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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Nov 20. 2022

안타까움(자살사고 출동)

2018년 어느 날

한창 구급대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신도시로 지어진 지 5년이 넘은 곳이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고 드문드문 4층짜리 빌라(1층은 식당이나 카페, 나머지는 원룸 등 주거시설)가 구역별로 모여 있어 카페거리, 먹자골목 등으로 불렀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가 BMW, 벤츠같은 외제차를 볼 때면 역시 잘 사는 사람이 많은 동네인가 보다 여길 때가 많았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돈 걱정 없이 다들 행복하게 잘 살겠지라고 지레짐작하며 여기고 지낼 때였다. 


한동안 뜸했던 자살사고 출동을 나가게 되었다. 출동 장소는 기본이 38평부터 시작하는 큰 평수의 아파트 단지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손을 붙잡고 말씀하신다.     


아주머니 : 곧 아이가 올 거예요. 제발 아이가 남편 모습은 못 보게 막아주세요

나 : (마침 3명의 구급대원이 출동중이었다. 원래 3명이 정원이지만 인원이 부족해 2명이 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걱정 마세요, 제가 여기서 아이 못 보게 막을게요. 다른 구급대원들이 들어가서 상황을 확인해볼게요.(구급대원 2명이 들어가서 안을 확인했다)     


5분쯤 지나니 다른 친척분이 오셨다. 그 친척에게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 화장실에 목이 맨 상태의 40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업무처리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고 정황 보존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라 발견된 상태 그대로 놔둡니다. 심전도를 부착해서 심장이 뛰는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기록지를 출력합니다. 사후강직이나 시반 여부를 살피고 일지에 기록합니다.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현장을 인계하고 구급대원은 철수합니다.) 남편 분이 살아있다면 당연히 심폐소생술을 했겠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명백한 사망의 증거인 시반이 있었고 사후강직이 진행중인 상태였다. 다른 구급대원들이 의료지도 선생님과 통화 후 현재 상황을 아주머니에게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놀랐지만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남편이 몇 달 전 사업실패로 인해 큰 상심을 했다는 얘기를 하셨다. 우리에게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가 오는지 계속해서 바깥을 확인하며 다시 한번 부탁을 하셨다.  


아주머니 : 곧 아이가 올 거예요. 제발 아이가 못 보게 해 주세요

나 : 엘리베이터 앞에 친척분이 계세요. 아이가 못 보게 잘 막아주실 겁니다.     


5분쯤 지나 경찰이 도착했고 구급대원인 우리는 현장에서 철수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동안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을 남편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그 마음을 어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살아갈까? 아빠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울 때까지 아이가 겪어야 할 외로움과 허전함은 누가 대신할까? 배우자 없이 아이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내의 입장은? 느닷없이 아들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할 남편의 지인들은?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특히 아빠를 잃고 나서 울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힘들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나 있어 애잔함과 안타까움을 더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는 아빠의 빈자리를 잘 메워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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