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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Sep 24. 2022

차에서 불이 나고 있어요,
얼른 와주세요!

2022. 9월 00시 차량화재

9월 초 어느 날, 평일이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행정업무 하랴, 훈련하랴 나름 바쁘다. 하지만 저녁 6시가 되면 이후로는 새로운 공문서가 내려오질 않기 때문에(내근도 퇴근해야 하니 다음 날 공문이 내려온다, 공무원은 모든 일이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이 난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렇게 4명씩 교대로 30분에 걸쳐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저녁이 된다. 그때쯤이면 18시 30분이나 19시 경이다. 다들 그때부터는 자유시간이다.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체대 출신 후배를 트레이너 삼아 상체나 하체 운동을 하거나 하루 종일 밀려있는 행정업무를 할 때도, 음악을 들으며 쉬건 모두 본인 하기 나름이다. 그냥 출동 대기 중인 상태로 출동이 있기 전까지는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쉰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고 사무실 바깥을 지나는 행인도 뜸해질 무렵인 저녁 10시, 갑자기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출동 방송이다.      


잠깐 보충설명을 하자면 화재‧구조‧구급 벨소리는 모두 “딩동”이라는 초인종과 같은 소리가 난다. 하지만 화재출동 방송은 벨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오기 전 신고를 받는 119 상황실 근무자와 신고자의 통화 내용이 벨소리에 앞서 실시간으로 방송된다. 그 이유는 화재출동을 하려면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각종 장비를 착용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1분 30초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출동 방송이 나오기 전 미리 신고자와의 통화 내용을 들려줌으로써 출동 대원이 10초라도 먼저 출동준비를 마치라는 뜻으로 벨소리보다 먼저 통화내용을 들려준다.      


다급한 신고자의 목소리, 이건 화재출동이다. 

신고자 : 00 아파트 앞에서 차가 불에 타고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상황실 : 네, 잠시만요, 끊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화재출동, 화재출동 00시 00동 00 사거리 앞 차량화재 출동입니다. 출동대는 00 펌프, 00 소펌, 00 탱크, 구조공작, 00 지휘, 00 조사, 00 구급, 차량화재 출동하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체력단련실에서 운동 중이던 대원, 센터 사무실에서 뭔가를 정리하던 대원, 차고 뒤편에서 연인과 통화 중이던 대원들이 차고로 튀어나온다. 나는 물탱크차 담당이다.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확인한다. 펌프차 역시 시동을 거는 사이 그와 동시에 다른 대원들은 서둘러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착용한다. 소방차 2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경광등을 켠 채 화재현장으로 달린다. 사무실과 약 800m 떨어진 곳이다. 거의 도착할 무렵이다. 아뿔싸, 중앙선 건너편에 있는 흰색 차에서 주황색 불꽃이 보인다. 펌프차는 불난 차 바로 앞에 정차한다. 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중앙선을 가로지른 후 바로 소방호스에서 물을 뿜어내 불을 끄기 시작한다. 다행히 전기차는 아니어서(전기차는 불 끄기 어렵다. 일단 아주 많은 물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내가 200여 m를 더 직진한 후 유턴해서 불이 난 차 옆으로 오는 사이 우리 대원들은 초기 진압을 마무리한다. 그새 경찰이 와서 양쪽 8차선 도로 모두 교통 통제를 시작한다. 이젠 불이 난 차의 보닛을 뜯어 확실한 마무리를 할 차례다. 외제차라 잠금장치가 세 군데나 있어 보닛 여는데 5분 정도 시간이 흐른다. 엔진룸에 시원하게 물을 뿌려주고 불이 난 차의 문과 트렁크를 모두 열어 혹시 사람이 차 안에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그저 차만 새까맣게 탔다. 7~8분 정도를 더 기다려 혹시 차에서 재발화가 되는지 지켜본다. 아무 이상이 없다. 이제 철수할 때다.     


대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펌프차에서 꺼낸 장비(보닛을 여는데 쓴 배척-일명 빠루, 절단기, 도끼, 각종 공구가 있는 공구통)를 정리하고 바닥에 널려 있는 소방호스 5벌을 정리해서 펌프차에 넣는다. 난 뭐하냐고? 화재현장에서 펌프차에 호스를 연결해 소모된 물을  실시간으로 보충하는 게 내 역할이다. 그밖에 현장 주변의 통제나 잡다한 일을 하는 게 물탱크차를 운전하는 이가 할 일이다. 

      

이미 8차선 도로 바깥의 인도에는 3~4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동영상을 찍느라 바쁘다. 왜 그렇게들 카메라를 들이미는지 모르겠다. 불구경이 그렇게 신기하고도 재미있을까? "구경하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아요, 제발 가까이만 다가오지 말아요! 그러다 다칠 수 있어요", 이런 독백을 하고 싶지만 내 마음속에만 외칠 뿐이다. 현장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말리는 건 그나마 한가한 내 몫이다. 소방관으로 13년 차의 삶을 살다 보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동물원 원숭이 보듯 구경하는 건 사양한다. 소방관인 우리는, 우릴 지켜보는 당신의 낮과 밤을 지키는 사람이지 동물원의 동물이 아니므로...     


사무실로 복귀해서는 소방차에 물을 채우고 화재 시 썼던 소방호스를 갈아 끼우는 일이 남아있다. 다른 대원들은 본인이 썼던 방화복을 세척하고 공기호흡기 용기(공기가 꽉 차 있는 공기통이다. 실린더, 봄베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이론상 45분동안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를 담고 있다, 잠수할 때 쓰는 산소통이 아님)를 갈아 끼운다. 뒷정리를 하는데 빠르면 20분에서 40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그 일을 전부 마친 후 사무실에 들어와 10분 남짓 출동 시 잘한 점, 아쉬웠던 점에 대해 잠시 얘기한다.  그러면 뒷정리까지 전부 끝나 쉴 수 있다. 하지만 내일 아침 9시 퇴근할 때까지는 다시 출동대기다.      


차량 설명

00 펌프 : 5톤 차량, 화재진압대원 3~4명 탑승, 물 3000리터와 거품 소화약제 200리터 등, 각종 장비 적재

00 소펌 : 2.5톤 정도의 화물차로 일반 펌프차를 줄인 소형 차량, 크기가 작아 골목길이 많은 곳에 배치됨

00 탱크 : 물 6000리터 또는 12,000리터를 싣고 다니는 2가지 크기의 화물차, 이 글에서는 6000리터를 싣고 다니는 물탱크차를 씀, 펌프차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진압대원 1~2명 탑승

구조공작 : 5톤 크기의 차량, 구조대원 3~4명 탑승, 뒷부분에 크레인이 설치됨, 각종 구조장비 적재

00 지휘 : 재난 현장에서 지휘하는 역할, 현장지휘관 등 3명 탑승

00 조사 : 화재조사 인력 2명 탑승

00 구급 : 현장 응급처치 및 소화전 확보, 구급대원 2~3명 탑승

그 외 화재의 규모에 따라 펌프차와 탱크차, 구조차, 구급차, 사다리차가 추가됩니다.      


제목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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