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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Nov 08. 2022

소방관이 퇴근 후에 하는 일

아들 둘을 둔 맞벌이 40대 가장

난 하루 24시간 일하고 이틀을 내리쉬는 3조 1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일하는 날은 당번, 쉬는 날은 비번일, 휴무일로 이어진다. 온전히 24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출발한다. 약 35분 정도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면 집 앞에 도착한다. 그 이후 일과는 다음과 같다. 시간 순서대로 써본다.

     

자전거를 가지고 아파트 지하 1층 공동현관으로 들어선다(아파트 지대가 높이차가 있어 밖에서 보면 1층이지만 지하 1층으로 부른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집 앞 현관에 자전거를 놔둔다. 밖에 보관할 수 있지만 2년 전 도난당한 뒤로는 절대 바깥의 자전거 보관대에 세워두질 않는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짜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출근한 아내와 학교에 간 두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 청소

청소를 하기 전 바닥에 널린 여러 물건을 치운다. 아내가 집을 나서는 시간은 7시 45분 전후다. 그때까지 본인 준비를 다 하고 아이 둘을 깨운 후 아침밥을 차려 놓고 애들이 입고 나갈 옷과 외투를 챙긴다. 그리고 짤막하게 기도해준 후 아내는 출근한다. 엄마가 집을 나선 뒤 아들 둘은 아침밥(주로 딸기잼을 바른 모닝롤 1~2개나 간단히 된장국이나 미역국에 밥을 먹인다. 그리고 유산균과 단백질 1스푼을 추가한 우유 1잔이 아이들 아침 메뉴다)을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옮겨 놓는다(그릇을 물에 담가놓지 않아 잔소리를 여러 차례 듣더니 요새는 꼭 그릇에 예쁘게 물을 받아놓는다).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8시 25분쯤에 학교로 나선다. 그리고 1시간쯤 지나 내가 집에 오면 아내와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여러 흔적들과 마주치게 된다. 거실에 널려 있는 이부자리와 베개들, 청소한 지 고작 하루 지났을 뿐인데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먼지와 머리카락, 아이들이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장난감, 애들이 읽고 난 후 식탁이나 바닥에 떨어진 책을 정리한다. 이 모든 걸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화분에 물을 준다.    

  

이제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밀어야 할 때다. 1년 전 이사하면서 아내가 LG 청소기로 바꿨다.  원래는 2014년부터 쓰던 10kg 정도 하는 삼성 청소기를 계속 쓰려고 했지만 아내가 날 위해 샀다고 한다. 속으로는 좋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못 이긴 척하고 써봤는데 역시 신제품이 좋긴 좋더라. 바닥 청소를 하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아내가 건조해 놓은 빨래를 개키거나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돌린다. 청소를 다 마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다.      


2. 정리(아내와 내가 다른 점)

난 바닥에 부스러기나 머리카락이 있는 게 싫다. 유난히 깔끔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인지 먼지나 머리카락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돌돌이(3M 테이프클리너)를 손에 쥐고 있다. 주위에 흩어져있는 물건은 모조리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쑤셔 박는 식으로 정리를 한다. 틈틈이, 눈에 거슬리는 게 있을 때마다 정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아내는 아주 2~3달에 한 번 야무지게 정리를 한다. 구획을 나누어 여러 물건을 한 번에(하루 종일 할 때도 있고 2~3시간 할 때도 있다. 그때그때 다름) 대대적으로 옮기며 정리한다. 그래서 아내가 물건 정리를 할 때면 버릴 물건들만 옮기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땐 아내 옆에 있지 않고 멀리 도망간다. 잘못하면 나까지 정리될 수 있다.   

  

3. 장보기

주로 가는 마트는 E마트와 동네에서 싸기로 유명한 00 마트다. 과일, 참치, 계란, 즉석 볶음밥, 500ml 물 20개, 맥주, 두부, 고기 등을 산다. 간혹 차에 두고 마실 커피도 몇 병 쟁여 놓는다. 보통 온 가족이 주말에 마트를 가면 장보는 시간만 1시간 넘게 걸린다. 주말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마트에 오기 때문에 주차도 힘들고 카트를 들고 마트를 누비는 것 자체도 힘들다. 주변이 온통 사람이라 뭘 하든 카트에, 사람에 치이기 일쑤다. 몇 년 동안 혼잡스러운 장보기를 하다 보니 주말에 마트 가는 게 그리 내키지 않는 편이다.  

    

8월쯤인가 어쩌다 혼자서 평일에 장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좋았다. 평일이라선지 마트에 사람도 없고 주차하기도 편해서 그 뒤로는 나 혼자 장보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실은 아내 없이 혼자 가니 사고 싶은 것을 맘대로 살 수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ㅎㅎㅎ   

  

4. 산책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제일 좋은 보약이 걷기나 가볍게 달리는 것이라고 정선근 교수의 책에 나와 있다. 허리 디스크가 오랜 친구가 된 나는 될 수 있으면 하루에 30분 이상씩은 걸으려고 애를 쓴다. 확실히 걷고 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허리도 덜 아프다. 작년만 해도 등산을 자주 했었는데 무릎이 아파서 등산은 어쩌다 한 번하는 편이고 집 앞 천변 산책을 하는 게 평소의 모습이다.      


5. 라디오 듣기

CBS Radio 93.9를 듣는다. 클래식, 가요 등 좋은 음악이 나오면 음악 제목을 검색하고 스트리밍 어플에 나중에 듣기 위해 보관해 놓는다. 그렇게 모은 곡이 3년이 지나니 얼추 250여 곡은 된다. 청소와 빨래가 끝난 후 잠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6. 책 읽기

1년에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을 포함하면 약 300권 정도 읽는다. 그리고 아내가 추천하는 책도 1번씩 본다. 직접 소설을 쓰기는 어렵지만 읽는 건 쉽게 할 수 있다. 읽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여유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오후 1시 30분, 이제 작은 녀석부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다. 이제 퇴근 후 나의 여유는 끝이다. 안녕!!!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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