. 위계질서가 생기는 건 수컷들의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얄팍한 힘으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일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학교를 가던 동생(나랑 남동생은 이란성쌍둥이)이 같은 반 조 00이라는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정말 나쁜 놈이라며 욕을 했다. 나보다 더 신체 조건이 좋았던 동생 얘기로는 조 00이라는 아이가 반에서 싸움 순위로는 5등 안 일거라 했다. 거기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아이가 좀 교활해서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보기엔 별 티가 나지 않게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벌레를 잡아 옷 속으로 몰래 집어넣는다던가, 체육시간처럼 혼잡한 틈을 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 여러 일을 당한다고 했다. 그땐 그러려니 했다. 동생에겐 그저 선생님께 말씀드리거나 아님 그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실제로 싸우면 안 되니까. 그리고는 내 일이 아니니 자연스레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해가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동생을 괴롭혔던 그 나쁜 조 00(당시엔 그 아이에게 각종 동물을 이용해 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못했다.)이 나와 같은 반이 되었다. 키는 반에서 중간 정도인데 운동신경도 좋고 몸이 어찌나 날래던지 자기보다 큰 아이들과 싸워도 절대 밀리지 않는 아이였다. 머리도 좋은 편인데 공부를 싫어했고 자기가 남보다 우위에 있어야 안심하는 스타일 같았다. 그 녀석과 중 1, 중 2, 고 1, 고 2 때 4년 동안 같은 중고등학교에 같은 반이었다. 어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었다. 나 역시 동생처럼 그 녀석에게 당한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렸을 때 교활한 조 00의 성격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떻게 보면 더 발전한 게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이 알지 못하게 교묘하게 괴롭히는데 그냥 쓰지 않겠다. 정말 웃긴 것은 그 녀석은 자기보다 센 아이들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성장기 때 당한 게 있어서인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을 잘 못 견딘다. 


암튼 조 00이라는 아이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지금 말로 일진이었다. 지금 일진들이 하는 모든 행동 역시 일진의 선조 격인 조 00 똑같이 나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에게 했었다. 담배 심부름, 용돈 뜯어내기, 조금씩 돈 빌리고 안 갚기, 신발 빌려 신고 안 주기 여러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 얘기하거나 다른 센 아이를 통해 해결할 때만 돌려주거나 갚는 시늉을 할 뿐 그냥 몇 대 맞더라도 안 빌려주거나 돈 없다고 버티는 게 나았다. 

그 당시 난 작은 키(고 1 때 150cm, 고 2 160cm, 고 3 168cm, 군대 가서 4cm 컸다, 이상하게 남들 클 때 안 컸다)에 몸무게도 겨우 45kg인 반에서 제일 키 작고 볼품없는 아이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 반항하지 않았냐고? 왜 맞서지 않았냐고? 당시 내 느낌을 얘기하자면 이런 비유를 들 수 있겠다. 70kg의 보통 체격인 일반인(나)이 헤비급 복서(조 00)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내 입장에서 거의 그런 느낌이었다. 일단 기세에서도 밀리고 힘, 체격 모든 면에서 나보다 아주 많이 월등한 아이에게 싸움으로는 답이 없었다. 아니면 자고 있을 때 무기를 이용해 공격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럴 경우 정학 이상의 처분을 받고 부모님이 병원비를 물어주시는 등의 아주 시끄러운 일이 발생할 게 뻔했다. 


당시만 해도 난 모범생이었다. 선생님들이 가르쳐 준 길 외에는 인생의 바른 길이 없다, 그래서 그 길을 벗어나는 순간 큰일이 벌어지는 걸로 알았다. 지금 내 모습이라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당시엔 말 잘 들고 공부 잘하는 착한 학생이 되는 것이 내 최선의 목표라서 어른들에게 문제아이로 낙인찍히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집에선 자유방임주의로 아이를 키웠던 아버지와 내게 관심 없는 새어머니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4남매가 있었다. 물론 막냇동생만은 새어머니가 끔찍하게도 챙기셨다. 막내를 뺀 나머지 3남매는 이런 일들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힘이 없어서 당한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고요? 음, 일단 아주 많이 수치스럽습니다. 다음으로는 이렇게 남에게 당하는 나 자신이 싫어지고요, 날 괴롭힌 아이를 맘속으로는 수천번 때려줍니다. 물론 그래도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시 괴롭힘 당하는 나를 바라보는 같은 반 아이들의 눈에는 더러 “약하니까 당하는 게 당연한 거야”, “나도 한 번 놀려 볼까?”라는 눈빛도 있었다. 간혹 “도와주고 싶은데 안쓰럽네, 어쩌지”라는 눈빛도 있었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런 문제는 스스로 헤쳐 나가야지 누굴 의지하면 안 되는 일이기에. 내가 스스로 강해져야 이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학교의 오후 6:45분부터 이어지는 보충수업과 저녁 10시까지의 자율학습보다는 과감하게 수업만 듣고 저녁부터는 어디 도장에 가서 기초체력 훈련 1시간, 그다음 태권도나 복싱을 배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아쉽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닐 1993 ~ 1995년도에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는 서울대 몇 명을 가느냐가 중요한 지표였기 때문에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빠진다는 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콤플렉스, 남에게 당하기만 했던 억울한 마음을 언제 넘어섰더라? 아마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뵐 때 그때가 첫 시작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가도 여전히 난 예전 그대로 젓가락 몸매였다.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만 있지 어떻게 할 줄 몰랐다. 그리고 될 대로 되겠지란 맘도 있었다. 나중에 쓰겠지만 군대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인생이 바뀌었다. 선생님을 뵙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그날 저녁에 고 1 때 같은 반이었던 악연 조 00을 포함해 일진 패거리 4명을 만나니 너도 와서 술 한 잔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내가 왜 힘들게 운동했더라? 왜 새벽 4시에 방파제를 4km씩 뛰었지? 선생님이 그날 만나기로 한 일진 패거리 4명 중 2명은 내가 힘만 셌으면 몇 대 패줬으면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만큼 아이들을 괴롭히던 녀석들이었는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셨다. 담임선생님 앞에서 그 패거리들과 웃고 즐기고 술 마시고 취하고 난 후엔 자연스레 옛날 얘기가 나올 텐데 그럼 어떡하지? 예전처럼 맞고 있지는 않을 테고 그럼 휴가 나와 쌈질해서 헌병대 조사받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사실 조 00과 김 00은 고등학교 시절 저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지지리도 괴롭혔던 애입니다. 제가 그땐 힘이 없어 당했지만 오늘 기분 좋게 만나 술 한 잔 한 이후에 취하게 되면 그 녀석들과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 저녁 모임은 나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의 눈이 커지더니 대번에 “미안하다,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는 정말 몰랐다. 난 그 녀석들이 말썽만 많이 피운다고만 생각했다. 네가 학교 다닐 때 많이 힘들었겠다, 고생했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일진 패거리 그 아이들을 만나면 몇 대 때려주고 싶었다. 예전에 쌓인 그 울분을 현실에서 모조리 돌려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참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는 선생님의 한 마디, 굳이 예전 일을 들춰내지 않고 참았던 일들이 좀 더 날 성숙하게 했고 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지금 그 패거리들을 만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이젠 내가 어느 정도의 전쟁 억지력을 갖췄으니 예전처럼 쉽게 까불지는 못할 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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