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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Nov 02. 2022

젊은 꼰대의 탄생

2022년 11월 1일 저녁 약속에서

2년 동안 같이 근무했던 동생 2명과 어제저녁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동생 중 1명이 12월에 결혼해서 만들어진 간만의 저녁 약속이었다. 동생들과 1-2달에 1번씩 전화는 했지만 막상 얼굴 보고 얘기하니 더 반가웠다. 12월 결혼하는 예비신랑과 이제 결혼 3개월 차인 새신랑의 변화된 모습 등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그러다 마지막은 결국 회사생활 얘기로 돌아섰다. 지금은 서로 다른 관서에서 화재진압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와 동생들은 각자 있는 곳에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중 막내가 얘기했던 인상 깊었던 한 사람의 얘기를 해보겠다.      


일단 내가 묘사할 사람은 입사한 지 4년 차에 아직 최말단 계급인 소방사(경찰로 치면 순경)다. 나이는 30대 초반이고 겉으로 볼 땐 무난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워낙 악명이 높아 그 사람이 있는 소방서의 막내들 사이에서 같이 근무하고 싶지 않은 선배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내가 지칭한 젊은 꼰대인 그 사람의 대표 일화를 소개한다.      


1. 막내 갈구기  

군대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처음 소방서에 발령받으면 최하위 근무기관인 안전센터(흔히 화재출동, 구조출동, 구급출동을 전담하는 곳, 파출소와 비슷함)에 배치된다. 첫 출근인 막내가 뭘 알겠는가? 주차장이 있어도 내가 여기에 주차해도 되는 건지, 개인 짐과 정리할 장비가 많은데 이걸 들고 센터 정문으로 들어와도 되는 건지 사소한 문제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도 힘든 상태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낯설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첫 출근한 막내가 사무실 정문이 아닌 센터 뒤편의 쪽문으로 막 들어서는 찰나였다. 아무것도 모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대표인물인 젊은 꼰대는 그걸 보고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센터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다 막내가 사무실 뒤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 후배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지적질이 시작됐다.     


꼰대 : 야, 너 여기가 어디라고 뒷문으로 다니냐?

막내 : 예? 이 길로 다니면 안 되나요?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습니다. 어디로 들어가면 될까요?

꼰대 : 당연히 정문으로 들어와서 선배들한테 제대로 인사해야지, 첫 출근인데 그것도 모르냐? 

막내 : ...     


소방서는 나이보다는 계급이 먼저인 곳이다. 젊은 꼰대는 그곳에 지나치게 잘 적응하다 보니 자신보다 근무연차가 늦거나 계급이 아래인 경우는 바로 갈굼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냥 친절히 알려주면 안 되나? 꼭 그렇게 지적질을 해야 하나 싶다. 


2. 해병대 기수

젊은 꼰대와 6개월 늦게 들어온 A라는 후배가 있다. 그 꼰대와 A후배는 소방사로 같은 계급이지만 임용일이 앞선 소방관으로는 젊은 꼰대가 선임이 된다. 이와는 달리 둘은 모두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했고 젊은 꼰대가 A후배보다는 1년 후임이다. 일반 육군이나 해군은 제대하면 입대일이 언제인지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해병대는 아직도 누가 선배인지 더 중요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A후배는 본인이 젊은 꼰대보다 해병대 선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같이 근무하는 팀원들에게 얘기가 돌았고 A후배가 자신보다 1년 선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젊은 꼰대는 어느 날 A후배를 불렀다. 그리고는 이렇게 얘기했다.     


꼰대 : 여기 소방서예요, 군대 서열이 먼저 아닙니다. 회사에서 군대 선임이라고 대접받을 생각 말아요.

A : 지금까지 해병대 나온 티를 낸 적도 없고 그쪽한테 선임 대우받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꼰대 : 그럼 누가 말을 했는데 팀원들이 이걸로 얘길 할까요?

A : 암튼 저는 아무 말 안 했으니 다시는 이런 일로 오해 마세요.   

  

혹시나 군대 서열에 밀려 본인이 대접받지 못할까 봐 제발 저린 젊은 꼰대가 먼저 선수 친 웃지 못할 일이었다. 


3. 대기실에서 큰소리고 전화하기

소방서에는 24시간 출동 대기 중인 소방관을 위해 대기실이 있다. 밤에는 누워서 출동 대기하다 벨소리를 들으면 바로 튀어나간다. 쉴 때 제대로 쉬다 일할 때 제대로 일하라는 뜻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래서 대기실에선 시끄럽게 떠든다거나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1-2명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 일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젊은 꼰대는 대기실에서 사람들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꼰대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4. 윗분에겐 지극정성 후배들에겐 눈 부라리기

윗분에게 잘하는 사람 치고 후배들에게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 분들의 특징은 그만큼 본인이 윗분들을 잘 모셨으니 나보다 계급이 후달리는 후배들에겐 마땅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시 그 젊은 꼰대는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센터장, 팀장 2분을 아주 잘 모시었고 후배들에겐 함부로 행동한다고 한다. 윗분의 지시에는 무조건 “Yes”를 외치며 후배들이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옥상이나 사무실 뒤편의 공터로 불러서 야단을 치기 시작한다. 그것도 막내들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내가 너희들의 이런 점이 맘에 들지 않으니 너희는 꾸중을 들어야 해” 그런 논리로 얘기한다는데 일명 답정너 같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나중에 그 꼰대가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요새 갑질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살면서 겪은 갑질을 되새겨보니 95% 이상 선배나 윗분들이 계급이나 연차를 활용해 괴롭힌 적이 많았다. 하지만 요새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꼰대 기질을 지닌 애들이 활동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듣고 보게 된다. 확실히 꼰대는 성격 탓이지 나이 탓을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이좋게 지내도 힘든 회사생활인데 굳이 서로 갈구며 못살게 굴어야 할까? 함께 운동하고 웃으며 생활하면 안 될까? 정말 즐겁게 회사 다니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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