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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Dec 02. 2022

22년 12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겨울이 가장 힘들고 바쁘다

1. 굴삭기 최고!!

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 동안 전국 화재 발생 건수 4위 관서에서 일했다. 화재 건수 전국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경기도에 있어서 다른 지방과의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압도적인 화재건수를 자랑하는 화성은 2~4위의 다른 지역을 손쉽게 따돌린다. 우리끼리 그곳은 아마도 불이 많이 나서 화성이라 부른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10년 이상 구급대원과 화재진압대원으로 일해보니 경험상 겨울에 특히 불이 많이 나는 걸 알게 됐다. 왜 그럴까? 이유를 들자면 추워서 난로 같은 난방기구를 많이 쓰니까, 또 여름처럼 비가 오지 않고 건조한 날씨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쉽게 불이 붙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단 불이 나는 곳은 주로 공장이나 물건이 가득 들어 차 있는 창고가 대부분이다. 그런 곳은 일단 면적이 최소 500평 이상에 탈 수 있는 물건들이 그 넓은 공간을 메우고 있어 소방차가 도착할 때쯤엔 이미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땐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불을 끄기엔 늦은 타이밍이다. 그저 인접 건물이나 산, 들로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막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활활 불이 타고 있는 공장이나 창고 안으로 들어가 소방호스를 잡고 물을 뿌리기엔 위험성이 높아 현장지휘관이 건물 안으로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2~3시간 정도 불이 나는 건물이 다 탈 동안 바깥에선 펌프차(5톤, 불을 끄는 주력 소방차)들이 소비하는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물탱크차(8톤~10톤, 물 6,000리터~12,000리터 적재) 여러 대가 돌아다니며 화재현장에 물을 보급한다. 누군가는 차례대로 물탱크차가 화재 현장에 물을 줄 수 있도록 순서를 조율하고 누군가는 현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대원들의 안전을 챙긴다. 지휘관은 모든 상황을 체크하며 최적의 선택을 내린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소방관들이 각자 맡은 역할(직접 불을 끄는 대원, 운전원, 안전관, 지휘관, 교통 통제, 구급대원-화재 현장에서 다치는 사람의 응급처치 등)을 해내며 활활 타는 불을 줄여 가는 동안 굴삭기가 현장에 도착한다.      


굴삭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굴삭기 혼자 약 30명 정도의 일을 해낸다. 특히 오랜 시간, 20kg 넘는 장비를 멘 상태로 화재 잔해를 허리를 굽혀 빼내고 건물 바깥으로 치우려면 많은 힘이 들고 금세 지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체력 관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못 버티고 현장에서 퍼져버리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 구석에서 체력이 달려 쓰러지면 자칫 죽을 수도 있다.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굴삭기가 잔해를 걷어 올리면 대원들이 물을 뿌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불씨까지 정리한다. 이걸 "잔화 정리한다"라고 말한다. 이 잔화 정리가 불을 끄는데 가장 오랜 시간을 차지한다. 정작 불이 사그라드는데는 1시간 남짓이지만 잔화정리만 2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특히 새벽 시간대 굴삭기가 화재 현장에 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시청, 건설 중기 협회 등 여러 군데 전화해서 사정사정해야 겨우 구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굴삭기의 속도가 일반 차만큼 빠른 것이 아니라서 굴삭기 수배 후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굴삭기가 구해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직접 몸으로 잔화정리를 한다. 다만 힘이 드니 여러 팀으로 나누어 교대로 쉬고 일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2. 춥다, 정말 춥다

한겨울 새벽의 온도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 때가 대부분이다. 그 추위에 불을 끄려고 물을 뿌리다 보면 화재 현장 주변은 낮은 온도로 인해 물이 흘러가는 곳이 서서히 얼음으로 뒤덮인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기도 하지만 그 위에 염화칼슘이나 모래를 뿌리기도 한다. 정말 미끄러울 때는 등산할 때 쓰는 아이젠을 신발에 끼워 미끄러짐을 막기도 한다. 추운 건 옷이나 핫팩으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추위로 인해 길바닥이 얼음으로 변하고 이로 인해 다칠 수 있어 꽤나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2시간 이상 걸리는 화재는 보통 관할 지역의 의용소방대원들이 나와서 현장 주변의 교통 통제나 불을 끄고 있는 소방관들의 간식을 준비해주시기도 한다. 오랜 시간 불을 끄는 소방관의 상태는 춥고 힘들고 배고프고 거지가 따로 없다. 그때 먹는 컵라면의 맛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밖에서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힘들게 일하다 갖는 달콤한 휴식시간에 따뜻한 먹거리까지, 추운 새벽에 화재 현장까지 나온 의용소방대원들에게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바로 며칠 전 막 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겨울이 시작된 걸 아는 건지 추워지자마자 새벽 12시쯤 출동했던 화재는 5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역시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산뜻한 출발이었다. 과연 이번 겨울에는 몇 건의 화재 출동과 몇 시간의 현장 활동을 하게 될까? 이왕이면 작년보다 조금 줄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뉴스나 신문 기사에 우리들의 활동 모습이 나오지 않고 조용한 겨울을 보내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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