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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Nov 14. 2022

적반하장이 당연한 사람들

그럴 땐 그냥 웃지요

출처 : 네이버


40년 넘게 살다 보니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도리어 잘못한 사람이 되레 언성을 높이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어이없는 일을 여러 차례 겪게 되었다. 지금까지 소방관 생활을 하다 기억에 남는 일화 몇 가지를 써본다.     

 

1. 사무실 직원 전용 주차장에 4시간 넘게 주차한 villain


내가 근무하는 곳은 00년도 초반에 지어진 119안전센터다. 2층 높이에 200여 평 정도의 넓이다. 1층은 실내 주차장(5톤 펌프차 1대, 구급차 1대, 굴절사다리차 1대, 9톤 물탱크차 1대를 주차함, 차량 탱크 안에 받아놓은 물이 얼 수 있어서 소방차는 항상 실내에 주차해야 함)이 있고 직원 9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다. 2층은 식당과 체력단련실, 밤샘 근무 중 직원들이 쉬는 대기실이 있다.      


역 앞의 조그만 부지에 지은 지 20년은 넘은 건물이라 최근 신축한 안전센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주차장이 직원 수에 비해 부족하다. 차간 거리 무시하고 앞 차와 옆 차를 딱 붙여 주차해야 총 9대를 주차할 수 있다. 아무래도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주차장 부지는 건축 당시부터 생각도 못하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 하루 근무 인원이 9명인데 근무자가 교대하는 시간대에는 차 댈 곳이 부족해 직원 중 절반 정도는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전날 근무자와 당일 근무자가 교대하는 아침 교대시간에는 이미 주차된 차 5~6대와 근무를 위해 주차할 차 5~6대가 서로 엉켜 있어 팀별로 차로 출근하는 사람을 제한할 때도 있다. 다만 교대시간 전후로 약 1시간 정도만 주차장이 혼잡할 뿐이다. 교대가 끝난 후에는 9곳의 주차 칸의 절반 정도만 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센터의 위치가 역 근처에 있어서 민원인이나 근처를 지나가는 다른 직원들이 나머지 주차장 빈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항상 교대시간이 끝나고 전 근무팀이 모두 퇴근하면 주차장 입구에 러버콘(빨간색 고깔)을 세워놓아 아무나 차를 댈 수 없도록 입구를 막아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차를 하고 다시 차를 빼기까지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 골머리를 앓기 때문이다.      


그런데 1주일 전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저녁 7시경에 낯선 SM5가 다소곳이 주차장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입구를 막아놓은 러버콘조차 치우고 본인 차를 주차한 후 다시 본인 차 앞에 러버콘을 놔둔 상태였다. 그 상황을 상상하니 아무래도 한두 번 주차한 사람 같지 않았다. 서둘러 전화를 했고 다행히 한 번에 전화 연결이 됐다.      


후배 : 0000 차주 되시죠?

차주 : 네, 그런데요?

후배 : 언제쯤 차를 빼실 건가요? 여긴 직원 전용 주차장입니다.

차주 : 너무 빡빡하게 구시네, 지금 출근하는 시간도 아니잖아요, 한 2시간 있다 차 뺄게요. 빈 공간에 차 대는 것 가지고 관공서에서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후배 : (너무나 당당한 항의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정중하게 얘기한다)

       여기는 직원 주차장입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빼주세요.

차주 : (퉁명스레) 알았어요, 시간 좀 걸려요.(전화 끊음)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는 내가 더 황당했다. 여기가 검찰청이나 경찰서여도 저렇게 당당하게 본인 차를 대겠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소방서는 정말 힘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만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 큰 어른들이라면 서로 존중하는 거 모르실까요?) 원래 이런 상황이라면 미안해하며 전화를 받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일 텐데, 어이없는 상대의 반응에 그냥 속으로 개, 소, 닭 여러 동물을 되뇌었다. 소방관도 사람이라 주차한 지 2~30분 이내 온다며 미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야박하게 굴지 않는다. 또 그런 식으로 원만하게 주차 문제가 해결되는 게 대부분이다. 정말 위와 같은 사람을 만날 때면 어쩔 수 없이 도를 많이 닦게 된다.     


2. 구급차는 콜택시가 아니에요.


2018년에 겪은 일이다. 근처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구급출동이 걸렸다. 가보니 30대 복통 환자였다. 다만 환자의 혈압, 산소포화도, 혈당 등의 생체징후는 모두 정상이었고 의식도 명료했다. 보호자는 복통 때문에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니 구급차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덧붙이는 말이 가관이었다.      


보호자 : 1달 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은 게 있어요, 그 병원으로 가주세요.


나 : 지금 아내분의 상태는 정상으로 추정됩니다. 혈압, 혈당, 맥박,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입니다. 의식 상태도 정상이구요, 무슨 진료를 받았는지 말씀해주실래요? 진단명이 나왔다면 무엇입니까?


보호자 : 그냥 간단한 진료였어요.(보호자가 정확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환자 정보를 파악할 수 없어 병원 선정에 어려움이 생긴다. 환자의 생체징후가 정상인데 서울대병원까지 가자면 족히 왕복 2시간이 넘는다. 그동안 관내에서 심정지 환자 같은 응급상황 시 다른 구급차가 오려면 10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럴 땐 보호자에게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원하는 병원으로 갈 것을 고지한다)


나 : 어떤 진료였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구체적인 환자정보를 알아야 저희도 이송할 병원을 선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습니다.(희귀병이나 암환자 같은 경우엔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의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환자가 진료받는 병원으로 간다. 그렇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호자 : (목소리가 커지며) 그냥 서울대병원 가자구요.


나 : 저희 판단으로는 근처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처치받으신 후 서울대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 같은데 말씀하시지 않으니 저희도 어쩔 수 없네요. (같이 출동한 구급대원 후배에게) 의료지도 연결해, 현재 파악된 환자정보와 상황 얘기하고 근처 이송병원 선정 때문에 연락했다고 말씀드려.(의료지도란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하루 1명씩 돌아가며 전화 대기를 합니다. 구급대원과 전화 통화를 하며 뇌졸중이나 심정지 환자 치료를 지휘할 때도 있고 병원 선정 시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도 본인이 원하는 병원으로의 이송을 고집하는 경우 도움을 주시기도 합니다)


후배 : 의료지도 연결됐습니다. (연결된 의사 선생님에게 상황 설명 후) 의료지도 선생님 말로는 다시 한번 생체징후 측정해보고 정상이면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합니다. (생체징후 재측정 후) 혈압, 혈당, 맥박, 산소포화도 모든 수치 정상입니다. 환자 의식 수준도 Alert(의식 수준 명료)입니다.


나 : (보호자를 보며) 저희 의료 지도하시는 의사 선생님도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처치 받으시라고 합니다.

보호자 : (구급대원 2명을 모두 팔로 밀어낸다) 비켜, 니들 필요 없어,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

보호자 2 : (전화기를 들더니 카메라로 영상을 찍는다)

보호자 3 : 내가 기자 몇 명 아는데 너희 이름이 뭐야?

보호자 4 : 왜 서울대병원 안 가는데? 가자면 가자는 거지? 뭔 말이 그리 많아?


나 : 밀지 마세요. 그리고 촬영 중단하세요. 지금 가족분들 모두 구급대원 폭행 및 업무 방해 중입니다.

그만하세요


보호자 : (주 들것-환자를 눕히거나 앉혀서 이동하는 침대형 들것, Main Strecher-을 발로 찬다, 주먹으로 우리를 위협한다) 비켜, 새끼야


나 : 욕하지 마세요, (구급대원 후배를 보며) 현 상황 무전해, 어서!


구급대원 후배 : 현재 환자의 보호자 4명이 영상 촬영 및 협박, 욕설, 밀치기 하고 있습니다. 구급대원 폭행이 우려됩니다. 경찰 출동시켜 주세요     


경찰이 오기 전 우리는 환자를 이송하지 않고 그곳에서 철수했다. 더 이상 현장에 머물다가는 폭행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장을 떠날 때까지 환자를 제외한 그 가족 4명은 우리에게 협박하고 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원래 구급차는 응급처치 후 증상에 따라 처치가 되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원칙이다. 구급차는 콜택시가 아니다. 보호자가 원하는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급대원에게 함부로 행동해도 되는 건 아니다. 언론에 띄우겠다고 협박받아서도 안 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가족이었다. 보호자가 때리면 적극적인 제압도 할 수 없다. 그저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다행히 그때는 아무런 폭행 없이 끝났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구급대원들은 여전히 폭행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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